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기초자치단체 상당수가 공약 이행률을 자의적 기준으로 집계한 탓에 실제 추진 상태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부 검증 제도를 마련한 곳도 있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운영되면서 공약 이행률이 구정 홍보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사업비 확보 실패에도 정상 추진? 부풀려진 공약이행률
18일 대구 북구청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공약 이행률은 88.8%다. 전체 28개 공약 중 16개가 마무리됐고 정상적으로 추진 중인 12개 사업의 추진 정도에 따라 집계된 수치다. 추진 상황이 부진한 '일부 추진'의 경우 단 한 건도 없었다.
하지만 현실은 구청 발표와 괴리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정상 추진'으로 표시된 구수산스포츠센터 건립 공약의 경우, 올해 삽을 떴지만 사업비 대부분을 확보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해당 사업은 공사 예정지가 암반층인 탓에 공사비가 늘었고, 문화재까지 발견되면서 사업비가 약 130억원 증액됐다. 하지만 아직까지 기획재정부는 17억원만 추가 지원하겠다고 밝히면서 사업 추진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도시농장확충 사업 역시 '공약 달성 후 지속 추진'으로 분류됐지만, 실제 사업 결과는 부실했다. 공영도시농업농장 1곳을 확장 이전하는 데 그치면서 11개 구좌(1구좌 당 24㎡ 내외)를 추가 확보하는 데 그친 것이다. 해당 사업 일부인 '상자텃밭' 사업은 대구시의 예산 지원이 끊기면서 아예 중단된 것으로 확인됐다.
공약이행률을 지나치게 부풀리는 사례는 다른 기초자치단체에서도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
서구청의 경우 최근 국공립 어린이집을 9개 확충하면서 공약을 100% 달성했다고 발표했지만, 구청 지원으로 민간어린이집이 국공립 어린이집으로 전환한 사례는 고작 2곳뿐이었다. 나머지는 500세대 이상 아파트에 국공립 어린이집을 의무로 설치해야 하는 법에 힘입은 사례였다.
아예 공약 달성을 위해 사업 목표를 하향 조정한 사례도 확인됐다.
동구청의 경우 구청장 공약으로 불로봉무·공산 권역에 공공도서관을 완공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다. 당초 공약 100% 달성 기준은 공공도서관 준공이었지만 지난해 달성 기준이 '착공'으로 바뀌었고 해당 공약도 추진 완료된 것으로 분류됐다.
◆"공약이행률, 구정 홍보도구 전락 우려… 평가 방식 바꿔야"
대구 기초자치단체가 공약이행률을 부풀리는 정황이 속출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구청이 사업을 자체평가하면서 이같은 문제가 확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구 9개 구군 대부분은 공약이행률과 관련해 사업 부서 보고를 그대로 받아 주민에게 공표하고 있다. 추진 중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비판을 우려한 사업 부서가 이를 숨길 경우 알 수 없는 구조다.
주민들로 구성된 외부 검증 제도도 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북구청은 공약이행률을 점검하는 주민 평가단을 운영하다 이들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지난 2022년 평가 제도를 폐지했다. 동구청은 아직까지 주민 16명으로 구성된 평가단을 운영하고 있지만 연 2회 회의 방침에도 불구하고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단 한번도 회의를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시민단체는 공약이행률이 사실상 성과 홍보용으로 변질됐다며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조광현 대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은 "공약 이행률이 주민에게 구청장을 평가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잣대인 만큼 수치 부풀리기는 안 된다"며 "사업 규모나 중요도가 큰 사업의 경우, 주민들이 스스로 이행률을 확인할 수 있게 사업 진행 내용을 더욱 세세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부 검증 제도를 보완·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조영태 대구참여연대 상근활동가는 "평가단의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제도를 없앨 게 아니라,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하도록 주민들을 교육해야 한다"며 "지자체 별로 평가 기준이 달라 형평성이 없는 점을 감안해, 행정안전부에서 표준 평가 방식을 배포하는 방법도 도움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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