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뜻을 가장 잘 반영하는 것은 국민이 직접 선출한 선출 권력들이다. 임명 권력은 선출 권력으로부터 2차적으로 권한을 다시 나눠 받은 거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는 권력의 서열이 분명히 있다. 최고 권력은 국민, 국민 주권. 그리고 직접 선출 권력, 간접 선출 권력."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들려온 대통령의 궤변은 반헌법적이다. 권력자가 입버릇처럼 내세우는 "국민의 뜻"은 대개 권력을 사유하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국민주권정부라는 타이틀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소위 주권자라는 미명으로 자가당착적 통치를 미화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민주공화국에서 '국민의 뜻'은 헌법에 투영되어 있으며, 국민 또한 헌법의 지배를 받는다. 그 헌법이 정의한 삼권분립을 일개 위정자의 입맛대로 재단할 수 없다. 대한민국 헌법과 국민은 대통령에게 헌법의 자의적인 해석 권한을 주지 않았다.
선출권력 우위론은 허구 그 자체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헌법에서 삼권분립의 어떤 축도 다른 권력의 우위나 열위에 있지 않다. 혹시 의전서열을 권력서열로 오인했다면 우스갯거리조차 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집권당이 장악한 국회를 앞세워 벌이고 싶은 일이라도 있는지 모르겠다. 선출권력이 임명권력보다 위에 있다면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파면도 온당치 않다.
더구나 선출권력 우위가 국민의 뜻이라면 국민 절반의 지지도 얻지 못한 대통령이 전권을 행사하는 것도 불합리하다. 정녕 국민의 뜻이라면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얻은 41.5%만큼 권력을 나누어줄 것인가. 국민의 뜻은 건건이 편의적으로 동원하는 엿가락이 아니란 말이다. 이런 반헌법적 망동을 다스리기 위해서 헌법은 사법부에게 수평적인 권력의 한 축을 맡겼다.
대통령실 대변인은 여권의 대법원장 사퇴 요구에 "아주 원칙적으로 공감한다"고 밝혔다. 그의 발언은 공적 기록이자 대통령의 뜻이라는 점에서 '국민의 뜻' 운운하는 저의가 명징하게 드러났다. 더군다나 무엇이 켕기는지 속기록에서 '원칙적으로 공감' 표현을 삭제했다가 항의를 받고 복원했다.
이 과정이 대통령의 재가 없이 이루어졌다면 이는 국정농단의 시초이므로 마땅히 대변인을 해임해야 한다. 물론 그것이 대통령의 의중이라면 권력에 서열이 있다는 따위의 망상을 버려야 한다.면책의 갑옷으로 무장한 집권당 국회의원들도 대법원장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이재명 후보의 공직선거법 유죄 취지 파기환송에 대한 복수극으로 읽힌다. 지난 수년간 그의 법꾸라지 행적과 방탄국회에 국민의 분노가 극에 달했던 것을 잊은 모양이다. 대법원장 사퇴의 근거로 내세운 국무총리와의 비밀 회동과 밀약은 가짜뉴스였다. 그러나 찌라시만도 못한 거짓으로 삼권분립을 무너뜨리려는 자들이 그 책임을 AI와 유튜브에 전가하고 있다.
이 사건의 핵심인 서영교 의원은 21대 국회에서 가짜뉴스 유포 시 징역 7년 이하 처벌법을 대표 발의한 인물이다. 서 의원이 제출한 법안의 가짜뉴스는 그가 벌이는 작태와 일맥상통한다. "가짜뉴스는 정치적 또는 경제적 이익을 위하여 공연히 거짓 또는 왜곡된 허위의 사실을 언론보도로 오인하게 하는 내용의 정보이다." 이 사건은 3년 전 청담동 술자리 가짜뉴스 사건의 확대재생산 판이다. 그 가짜뉴스 유포자는 근신은커녕 현 정부에서 새만금개발청장으로 영전했으니 '국민의 뜻'은 그저 그런 사탕발림이다.
선출권력 우위론의 백미는 집권당 대표의 요설이다. 가짜뉴스로 대법원장을 겁박하고 삼권분립을 훼손한 파렴치에도 당당하다. 오히려 대법원장에게 "억울하면 수사 받으라"고 비열하게 깐족댄다. 인성의 밑바닥을 드러내는 이런 부류가 '국민의 뜻'을 가장해서 '강성 지지층의 뜻'을 받들고 있다.
삼권분립의 훼손은 헌정 농단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현재 대통령의 모든 재판이 중단된 상태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사법부 압박을 퇴임 후 재판을 면책받으려는 술책의 하나로 의심한다. 그렇다면 국민의힘이 "억울하면 재판 받으라"고 대통령을 공박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집권당 대표가 이번에는 어떤 요설을 내뱉을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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