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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326>선풍도골의 신선 풍모 미수 허목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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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미술사 연구자

이명기(1756~1813?),
이명기(1756~1813?), '허목(許穆) 초상', 1794년(정조 18), 비단에 채색, 72.1×56.8㎝,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문정공 허목 팔십이세 진(文正公許穆八十二歲眞)'으로 표제가 있는 미수(眉叟) 허목(1595~1682)의 모습이다. 담홍색(淡紅色)이라고 했던 분홍빛 시복(時服) 차림인 조선 관료의 반신상 초상화이다. 허목의 관직 진출은 곡절이 많았다. 젊은 시절 성균관에서 공부할 때 인조에게 밉보여 과거에 응시하지 못하게 된다. 나중에 정거(停擧)가 풀렸음에도 과거를 보지 않고 독서와 학문, 교육에 전념했다.

명성이 높아지자 56세 때 학행(學行)으로 천거됐으나 벼슬길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60대가 돼서다. 81세 때(1675년) 우의정에 제수된다. 허목은 과거제도를 비껴서 정승 반열에 오른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눈썹 노인'이라는 호대로 희게 세었을 뿐 82세인데도 무성한 눈썹이 눈꼬리까지 내려왔다. 오사모에 가려 귓등으로 조금 보이는 머리칼, 덥수룩한 눈썹, 살짝 휘날리는 멋진 수염이 모두 새하얀 백발이라 관복을 입었으나 선풍도골(仙風道骨)의 신선 같은 풍모다. 허목의 범상치 않은 외모와 연관되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많이 전한다.

지금도 집에 두면 액운을 막아주는 벽사의 효능이 있다고 믿어지고 있는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 비문도 그렇다. 척주는 삼척의 다른 이름이다. 허목이 삼척부사로 좌천됐을 때 바닷가 백성들을 위해 '동해송(東海頌)'을 짓고 자신만의 전서체로 써서 빗돌에 새겨 세우게 한 이 비로 풍랑을 막았다고 한다. 파도를 물러나게 하는 신비한 힘을 가졌다고 해서 '퇴조비(退潮碑)'로도 불렸다.

허목은 남인의 영수로 노론의 우암 송시열과 대립했던 정치가로 먼저 떠오르지만 대학자이자 서예가인 다재다능한 인물이다. 미수전(眉叟篆)으로 명명된 독특한 전서는 육경고학(六經古學)을 추구한 그의 학문에서 나온 글씨다. 허목은 송나라 신유학이 아니라 진(秦)나라 이전의 원시유학을 이상으로 삼아 의거하는 경전이나, 실행하는 예법이나, 글쓰기인 문장이나, 글씨체인 서체에 이르기까지 하은주 삼대의 문화를 스스로 구현하고자 했다. 이런 신념으로 학문과 서예를 일치시켜 고대의 이상을 서예로 실천해 글씨로 복귀하려한 허목의 특이한 창작이 미수전이다.

'허목 초상'은 1794년 정조가 허목의 후손가에서 초상화를 가져오도록 해 어람하는 과정에서 이명기가 모사한 이모본(移模本)이다. 표제는 당시 75세인 채제공이 썼다. 그런데 표제가 보통과 다르다. 사실은 '문정공 미수 허선생 팔십이세 진'이라고 해야 맞다. 채제공은 그림 위쪽에 같이 표구된 발문에 이 초상화의 전말을 기록하며 '허목'으로 선생의 성휘(姓諱)를 곧장 쓴 것은 어람을 대비해서였다고 밝혔다. 표제가 예법에 어긋난 것을 이상하게 여길 후세 사람들을 위해 기록해둔 것이다. 왕 앞에서는 이름(名)을 부를 뿐 자(字)나 호(號)를 들먹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구의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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