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호 칼럼] 정당의 정체성

황현호 전 부장판사, 동대구합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황현호 전 부장판사, 동대구합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한국어에서 정체성이라는 말은 뜻이 모호하다. 영어의 Identity를 번역한 말로서 평소 대화에서는 잘 쓰지 않는 용어이다. 오히려 실제 대화에서는 교통정체와 같이 막힘을 뜻하는 용어로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차라리 동질성, 또는 동일성이라는 말로 번역하는 것이 영어의 어원에 부합된다.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 로그인을 하려면 자기만의 고유한 식별을 사용하여야 하는데 그것을 ID(Identification)라 하며, 이 경우에는 동일성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정당에 있어서 정체성은 당헌, 당규, 강령 등에 기술되어 있다. 회사에는 사훈이 있고. 학교에는 교훈이 있다. 이러한 것도 넓은 의미에서는 정체성의 범주에 속할 수가 있다.

위와 같이 정당에 있어서 정체성이란 종교, 민족, 민중, 이념 등 정파적 동질성을 바탕으로 정치 세력을 구성하고, 이들의 이익과 관점을 집중적으로 대변하고자 하는 정치를 의미한다. 이슬람 국가는 종교 정체성, 공산주의 국가는 이념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국가이다.

세상엔 인종, 종교, 성별, 이념, 노동, 지역 등 수많은 영역에서 정체성이 존재한다. 구성원 내 동질성이 있는 집단이 압도적 다수이면 정체성으로 정치활동을 할 수 있겠으나,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자유민주국가에서 정체성을 고집하는 것은 지지층의 범위를 축소하여 집권에는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많다.

정체성을 주장하는 정치가들은 자신들의 정치 행위의 정당성을 관철하기 위해 대중 선동을 하는 특징이 있다. 또한 정치 행위의 정당성이 의심받을 때에는 정체성 선동을 통해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 하기도 한다. 공산주의 정권자들이 장기 집권을 하면서 부르조아를 몰아내기 위해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 예이다.

정치에 있어서 정체성은 결국 극단주의와 결부될 우려가 있다. 이란 하메네이 정권은 36년 간 집권하면서도 종교적 동질성이란 정체성 선전을 통해서 장기 집권을 하고 있다. 동질성이 없는 광범위한 집단에서 정체성 정치를 주장하면, 구성원 간에 피아 식별을 강요받게 된다. 정체성 주장자들은 지속적으로 '선민의식'을 구성원에게 주입시켜, 상대편에 대한 '배타성', '공격성'을 가지게 된다.

정치세력 간 증오가 임계점을 넘기는 순간 테러와 전쟁 및 집단 학살 등 서로를 말살하기 위한 극단적 폭력사태가 벌어지게 될 수도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는 같은 이슬람권이라도 종교적 극단주의가 지배하지 않아 전쟁 위협이 적지만,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래로 종교와 정치를 일치시키는 신정정치를 하여 인근 이라크와 전쟁을 치렀고, 최근에는 이스라엘과 미사일 및 폭격기를 동원하는 전쟁을 벌였다.

우리나라는 단일민족이기는 하지만 다종교, 다이념 국가이기 때문에 정체성을 기준으로 전국적 정당을 구성하는 것은 지지층의 축소를 가져와 각종 선거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많다. 정체성은 그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구성원의 범위가 좌우되고 개념상호 간 간섭현상이 있어 한 가지 징표로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가령 부정선거 찬반, 계엄 찬반, 탄핵 찬반 등 각종 정치적 문제에서 한 사람이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다. 이들 모두가 일치하는 사람만 정체성 그룹에 편입시킨다는 것은 편협한 주장이다. 전국 정당은 최대 다수의 최대 득표를 목표로 해야 집권에 성공하지, 정체성에 매몰되어 지지층을 좁게 한정하면 집권은 멀어진다.

우리나라 양대 정당 중 국민의힘은 자유를 제일의 가치로 삼고 있다. 자유란 개인의 창의와 혁신을 중시하며 평등과 대립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적 활동의 자유를 인정하고 그 결과 소득의 불균형은 복지를 통해서 보완하는 것으로 해소한다. 정치적으로도 집단적 사고 보다는 개인의 자유를 중시한다.

이에 비하여 더불어민주당은 평등을 제일의 가치로 삼고 개인의 자유와 개성 보다 집단의 의사를 중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개인의 경제적 활동에 대하여 조세, 규제 등을 통해 자유를 제한하여 소득 불균형을 시정하려고 하며 경제적 약자 또는 전체 국민에게 각종 보조금을 지급하는 평등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 양대 정당이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나라의 국격이 상승하고 경제가 선진국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