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天과 南天 사이 여름이 와서
붕어가 알을 깐다.
南天은 막 지고
내년 봄까지
눈이 아마 두 번은 내릴 거야 내릴 거야.
(김춘수 시집 『南天』 근역서제, 1977)
'꽃의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김춘수(1922~2004)의 「南天」은 행간을 읽어야하는 시 가운데 하나로 한때 회자됐다. 한 평론가가 '남천은 인간의 영혼이 죽어서 가는 도솔천 아래에 있는 명부(冥府)의 세계를 노래한 것'이라고 어느 신문에 월평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기철 시인이 대구 만촌동 김춘수 시인의 자택에서 직접 들은 이야기는 뜻밖이었다. 남천은 집 마당 한쪽 귀퉁이에 심겨진 관목을 가리킨다는 설명이었다. '남천'이라는 시어(詩語)가 나무 이름이라면 시는 난해하지도 싱겁지도 않게 읽힌다.
한겨울 추위 속에도 새빨간 열매와 홍조 띤 잎을 꿋꿋하게 매달고 절조를 지키는 작은 떨기나무가 바로 시인이 노래한 남천이다. 꽃이 귀한 계절에 꽃보다 더 화려한 존재감이 돋보이는 남천은 어떤 나무일까?
◆ 겨울 잎이 고운 나무
대구 도심 거리의 차도와 인도 경계부분, 도심 작은 공원, 주택의 담장 아래, 아파트 단지의 산울타리 등을 살펴보면 키 1m 내외의 나지막한 남천이 붉으락푸르락한 잎을 삭풍에 내맡긴 모습은 처연하기보다는 겨울 풍광의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악센트다. 삼동에는 이파리 속의 당분 농도가 높아지면서 우듬지와 가지처럼 보이는 잎자루도 붉게 물든다.
새해 어느 길가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남천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놓고 뻘쭘하기 짝이 없는 은행나무나 플라타너스와 같은 덩치 큰 가로수 풍경을 덜 단조롭도록 보정해준다. 하얀 눈이라도 내리면 붉은 열매와 검붉은 잎사귀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어디 겨울 뿐이랴. 봄에 새로 돋아나는 싱그러운 잎과 초여름 하얗게 피는 꽃도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다.
남천의 줄기는 밑에서 많이 갈라져 있고 갈색의 껍질은 세로로 줄이 있다. 잎은 깃모양 겹잎으로 긴 잎자루가 3번 갈라지고 마디가 있다. 길이는 30~50㎝ 정도나 돼서 사람들은 가지로 착각할 수도 있다. 긴 마름모꼴의 작은 잎은 2~8㎝ 정도로 끝이 뾰족하며 가장자리에는 톱니가 없고 매끄럽다.
꽃은 오뉴월 줄기 끝에 20~30㎝ 정도 원뿔 형태의 꽃차례에 수술과 암술이 모두 있는 양성화(兩性花)가 모여 달린다. 자세히 보면 꽃받침 조각은 3개, 꽃잎은 6개, 수술 6개이며, 암술머리는 둥글다. 알갱이가 작은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열매는 대개 가을에 진홍빛으로 익으면서 겨우 내내 보석 같은 진면목을 보여준다. 가끔 유전적 변이가 생긴 노란 열매가 붉은 열매 사이로 보이는데 황실남천이라고 부른다.
시중에는 남천과 이름이 비슷한 '대만뿔남천'이 있다. 같은 매자나뭇과 이지만 속(屬)이 다른 별개의 식물이다. 잎 가장자리에 날카로운 톱니가 뿔처럼 나있고 원산지가 대만이다.
◆나쁜 기운 막아주는 산울타리
남천은 일반적으로 관상용으로 정원이나 산울타리로 많이 심는다. 남천의 붉은 잎과 열매가 나쁜 기운을 쫓아내고 좋은 기운을 불러온다고 생각해 신년 행사에서 꽃꽂이로도 쓰인다고 한다. 음의 기운이 강한 겨울 동안 붉은 열매와 잎으로 양기를 북돋우며 나쁜 기운을 막아 행운을 불러오는 나무로 여겼다.
중국 남부 지역이 원산지로 열매가 달린 모양이 촛불과 같다고 남천촉(南天燭)이라고 한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에 나오는 일본 저택의 정원 풍경에도 남천은 빠지지 않는다.
조찬하의 집은 건평이 오십 평가량, 화양(和洋) 절충의 단층건물이었다. 정원은 넓은 편이지만 나무가 너무 많아 다소 빡빡했다. 수령이 꽤 되는 소나무가 네댓 그루, 서상목(瑞祥木)인 매화와 남천촉(南天燭)도 오래된 나무 같았다. 단풍나무, 향나무, 주목 등 정원수는 손질이 잘 되어 있었다. 군데군데 놓여 있는 정원석에 공간은 대부분 자갈을 깐 전형적인 일본식 정원이었다.
<『토지』 제4부 제4편'인실의 자리' 11장'양자(養子) 얘기'>
일본에서는 긴 겹잎 잎자루에 마디가 있고 줄기의 외양이 꼿꼿한 대나무를 닮았다고 남천죽(南天竹)이라고도 부른다. 일본 사람들은 먹거리를 선물할 때 식품 위에 남천 잎을 올려 보냈다. 독을 소멸시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선물을 받는 사람은 남천 잎을 올린 음식은 독이 없다는 뜻으로도 받아들인다.
일본에서 정원수로 주로 심는 이유는 집안에 심어두고 손쉽게 따서 약재로 쓰기 위한 실용적인 면도 있지만 집안의 재액(災厄)을 물리친다는 주술적인 믿음이 더해졌기 때문에 필수품처럼 자리매김 했다.
제주, 부산, 진해 등 일제 강점기 일본사람들이 많이 살던 곳에 남천이 많이 심어졌고 남천과 관련된 그들의 습속도 그대로 전해졌다. 일식집이나 횟집에서 생선 밑에 남천 잎을 까는 것이 하나의 전례다.
남천(南天)을 일본말로 '난텐(なんてん)'으로 읽는다. 발음이 어려움을 이긴다는 뜻의 난텐(難轉)과 같아서 전화위복(轉禍爲福)의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남천의 꽃말이 '전화위복'이라고 하니 생뚱맞은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나라에 언제 뿌리 내렸나
근래 정원수로 뿌리내린 남천은 일본을 통해서 주로 들여왔지만 원래 쓰임은 약용식물이라고 한다. 열매, 잎, 줄기, 뿌리등 모두 이용된다. 열매에는 여러 가지 알칼로이드 성분이 들어 있어 지각과 운동신경을 마비시키는 작용을 하여 기침을 멎게 한다고 알려져 있다.
남천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분명하지 않다. 신사임당(1504~1551)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전신부인필화조도」(傳申夫人筆花鳥圖)에 남천이 등장하므로 적어도 16세기 이전에 이 땅에 가져와 심고 가꾼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의 인삼은, 조선의 북쪽 달단(韃靼=타타르, 몽골계 유목민족 집단을 가리키는 명칭)의 남쪽 경계 지점에 큰 산이 있어서 이름을 백두산(白頭山)이라 하는데, 여기에서 자연적으로 자라나는 인삼이 최상품이다. 그 잎과 꽃은 일본의 인삼과 서로 비슷하나, 열매가 달라서 처음에는 푸르다가 익으면 붉게 되며, 둥글어서 남천(南天) 열매와 같다."
<『해동역사』 권26 「물산지」>
조선 후기 실학자 한치윤과 그의 조카 한진서가 1823년 완성한 『해동역사』(海東繹史)에 나오는 인삼에 대한 설명이다. 인삼 씨앗을 남천 열매에 견주는 걸로 봐서 남천이 인삼보다 좀 더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음을 의미한다.
조선 말기 부산 동래 지역의 신교육에 널리 관여했던 향토 유학자 박필채(朴苾采, 1841~1925)의 시 「남천촉」(南天燭)을 감상해보자
물성이 능히 화기를 금지하여
物性能禁烟火氣 물성능금연화기
양인이 부엌 문 앞에 많이 심네
煬因多種竈門前 양인다종조문전
푸른 알갱이 걸러내어 섞어서 밥 지으면
淘化靑精和作飯 도화청정화작반
도가에서는 이로써 장수한다네
道家多是可延年 도가다시가연년
<『추호유고』(秋湖遺稿) 권2>
'속명은 남천죽인데 성질은 능히 화기를 금한다'[俗名南天竹 性能禁火]는 부제가 달린 한시다. 양인(煬因)은 중국 고대 주(周)나라의 불을 관장하는 관원을 일컫는다. 남천의 쓰임과 약효를 함께 노래했다.
남천 열매에는 여러 가지 알칼로이드 성분이 있어 천식이나 백일해 등에 기침약으로 사용된다. 잎은 남천죽엽(南天竹葉)이라고 하며 해열 및 해독 작용이 있어 감기, 편도선염, 구내염 등에 쓰인다. 하지만 열매와 잎에는 시안화수소(청산) 성분이 포함되어 있어 함부로 먹으면 큰코다친다. 자칫하다 구토, 설사를 일으킬 수도 있고 심하면 호흡 마비까지 온다.
열매나 잎을 보거나 단순히 만지는 것은 괜찮으니 거리에서나 공원에서 눈요기로 즐기는 게 어떨까.
언론인 chunghaman@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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