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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초대석-김형준] '용기있는 절제'가 '이기는 변화'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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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전 한국선거학회장)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전 한국선거학회장)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전 한국선거학회장)

정치는 언제 강해지는가. 상대를 제압했을 때인가, 아니면 스스로를 절제했을 때인가. 선거를 앞둔 야당의 선택은 언제나 이 질문으로 귀결된다. 지금 국민의힘이 맞닥뜨린 위기의 본질 역시 여기에 있다. 문제는 지지율이 낮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길 수 없는 방식의 정치를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권 교체 이후 상황을 보자. 수도권 집값 급등, 통일교 연루 의혹, 공천 뇌물 사건, 비리 의혹 끝판왕 이혜훈 장관 지명 등 정부와 여당을 둘러싼 악재는 끊이지 않았다. 통상 이런 조건이라면 정권 지지율이 흔들리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대통령과 집권당 지지도는 좀처럼 흔들리지 않고 있다. 반면 지난 대선에서 41%가 넘는 득표를 했던 국민의힘은 여전히 20%대 초반에 머물고 있다.

이유는 명확하다. 야당이 정부를 비판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국민에게 "우리는 다르다", "우리에게 맡길 수 있다"는 신호를 주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이런 상황을 '책임 없는 지배'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유권자는 더 이상 정당을 사회적 대표성 만으로 지지하지 않는다. 여당은 잘해서가 아니라 "그래도 저쪽보다는 낫다"는 비교 우위로 유지된다. 반대로 야당은 상대의 실패를 비판하는 것 만으로는 지지를 얻지 못한다. 스스로 통치 가능한 대안임을 증명해야만 한다. 이 증명에 실패할 때, 야당은 분노는 키우지만 표는 얻지 못하는 역설에 빠진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국민의힘이 한동훈 전 대표 징계를 둘러싸고 극단적인 내부 대결로 치닫는 모습은 치명적이다.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벌어지는 전직 대표 징계는 단순한 내부 갈등이 아니다. 유권자에게는 명확한 정치적 신호로 읽힌다. "이 당은 아직 권력을 잡기도 전에, 권력 투쟁부터 벌인다." 이는 야당이 스스로에게 찍는 통치 불능의 낙인이다.

알버트 허시먼의 이론은 이 지점을 정확히 짚는다. 조직 구성원이 불만을 느낄 때 선택지는 세 가지다. '떠나는 것'(Exit), '내부에서 비판하는 것'(Voice), '남아 있는 것'(Loyalty)이다. 선거 국면에서 전직 대표를 징계하는 행위는 단순한 징벌이 아니다. 그를 지지해 온 세력과 합리적 보수층 전체에게 "내부에서 말할 통로는 닫혔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그 결과는 질서 회복이 아니라 '침묵 속 이탈'이다. 분노의 폭발이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더 위험한 형태의 이탈이 발생한다. 국힘 지지율이 무당층보다도 낮은 수준에 고착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게임이론적으로 보아도 이 선택은 최악에 가깝다. 여당은 이미 권력을 보유하고 있어 현상 유지 만으로도 합리적 선택이 된다. 반면 야당은 위험을 관리하며 신뢰를 축적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그럼에도 내부 징계와 배제, 적대적 대결을 선택하는 것은 스스로 위험을 증폭시키는 패착이다. 야당의 내전은 여당에게 가장 값싼 선거 전략이 된다. 상대가 스스로 분열할수록, 집권 세력의 '안정 프레임'은 강화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국민의힘에 필요한 것은 강경함이 아니라 절제다. 장동혁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징계를 철회하는 결단을 내린다면, 이는 결코 굴복이나 패배가 아니다. 오히려 더 큰 정치적 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다.

토머스 셸링은 힘 있는 쪽이 스스로 행동을 제한할 때 비로소 '신뢰 가능한 약속'이 성립한다고 설명했다. 권한을 가진 당 대표가 징계를 자제하는 순간, 당은 내부 갈등을 무력으로 해결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사회 전체에 보낸다. 중도 유권자와 무당층이 선거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결단의 속도가 아니다.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이다. 이것이 국민에게 국민의힘을 선택할 수 있는 이유를 제공한다. 조셉 나이가 말한 소프트 파워 역시 감정 조절과 자기 절제를 지도자의 핵심 역량으로 본다. 징계 철회는 특정 인물을 보호하는 조치가 아니다. 정당이 아직 헌정적 규율과 민주적 절차 안에 있음을 증명하는 자기 제한의 행위다.

지방선거를 앞둔 지금, 국민의힘이 선택해야 할 길은 분명하다. 처벌로 강함을 증명하려는 정치가 아니라, 갈등을 관리하고 연합을 확장하는 정치다. 장동혁 대표는 '이기는 변화'를 강조한다. 그런데 당명 변경이나 선언적 쇄신보다 더 강력한 메시지는 '미움받을 용기'를 보여주는 실천이다. '지는 정치'는 상대를 제거하는 데서 시작되지만, '이기는 정치'는 스스로를 절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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