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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단 조성에 사라질 영주 '아치나리'…주민 추억 책으로 엮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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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베어링 국가산단 들어서는 휴천3동 아치나리, 보상지역 주민 삶·기억 담아
집채만 한 구렁이 전설부터 이주 이야기까지… 공사 두 번째 스토리북 제작

영주 첨단베어링 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될 사업지 내에 전해지는 휴천 정비사업 중 나타난 구렁이 이야기를 주민 김호영 씨의 구술을 바탕으로 제작된 삽화의 모습. 해당 내용은 경북개발공사가 발간한 아치나리 사람들에 게재 돼 있다. 경북개발공사 제공
영주 첨단베어링 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될 사업지 내에 전해지는 휴천 정비사업 중 나타난 구렁이 이야기를 주민 김호영 씨의 구술을 바탕으로 제작된 삽화의 모습. 해당 내용은 경북개발공사가 발간한 아치나리 사람들에 게재 돼 있다. 경북개발공사 제공

경북개발공사가 영주 첨단베어링 국가산업단지 조성으로 사라질 영주시 휴천3동 일대, 이른바 '아치나리' 주민들의 추억을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보상지역 주민들의 기억을 기록하는 스토리북 작업으로는 두 번째다.

책 제목은 마을 이름을 그대로 딴 '아치나리 사람들'. 개발로 인해 집과 논밭을 떠나야 하는 주민 10여 명의 구술과 수필, 오래된 사진, 마을 전설과 풍경을 모아 '여기, 분명 사람 살았다'는 흔적을 남겼다. 산업단지가 들어서면 지형은 완전히 바뀌지만, 그전에 사람들이 살던 이유와 표정을 기록으로라도 지키겠다는 취지다. 책 제작에는 수필가이자 소설가인 김이랑 씨와 박채현 동화작가가 참여해 완성도를 높였다.

책 속 이야기는 처음부터 옛날이야기처럼 풀린다. 하천 정비 공사를 하다 바위를 뒤집는 순간, 포크레인 앞에 모습을 드러낸 '커다란 구렁이' 전설이 대표적이다. 공사 인부들이 겁을 먹자 주민들은 공사를 멈추고 며칠 동안 지켜보다 막걸리를 떠다 놓고 제를 지냈고 구렁이가 막걸리를 마신 뒤 슬며시 산으로 사라졌다는 구술이 그대로 실렸다. "구렁이 집을 헐었으니 예를 갖춰 양해를 구했다"는 한마디가, 이 동네 사람들의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웃기고 슬픈 농촌지역의 에피소드도 사실적으로 담겼다. 송아지 한 마리에 집안의 희망을 걸었다가 병과 사고로 잃어버린 이야기, 나무에 묶어둔 염소가 한 방향으로만 빙빙 돌다 목줄에 스스로 목이 졸린 이야기 등이다.

주민들은 "우리 삶도 염소처럼 사철 농사만 뱅뱅 돌며 사는 것 같았다"면서도 "그래도 그 세월이 있었기에 지금을 버틴다"고 털어놓는다.

사람 이야기는 더 솔직하다.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다시 고향으로 내려온 이, 자식 공부를 위해 땅을 팔고도 "그래도 그게 제일 잘한 일"이라고 말하는 부모, "각자 자기 복대로 사는 것"이라며 담담히 이주를 준비하는 노부부까지 각자의 문장으로 삶을 정리한다. '내 한 생에서 가장 멋진 녀석은 바로 나', '땅은 정직하다. 진심을 심은 만큼 거둔다'는 문장은, 유명 인용구보다 더 생생한 생활 철학으로 읽힌다.

영주 아치나리 아랫마을 연동골에는 우리나라 5대 국필로 알려진 석당 김종호 선생이 거주하셨다. 경북개발공사 제공
영주 아치나리 아랫마을 연동골에는 우리나라 5대 국필로 알려진 석당 김종호 선생이 거주하셨다. 경북개발공사 제공

이번 책에는 아치나리에서 나고 자란 인물들의 발자취와 마을 풍경 사진도 함께 담겼다. 흙먼지 날리던 논길, 굴렁쇠와 소 울음소리가 뒤섞인 장터 가는 길, 장독대와 드럼통이 나란히 서 있던 뒤꼍(집 뒤에 있는 뜰이나 마당) 등, 곧 지도에서 사라질 장면들이 흑백과 컬러 사진으로 이어진다. 책 장 한쪽 구석에 적힌 '다시는 돌아갈 수 없어 더욱 아까운 길은 다들 어디로 떠났을까'라는 문장이 이 풍경에 힘을 더한다.

경북개발공사는 앞서 다른 사업지에서도 보상지역 주민 이야기를 책으로 엮은 바 있다. 이번 '아치나리 사람들'은 두 번째 작업이다.

이재혁 경북개발공사 사장은 "보상금은 숫자로 남지만 고향에 대한 마음은 숫자로 셀 수 없다"며 "토지는 수용되더라도 이곳에 사람이 살았다는 사실만큼은 오래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영주 첨단베어링 국가산단은 지역과 국가 미래를 위한 중요한 기반이 되지만, 그 출발점에는 삶의 터전을 기꺼이 내어준 주민들이 있다"며 "아치나리 사람들이 떠나는 분들께는 작은 위로가, 나중에 이곳에서 일하게 될 젊은 세대에게는 '이 땅의 지난 시간'을 알려주는 안내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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