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비극은 '알면서도 하지 못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쿠팡 경영진이라고 왜 모르겠는가. 한국 사회에서 기업이 위기를 넘기는 가장 값싸고 효율적인 방정식을 말이다.
오너가 국회에 출석해 90도로 허리를 굽히고, 눈물을 글썽이며 "모두 제 부덕의 소치"라고 읍소하는 것. 그리고 뒤로는 지역구 의원들에게 "의원님 지역에 물류센터 하나 짓겠습니다"라고 약속하는 것.
이것이 한국에서 '괘씸죄'를 벗고 면죄부를 사는 전형적인 '정치적 거래(Political Transaction)'의 문법이다.
하지만 쿠팡은 그 '쉬운 길(Easy Way)'을 버리고, 온 국민에게 손가락질받는 '가시밭길(Hard Way)'을 택했다. 대중은 이를 '오만'이라 부르지만, 경영학과 법학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이성(Reason)'의 결과다.
◆ '죄송하다'는 말이 미국에선 '자백'이 된다
가장 큰 족쇄는 쿠팡이 미국 뉴욕증시(NYSE) 상장사라는 '신분'이다. 한국에서의 사과(Apology)는 정서적 위로지만, 영미법 체계인 미국 법정에서의 사과는 명백한 '책임 인정(Admission of Liability)'으로 간주된다.
만약 김범석 의장이 한국 국회에서 호통에 못 이겨 "네, 전적으로 제 잘못입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 발언은 실시간으로 번역되어 미국 법정에 증거로 제출된다.
이는 곧바로 수조 원대의 징벌적 손해배상과 주주들의 집단 소송(Class Action)을 트리거(Trigger)하는 방아쇠가 된다.
쿠팡은 지금 '한국의 정서법'과 '미국의 상법'이라는 양립 불가능한 두 개의 법정 사이에 서 있다. 한국에서 욕을 먹지 않으려면 미국에서 회사가 망할 위기를 겪어야 하고, 미국에서 회사를 지키려면 한국에서 '파렴치한'이 되어야 한다.
쿠팡의 침묵은 이 제로섬(Zero-sum) 게임에서 기업의 존속을 위해 선택한, 피 말리는 '전략적 인내'였다.
◆ 국회의원들의 호통, 그 뒤에 숨겨진 '지대 추구'의 욕망
그렇다면 한국의 국회의원들은 이 사정을 모를까? 알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여기에는 '정치적 셈법'이 작동한다.
경제학적으로 볼 때, 청문회장에서의 고성(高聲)은 정치인에게 남는 장사다. 대기업 총수를 혼내는 모습은 '서민의 대변자'라는 이미지를 획득하는 가장 효과적인 퍼포먼스다. 국회의원이 사는 길은 기업을 악마화하여 자신의 도덕적 우위를 증명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더 깊은 곳에는 '약탈적 교환'의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 겉으로는 정의를 외치지만, 강하게 압박할수록 기업과의 협상력은 높아진다.
큰 소리를 칠수록 기업은 그 의원을 달래기 위해 지역구 민원 해결이나 투자 약속 같은 '당근'을 내밀 가능성이 커진다. 어쩌면 지금의 호통은 "우리 지역구에 무엇을 해줄 텐가"라는, 청구서의 다른 이름일지 모른다.
◆ '죽여야 사는' 정치가 아니라 '살려서 얻는' 지혜가 필요하다
문제는 이 정치적 쇼의 비용을 누가 치르느냐다. 쿠팡을 악으로 규정하고 영업 정지나 과도한 규제로 손발을 묶으면, 정치인들은 '정의를 구현했다'는 명분을 얻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6만 명의 고용인과 수십만 소상공인, 그리고 편리한 물류 혜택을 누리는 국민들에게 전가된다.
쿠팡은 침묵의 시간 동안 '데이터 100% 회수'라는 실질적 가치를 만들어냈다. 이것이 쇼맨십에 능한 정치인들과, 묵묵히 문제를 해결하는 기업인의 차이다.
세계적인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기업의 존재 목적은 고객 창출"이라고 했다. 쿠팡을 죽여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일시적인 감정의 카타르시스뿐이다.
하지만 쿠팡을 살리고 그들의 혁신을 독려한다면,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물류와 보안 시스템을 동시에 가진 기업을 자산으로 갖게 된다.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기업을 인질로 잡는 '호통의 정치'가 아니라, 기업이 처한 글로벌 딜레마를 이해하고 국익을 위해 퇴로를 열어주는 '통찰의 정치'다.
쿠팡이 걷고 있는 그 힘든 길의 끝에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몰락'이 아니라 'K-커머스의 진화'가 되게 하려면, 이제는 우리가 그들의 '말 못 할 사정'을 읽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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