매일신문

경찰, 이틀째 '달서구 여성 살해' 용의자 추적 중…여실히 드러난 '신변보호제도' 허점

지능형 CCTV도 스마트워치도 참변 막지 못해…반납 시 강제 근거 없어
한달 전 구속영장 기각…'불구속 수사' 한계 지적도

대구에서 신변보호(피해자 안전조치)를 받던 여성이 스토킹 끝에 살해당했다. 경찰은 이틀째 유력 용의자의 행방을 쫓고 있으며, 용의자가 도주한 것으로 추정되는 외곽 야산 일대를 수색 중이다. 피해자가 이미 위협을 호소해 보호조치까지 받은 상황이었음에도 결국 피살된 사건에 대해 제도적 허점과 사법 대응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용의자 이틀째 행방 묘연…야산 도주 가능성

대구 달서구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피살 사건 용의자는 사건 발생 이틀째 행방이 묘연하다. 목격자 제보도 없는 상황에서 경찰은 공개 수배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추적을 이어가고 있다.

11일 대구경찰청 등은 전날 오전 3시 29분쯤 대구 달서구 장기동에 있는 아파트에 침입해 50대 여성 A씨를 흉기로 살해하고 달아난 유력 용의자 40대 남성 B씨를 추적 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B씨는 이날 세종시 야산에서 행방이 끊긴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B씨가 택시를 타고 세종시 인근 야산에서 내린 것으로 보고 추적을 이어가고 있다. 경찰은 해당 야산 일대에 수색견, 드론, 기동대 등을 투입해 수색 중이다. 다만 B씨가 야산을 벗어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는 상황이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안이라 자세한 내용을 알려줄 수 없다"며 "공개수배 가능성 역시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거듭된 위협 끝에 끝내 참변…제도 사각지대 부각

이번 사건은 사전에 반복된 위협과 신변 보호 요청이 있었음에도 실질적 보호가 이뤄지지 않아 발생한 점에서 주목된다.

피해자 A씨는 지난 4월부터 B씨로부터 여러 차례 위협을 받아 경찰에 보호를 요청했고, 경찰은 A씨를 안전조치 대상자로 지정했다. 그러나 A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보호장비인 스마트워치를 자진 반납했다. 이 스마트워치는 위급 시 버튼을 눌러 경찰에 긴급 호출이 가능한 장치였지만, A씨는 이 장치의 알림음과 착용 부담감을 이유로 사용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의 한 경찰은 "스마트워치를 잘못 눌렀을 때 발생하는 '삐빅' 소리나, 외부로 드러나는 점 때문에 반납을 요청하는 피해자들이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장치를 반납하더라도 경찰이 강제로 소지를 명령할 법적 권한은 없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대구에서 경찰의 신변보호(피해자 안전조치) 결정을 받은 사례는 ▷2020년 572건 ▷2021년 868건 ▷2022년 1천239건 ▷2023년 1천573건 ▷2024년 1천415건 등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는 지난달까지 520건에 이른다. 신청 요건은 범죄 피해자이거나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이면 가능하며, 사건 담당부서 또는 '신변보호심사위원회'에서 필요성을 판단해 보호 여부를 결정한다. 대부분의 신청은 승인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스토킹 범죄 특성상 흉포성과 반복성이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단순한 법적 대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박동균 대구한의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스토킹은 단순 접촉을 넘어, 가족이나 반려동물을 상대로 협박하거나 실제 위해를 가하는 경우가 많다"며 "고도의 위험성을 고려해 경찰이 '내 가족을 보호한다'는 자세로 적극적으로 피해자를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불구속 수사 한계' 지적도

경찰은 B씨가 이전부터 A씨에게 흉기를 휘두르며 협박했던 점을 들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경찰 내부에선 "사안의 중대성을 충분히 설명했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대구의 한 경찰은 "경찰은 피해자와 직접 대면하며 사건의 긴박성과 위험성을 피부로 느낀다. 하지만 검찰과 법원으로 넘어가면 그 감수성이 희미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한 달 전에도 B씨가 잠적한 이력이 있는 만큼, 이번 법원의 판단은 매우 아쉽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 역시 구속 수사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윤덕근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는 "스토킹 범죄는 재범 위험이 높기 때문에, 법원이 '재범 가능성'을 중대한 영장 발부 요건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병수 법무법인 큐브 변호사는 "스토킹은 집착이 강한 범죄 특성상 살인 등 강력범죄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며 "결과적으로 봤을 때 이번 사건은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면 예방할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대구여성의전화는 이날 논평을 통해 "구속영장만 발부됐어도 살릴 수 있었던 생명"이라며 "가해자에 대한 구속 수사를 즉각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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