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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로 의성 고운사 '보물' 사라질 위기…유네스코 세계유산도 위협받나

보물도 예외 없어…"문화재 보존체계 근본 재검토 필요"
유네스코 세계유산도 예외 아냐…국제사회 신뢰 흔들릴 수도
유물 624점 수습…"잿더미 속 교훈, 다시는 없어야"

산불로 무너진 청송 사남고택. 매일신문 DB
산불로 무너진 청송 사남고택. 매일신문 DB

한 번의 산불이 우리 전통문화재를 삼키고 보물과 국가민속문화유산 지정 해제 가능성까지 불러오면서 문화재 보호체계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21일 지난 3월 발생한 경북 의성·청송 지역 대형 산불로 전소된 문화재 3건에 대한 정밀 수습 조사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는 보물 제1529호인 의성 고운사 연수전과 보물 제1530호 가운루, 그리고 국가민속문화유산 제204호인 청송 사남고택이 포함돼 있으며, 국가지정문화재로서의 지정 해제 여부가 검토되고 있다.

고운사 연수전은 조선 후기 승려 교육시설로 건축학적 가치가 인정돼 보물로 지정된 유산이며, 가운루는 연수전과 함께 고운사 경내의 역사적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사남고택은 1700년대에 건립된 ㅁ자형 전통가옥으로 丁자형 배치와 사랑 부분의 구성, 창호의 배치법, 수장 공간의 활용법 등 경북 북부지방에 남아 있는 전통가옥의 특징을 잘 간직한 곳이다.

그러나 이번 산불로 건물 전체가 소실되면서 실체 보존이 어려운 상태다.

문화재 지정 해제는 단순히 등록이 취소되는 행정 절차가 아니다. 이는 곧 수백 년간 축적된 역사성과 정체성이 행정적으로 '없던 일'로 정리되는 셈이다.

문화재계 관계자는 "현장에 대한 상시 점검과 소방 설비 확보, 재난 대응 매뉴얼 등의 부실이 그대로 드러난 사례"라며, "문화재는 존재만으로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 관리와 사회적 관심이 따라야 비로소 유지되는 자산"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국내 문화재 지정 해제에만 그치지 않고, 유네스코 세계유산 체계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고운사를 포함한 많은 전통사찰은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돼 있으며, 이들 사찰의 개별 문화재가 파괴되거나 보존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면, 등재 기준 미달로 인해 세계유산 자격 박탈 논의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화재계 관계자는 "세계유산 등재의 핵심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의 보존이며, 이를 위해 각국은 정기보고와 보존 계획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며 "이번 사태처럼 자체 관리가 부실한 경우, 국제사회는 해당 유산 전체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국가유산청은 전소된 문화재 현장에서 수습한 부재 624점을 확보했으며, 이를 전시 및 교육자료로 활용해 산불 재난에 대한 경각심을 높일 계획이다.

지자체 차원의 대책도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북은 산림면적이 넓고 문화재 밀집지역이 많아 매년 산불 위험에 노출돼 있음에도, 문화재 보호 인프라나 화재예방 시스템은 미흡한 수준이다.

특히 목조건축물이 많은 전통사찰의 경우, 열·연기 감지기 설치와 방재훈련, 전통방식과 현대기술의 접목을 통한 화재대응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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