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번호 2041047'.
이달 2일 기자가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에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하고 받은 숫자다. 국내에서 204만1천47번째 기증 희망등록자라는 뜻이다.
서른두 살의 나이에 조금 늦게 기증 의사를 밝혔다. 가족만큼이나 가까운 지인에게 이 사실을 전하니 '주변 사람들이 기증 의사를 알고 있으면 되지, 굳이 희망등록까지 할 필요가 있었냐'는 대답이 되돌아왔다.
생명 나눔 의사를 구두가 아닌 서면으로 남겨야겠다는 데에는 개인적으로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로는 뇌사에 빠져 법상 장기기증이 가능한 순간이 오면, 내 가족이 중환자실 앞에서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리지 않기를 바랐다.
지난 두 달간 장기기증 기획 시리즈 취재 과정에서 만난 유족 7명은 중환자실 앞이 그렇게나 견디기 힘들었다고 전했다. 자식이 의식불명이라는 현실조차 받아들이지 못한 순간에 '타인을 위해 장기를 기증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받아 든 한 아버지는 24시간 내내 울부짖었다.
사랑하는 가족이 생전 기증 의사를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다면 그 고통은 배가 된다. 식물인간과 달리 뇌사 상태는 다시 깨어난다는 기적이 없어서 기증 의사를 물어볼 수도 없다. 생명 나눔 뜻을 문서로 반드시 남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느꼈다.
두 번째 이유는 한 사람의 장기기증은 최대 9명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조직까지 나누게 되면 100여 명이 되살아나는 기적이 펼쳐진다.
이틀에 한 번씩 신장 투석 주사를 꽂고 인공심장을 부여잡는 환자들이 다시 걷고 숨을 쉬는 데 힘을 보태고자 했다. 생을 마감하면 한 줌의 재로 사라질 장기들을 건네면서, 죽음을 앞뒀던 환자들이 인생의 제2막을 써 내려가길 바랐다.
마지막 이유는 기증 희망등록이 늘어날수록, 우리 사회에 생명 나눔 문화가 뿌리내릴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미국 등 기증 선진국은 60% 이상의 장기기증 희망등록률을 보인다. 반면 우리나라는 2023년 기준 전체 인구 대비 3.4% 수준에 그친다. 그 결과 실제 기증으로 이어진 건수는 큰 차이를 보인다. 같은 해 한국의 인구 100만 명당 뇌사 기증자 수는 9.32명인 반면, 미국은 48.04명으로 집계됐다.
한국 사회에는 부모님이 주신 신체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유교적 가치관이 남아 있다. 해외처럼 장기기증이 일상적인 문화로 자리 잡기 위해선, 더 많은 국민이 기증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기자는 취재를 통해 생명 나눔을 가까이하면서 기증 희망등록을 하게 됐다. 장기기증이라는 주제가 낯선 사람들은 가족의 장기기증을 해야 할 때가 오거나, 본인이 장기를 이식받을 상황에 놓이지 않으면 그 가치를 헤아리기 어렵다.
다행히 오는 8월 21일부터는 신분증을 발급받을 때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안내받는 제도가 시행된다. 주민등록증을 발급하는 동사무소와 구청(여권), 경찰서·면허시험장(운전면허증), 지방해양수산청(선원신분증) 등에서 이뤄진다. 일상에서 생명 나눔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반가운 움직임이다.
기증 희망등록을 하더라도 최종 결정은 남겨진 가족의 몫이다. 하지만 그 의사를 미리 밝히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가 생명 나눔 활성화로 나아간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작은 결심들이 모여 장기기증이 문화로 받아들여지는 그 기적의 순간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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