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거짓말이 몰락과 파멸을 위한 선동이 아니라, 조선 시대 봉건적 신분 사회에서 대대손손 이어져 온 가족과 한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거짓말이 된다면, 우리는 그 거짓말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김정숙 작·연출의 <춘섬이의 거짓말>(극단 모시는 사람들, 성수아트홀)은 조선시대 홍 대감 댁 노비로 태어난 열여덟 '춘섬'이가 임신한 아이를 둘러싼 출생의 비밀을 밝혀가는 이야기다. 비밀의 꼬리를 무는 거짓말들이 극적인 서사를 뒷받침하면서도 출신 성분으로 계급이 매겨지는 봉건사회에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아이가 계급장을 떼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홍길동 운명론'으로 그려내면서도 춘섬이 어머니로서 주체적인 여성이 되어가는 작품이다.
춘섬이가 홍길동의 어머니가 되는 극적 설정과 배경도 그렇고, 조선시대 여성 서사라는 점에서 특별할까 싶지만, 춘섬이의 꼬리를 무는 거짓말은 100분 동안 배우들이 고전 서사의 몰입감을 높이고, 극을 이탈하지 않으면서도 웃음을 날리는 속도가 상당한 수준이다. 춘섬이의 거짓말을 연기로 척척 지어내며, 고전 서사를 박제(剝製)하지 않으면서도 현시대에도 통용될 수 있는 이야기로 되살려냈다. 풍자와 해학성으로 전환하는 배우들의 연기들이 춘섬이의 거짓말을 진실로 만들어가는 데 화력(火力)이 될 만큼 무대에서 폭발력을 보여주고 있다.

◇ '춘섬이'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거짓말의 윤리학'
<춘섬이의 거짓말>은 조선시대 종으로 태어난 열여덟 춘섬이와 뱃속 아이를 둘러싼 폭로전과 개불이와의 사랑과 진실을 밝힐 수 없는 침묵, 아이의 친부를 둘러싼 극 중 인물들의 진실과 거짓의 대립이 꼬리를 물고 전개된다. 핵심은 바로 '춘섬이의 거짓말'이다. 거짓말은 일반적으로 진실을 왜곡하거나 타인을 속이기 위한 잘못된 정보 전달로 인식된다. 작품에서 거짓말은 그 방향이 다르게 나타난다. 신분과 계급, 젠더의 폭력 구조 속에서 아이를 살려내기 위한 희생의 거짓말, 생존을 위한 거짓말이 된다면 희곡의 방향은 달라진다. 이 작품에서만큼 '거짓말'은 주체적인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윤리의 행위로 전환된다. 그런 만큼 춘섬이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거짓말의 윤리는 아이를 지키려는 어머니의 모성애이자, 여성으로서 살아남기 위한 자기 선택의 윤리이기도 하다. 그 거짓말의 윤리가 결말로 향할수록 맞닿게 되는 것은 아이는 홍길동이 되고 춘섬이는 홍길동의 어머니가 되는 운명론인데, 파고드는 의미는 매우 매섭다.
무대는 조선시대 온기가 살아 있고, 억새밭으로 둘러싸인 중앙에는 넓적한 너럭바위가 보인다. 60~70년대 가족사진을 찍던 사진관 실내 전경(前景)처럼 투박하면서도, 너럭바위가 대감 집 대청이 되기도 하고, 춘섬이의 방이 되기도 하는 마당극 구조다. 극 중 인물들이 바위에 서면 길가, 홍 대감 집, 마당과 빨래터 장면으로 전환되는 식이다. 영상을 활용한 후경(後景)의 무대 공간은 우화적이다. 춘섬이의 꼬리를 무는 거짓말 스토리는 이렇다. 조선 시대 노비인 종(奴)신분으로 태어난 열여덟 살 춘섬은 개불이와 갈대밭으로 둘러싸인 너럭바위에서 사랑도 하고, 결혼을 꿈꾸는 러브라인의 낭만도 보여주지만, 고전 플롯은 신파적으로 춘섬의 운명을 가만두지 않는다. 이때, 매파가 등장해 춘섬을 양반댁 씨받이로 중매선다. 홍 대감의 종(노비)으로 살아가는 춘섬 가족에게 씨받이 운명의 선택이 돌아온 것. 출생 신분을 따지는 조선사회에서 신분이 바뀔 수 있는 상황에서 사건이 터진다.
거짓말이 진실론으로 점화되는 사건 전말의 장면을 소환해보자. 무대는 홍 대감의 꿈 장면이 펼쳐지고, 작가는 고전소설 『홍길동전』 중 '남가일몽(南柯一夢)' 장면을 영상으로 펼쳐놓는다. 청산과 녹수, 꾀꼬리, 절경의 경치와 바위 절벽, 폭포와 꽃구름들이 환상적인 판타지로 투사된다. 번개가 치며 청룡이 날아들어 홍 대감의 몸을 감고 돌진하자, 홍 대감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치다 꿈에서 깨어난다. 이 꿈 장면을 통해 『홍길동전』을 연상화한 것은 시대와 권력의 몰락을 예감하는 비극의 예언이면서도 홍 대감에게는 흉몽이자 동시에 태몽으로 오인되는 계기가 된다. 부인과 잠자리가 여의치 않자 춘섬이를 강간하게 된다. 개불이를 잊지 못하는 춘섬이의 임신 사실이 알려지며 가족 대대로 모시는 홍대감과 개불이가 때아닌 뱃속 아이의 친부 논쟁이 벌어진다.
춘섬이의 거짓말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춘섬이를 내몰려는 홍 대감 첩의 교란, 매파의 증언, 아이의 이버지, 사랑하는 개불이의 외면이 겹치면서 진실 공방의 아수라장이 된다. 춘섬은 끝내 침묵을 선택함으로써 별당 아씨가 되는 신분 전환의 확실한 승리를 거두게 된다. 그 사이 개불이는 사랑을 나누던 억새밭 너럭바위에 그림자극처럼 나타나 계급장을 떼고 "봉건사회 양반들 때려잡는 도적이 될 거"라며 활빈당으로 간다고 선포한다. 이 장면으로 이어지는 마지막은 뱃속 아이의 운명을 결정짓는 순간이다. "무엇이 되었든 네 세상을 지어 살아라. 이제 나는 종년도 첩년도 아니여. 네 어머니로 살 거야. 이건 진짜야!" 춘섬은 아이를 개불이의 대를 잇는 '활빈당 홍길동'이 되는 운명으로 만든다.

◇ 춘섬과 홍길동 서사, 롤랑바르트의 신화성
춘섬이가 개불이와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홍길동이 되는 침묵(거짓말)의 서사는 고전적인 플롯의 형식을 유지하고 있어도, 주체적 삶으로 전환되는 춘섬이의 거짓말에는 사회적 의미가 두텁게 확장된다. 노비 종으로 태어난 춘섬이의 운명이 그 숨김의 거짓말로 인해 비로소 어머니로, 여성으로, 인간으로 살아가게 되는 춘섬의 아이에 대한 작가적 설정은, 기울어진 한국 사회의 봉건적 계급 구조를 드러내는 동시에 젠더·위계·계급·여성·신분·폭력 등의 다층적 담론을 확장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들이 확장될 수 있도록 연출적으로 살려낸 장면들과 설정들이 있다. 예를 들어, 홍대감의 꿈 장면에서는 신분과 위계의 폭력성만이 내재한 인간의 욕망을 영상으로 이미지화했고, 대물림되는 억압과 폭력의 구조는 춘섬 모(임정은 분)의 얼굴에 인두 자국으로 낙인시키는 설정으로 드러난다.
가장 섬뜩한 장면은, 홍 대감이 찾지 못하도록 춘섬이 스스로 쇳불 화로에 다리피부가 타들어가는 '쇳불 장면'이다. 계급과 신분, 젠더의 억압에 맞선 침묵의 저항이자, 아이를 지키기 위한 모성애의 실천으로서의 자기희생을 보여주며 비로소 춘섬은 비로소 '종'도 '첩'도 아닌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한 인간으로 호명하게 된다. 롤랑 바르트의 기호학적 관점에서 연극 <춘섬이의 거짓말>은 신화적 구조를 통해 텍스트의 의미가 기표와 기의 층위에서 현시대로 의미가 재생산되는 점을 살려볼 필요가 있다. 바르트의 『신화론』은 일상적인 사물이나 인물에게 사회적 이데올로기를 부착하는 의미화의 구조적 분석이다.

이러한 바르트의 구조적 틀에서 춘섬은 종, 첩, 씨받이 등으로 존재의 기표로 확장되고, 극은 이 표상의 의미를 해체해 '어머니', '여성'이라는 새로운 신화적 의미를 재생산한다. 또한 '춘섬'이라는 인물은 조선시대의 종이 아니라, 여성·침묵·거짓말·저항·홍길동 엄마 등 출신 신분의 전복이라는 기의들로 중첩된 신화적 기호로 의미가 발화되면서 관객은 익숙한 고전 플롯의 서사이면서도 이러한 시각을 통해 윤리와 진실, 폭력과 위계, 계급, 신분, 사회 구조의 현상과 문제를 '춘섬의 이야기'를 통해 의미를 생산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때 춘섬의 침묵과 거짓말이라는 기호는 주체적 인간으로 살아가는 '진실'이라는 신화를 전복하는 역설적 진실의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작가와 연출적으로도 <춘섬이의 거짓말>에서 춘섬 스스로 쇳불 화로에 다리를 지지는 장면이 그렇다. 홍 대감이 자신의 몸에 손대지 못하게 하고, 아이를 지키기 위한 춘섬의 내면을 신체적 고통과 진실을 말할 수 없는 침묵의 윤리로 극단적으로 시각화한다. 바르트의 맥락에서 이 행위는 모성의 숭고함이나 여성의 희생이라는 신화적 의미를 부여한다. 춘섬의 몸은 더 이상 억압당하는 대상이 아니며, 뱃속의 아이를 지킬 수 있는 주체적 여성(어머니)이 되는 기호로 전환된다. 홍대감의 꿈 장면은 봉건적 권위를 환상과 영상의 이미지로 해체하는 전복의 장면이다. 청산, 녹수, 꾀꼬리, 청룡과 같은 고전적 기표들은 전통 질서, 가부적 권위, 봉건사회를 드러내는 기호들이다. 그러나 홍대감의 꿈의 서사는 계급과 질서가 무너지는 환상을 통해, 신화화된 이데올로기를 해체한다. 청룡이 날아들어 홍 대감을 위협하는 장면은 '양반의 권위'라는 시대의 허구적 기의를 깨뜨리며, 그 질서가 불안정한 환상임을 보여준다. 홍 대감은 계급과 신분, 권위의 상징이 아니라, 권력의 몰락을 예감하는 무기력한 존재로 재현되는 것이다.

■ 배우들의 연기, 확실한 장면으로 존재감 보여주는 선달 신문성과 매파역 김현
출신 성분이 모호했던 홍길동이라는 캐릭터의 불확정성 서사를 춘섬이의 엄마로 설정한 작가적 상상도 발칙하지만, 작품의 몸은 고전 서사이면서도 옷은 현대적이다. 배우들의 테크닉과 연기가 고전 플롯을 현대 서사처럼 풀어낸 것도, 뚝섬 성수 아트홀에 사는 '춘섬이'의 '거짓말'이 설득력 있게 들릴 수 있도록 무대화했다. 춘섬 역의 이다솜을 비롯해 홍길동 아버지 같은 캐릭터를 보여준 개불이 역의 고예본, 춘섬 모 임정은, 홍 대감 고훈목, 쫑쫑이 송성애, 딸끝네 김명애, 춘섬부 정래석, 안방마님 김의연 등 극 중 인물로 분한 배우들이 고전 서사의 리듬감이 좋은것도 작품이 고전의 맛으로 살아나는 비결이다. 특히 매파 역의 김현은 마 가락도 그 수준이 상당하고, 대사를 주고받는 리듬감이 척척 감긴다. 리액션의 표정과 과하지 않은 즉흥성, 퇴장까지 존재감이 살아 있는 캐릭터를 보여준다.
특히 선달과 관기 순항의 이별 장면은 극 전체의 주제를 서브해주는 비극적 하이라이트이다. "뱃속의 아이가 선달 아이임을 사또에게 말만 해달라"고 호소하며 매달리는 순향(채연정)을 향해, "그것만은 할 수 없다"며 옷부터, 가진 것을 다 던지는 신문성의 연기는 비극적인 장면을 웃음으로 전환한다. 장면의 무게를 대사의 리듬과 박자, 호흡과 표정으로 웃게 하면서도 장면 전체는 아플 정도로 짠함을 유지하는 연기를 보여준다. 요즘 TV 드라마와 영화에서 보여주는 연기가 무대 위에서 더 살아나는 좋은 배우다. 김정숙 작가는 <조선여자전> 시리즈를 통해 여성들의 삶을 주체적으로 복원해내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특히 <심청전을 짓다>는 심청이를 인당수로 몰아넣은 가난과 죽음의 문제를 사회 구조와 권력, 우리의 문제로 풀어낸 작품이다.
김건표 대경대학교 교수(연극평론가)
댓글 많은 뉴스
"李, 기어이 국민 역린 건드리나"…조국 특사명단 포함에 野반발
김문수, 전한길 토론회서 "尹 전 대통령 입당, 당연히 받아…사전투표 제도 없앨 것"
[매일희평] 책임지지 않는 무한 리더십
조국혁신당 "조국 사면은 인지상정…파랑새 올 것 같아 기쁘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 "남북, 두 국가일 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