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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현장-배형욱] 성장 가능성 시험대된 '포엑스 2단계 사업'

동부지역본부 배형욱 기자
동부지역본부 배형욱 기자

경북 포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POEX) 2단계 사업이 예상치 못한 장애물 앞에 멈춰 섰다. 영일대 앞바다를 배경으로 포항을 전국 5대 MICE(회의·전시·컨벤션·이벤트) 거점으로 키우겠다는 포항시의 야심 찬 계획은 정작 교육 현장과 부딪치며 갈림길에 섰다. 중심에는 '동부초등학교 이전'이라는 민감한 문제가 있다.

시의 구상은 명확했다. 이미 완공된 1단계 전시장 옆 부지에 호텔과 부대시설을 확충해 국제 규모의 행사 수용 능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대상 부지는 현 동부초 부지였다. 시는 주변 환경이 교육에 적합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유흥 시설 밀집, 도심 슬럼화, 학부모 민원 등 교육 환경 악화를 해소하면서 동시에 지역 산업의 신성장 동력을 만드는 '두 마리 토끼 잡기'라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포항교육지원청의 입장은 단호했다. 동부초는 최근 70억원을 들여 리모델링을 마친 상태이고, 학령인구 변동에 대비해 현 위치가 최적지라는 것이다. 시가 제시한 대체 부지들은 통학 거리, 주변 환경, 장래 발전성에서 미흡하다고 판단했다. 더구나 교육청은 "사업 협의가 공식적으로 진행된 적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시는 지난해부터 구두 합의와 조사 용역까지 진행했다고 주장하지만, 교육청은 이를 부인한다. 결국 행정 절차 이전에 신뢰에 금이 간 셈이다.

이 갈등은 표면적으로는 부지 이전 문제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도시 발전의 속도'와 '교육 현장의 안정성'이라는 두 가치가 충돌하고 있다. 시는 시간이 곧 경쟁력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전국 도시들이 MICE 산업 유치를 위해 치열하게 달려가는 상황에서 몇 년을 더 소모한다면 기회를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교육청은 학교 이전이 교육과 학생, 학부모에게 미칠 장기적 영향을 우려한다. 속도보다 방향, 산업보다 사람이라는 시각이다.

양쪽 모두 그 나름의 명분이 있다. 그러나 명분만으로는 해법이 나오지 않는다. 협의는 결국 '서로의 필요'를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 시는 교육청이 우려하는 교육 환경 보완책을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한다. 예를 들어 대체 부지의 교통·안전 대책, 이전에 따른 학습권 보장 방안, 학교 시설 현대화 계획 등이 구체적으로 나와야 한다. 교육청 역시 도시 발전 전략 속에서 교육이 어떻게 함께 성장할 수 있는지 열린 마음으로 논의해야 한다.

공청회나 주민 설명회는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학생과 학부모, 인근 상인, 지역 산업계 모두의 목소리를 듣는 절차가 없다면 결국 한쪽의 논리만 남기 마련이다. 갈등의 소용돌이를 벗어나려면 폐쇄적 논쟁을 공개적 토론으로 바꿔야 한다. 도시의 미래와 교육의 미래는 대립할 이유가 없다.

더 나아가 이 사안은 행정기관 간 '힘겨루기'가 아니라 공동의 목표를 향한 '역할 조율'이어야 한다. 도시 개발과 교육은 각기 다른 길을 걷는 듯 보여도 궁극적으로는 한 사회의 성장이라는 같은 종착지를 향한다. 교육청이 '학생의 안전과 학습권'이라는 깃발을 놓지 않는 만큼 시 역시 '지역 경제와 경쟁력'이라는 기치를 버릴 수 없다. 그렇다면 양쪽은 서로를 설득할 언어를 찾아야 한다.

POEX 2단계 사업은 단순한 건물 증축이 아니다. 이는 포항이 앞으로 어떤 도시가 될지, 어떤 방식으로 성장할지를 가늠하는 시험대다. 협치와 신뢰가 빠진 개발은 모래 위에 세운 성처럼 무너진다. 시와 교육청이 각자의 원칙을 유지하되 서로의 우려를 해소하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만 이 사업이 갈등의 상징이 아니라 포항의 미래를 여는 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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