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정장관 러-취 소장은 다수의 철도종업원이 경찰관 주재소를 습격한 사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곡 불법 반출을 감시하던 경찰관이 기차 내에 은닉된 미곡을 발견하고 즉시 압수하자 철도종업원들은 18명을 함열역으로 파유하여 경찰관 주재소를 습격하였다.' (매일신문 전신 남선경제신문 1946년 3월 15일 자)
식량난은 해방 이듬해 춘궁기로 접어들면서 더욱 심해졌다. 주민들은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식량을 배급받으러 쌀자루를 들고 경북도청이나 대구부청으로 달려갔다. 시간이 갈수록 쌀을 구하기 어려웠고 쌀값마저 폭등해 굶주림의 고통은 한층 심해졌다. 당국은 쌀 수급을 조정하려고 철도로 반입되는 곡류를 1인당 1두 이하로 제한하려 했다. 그런 와중에 철도종업원이 경찰 주재소를 습격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관 4명은 크게 다쳤고 철도종업원들은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철도종업원들은 왜 경찰을 공격했을까. 쌀 때문이었다. 식량난에 따른 곡식의 불법 반출을 감시하던 경찰이 기차에서 쌀을 찾아내 압수했다. 철도종업원들이 숨겨놓은 쌀이었다. 쌀을 뺏긴 철도종업원들은 경찰 주재소 습격으로 분풀이했다. 종업원들의 경찰 공격은 미곡 압수에 대한 불만만은 아니었다. 청산되지 않은 일제 경찰에 대한 분노가 섞여 있었다. 주재소는 일제강점기에 순사가 머무르며 업무를 보던 경찰의 말단 기관이었다. 해방 후 지서로 바뀌었고 도시의 파출소와 같은 기능을 했다.
민중들은 해방 후 일제 경찰의 잔재는 쉬이 사라질 것으로 여겼다. 그런 기대가 사라지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일제의 앞잡이로 복무했던 순사가 해방 후에도 6천명 가까이 옷만 갈아입고 경찰관 자리를 지켰다. 일제 경찰의 악몽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여기에다 일부 경찰의 행태 또한 사람들의 분노를 불렀다. 공포의 대명사였던 고문을 경찰이 해방 후에도 여전히 자행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게다가 경북도에서 발생한 좌우익 테러의 수사가 편파적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경북경찰청에서는 호역 창궐의 비상 상태에 처하여 28일 교통차단으로 오를 물가 폭등을 방지하고 도민 생활의 안정유지를 기하고자 27일을 한계로 하여 생활필수품의 가격을 정지시키고 생필품의 수급을 조정하는 중요사항을 포고하여 일반도민과 특히 상업자의 동포애의 발로로 건국 정신으로 국가사회에 봉사하기를 요망하고 있다.' (남선경제신문 1946년 6월 30일 자)
식량난 와중에 해방 이듬해 5월에는 콜레라가 발병했다. 전염병 확산을 막을 요량으로 지역 간 이동이 제한됐다. 교통이 차단되자 생산지로부터의 쌀 수급이 끊겼다. 다급한 사람들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동을 강행했다. 그런 사람들을 이용해 돈벌이하는 경찰이 나왔다. 신천교 다리를 지키던 순경은 뇌물을 받고 통행을 시켰다. 경주 탄광사무소의 서무과장이 다리를 통과하면서 건넨 500원을 받았다. 통행이 금지된 다리를 건너게 해준 대가였다.
다리 통과 조건으로 받은 뇌물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돈을 받은 순경뿐만 아니라 돈을 준 서무과장도 구속됐다. 또 금품을 수수한 순경 외에 다른 2명의 순경도 폭행 혐의로 파면 되었다. 돈을 줬다고 실토한 서무과장을 수감 하면서 발길로 차고 때린 혐의였다. 경찰이 서무과장을 폭행한 이유는 간명했다. 돈 준 사실을 발설해 함께 근무하는 동료 경찰이 억울하게 구속됐다는 것이었다. 어쭙잖은 동료애를 발휘한 것이었다.
경찰의 뇌물수수는 이즈음에 낯설지 않았다. 심지어 경찰 퇴직 후에도 뇌물을 받다가 경찰에 체포되는 일도 있었다. 대구경찰서에 근무하던 손모 순경은 경찰에 구금된 피의자의 모친을 찾아가 사건을 해결해 주겠다며 현금 4천원을 받았다. 경찰을 그만둔 뒤에도 이 같은 행태를 되풀이했고 '악질 경관의 뇌물 사건'으로 보도됐다. 또 미곡 유통으로 단속된 사람의 처를 찾아가 경찰이라 속이고 2천원을 뺏다시피 챙기는 일도 벌어졌다.
그 시절 경찰관에게 뇌물을 주고 콜레라 확산으로 차단된 다리를 건넜다고 실토한 시민을 동료 경찰이 폭행했다. 경찰 식구를 감싸는 동료애를 허투루 발휘한 것이었다. 권한이 커질수록 진짜 동료애는 더 필요할 테다.

박창원 경북대 역사문화아카이브연구센터 연구원
댓글 많은 뉴스
李대통령 "국감서 뻔뻔한 거짓말 안돼…위증 왜 수사 안하나"
대구시장 후보 지지도, 이진숙 21.2% VS 김부겸 15.6%
AI 시대 에너지 중요한데…'탈원전 2막' 가동, 에너지 대란 오나
"조용히해! 너한텐 해도 돼!" 박지원 반말에 법사위 '아수라장'
배현진, 조국 겨냥해 "강남 집값 올린건 문재인·박원순 커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