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뱅이 언덕의 흙집으로
언덕 아래 호젓이 기댄 그 흙집은 시린 추위를 어찌 견뎌내고 있을까. 그새 그곳을 거쳐 간 발길은 또 누구의 것이었을까. 날이 풀리면 가보리라 미뤄두었던 생각을 이내 고쳤다. 지금 당장, 언덕에 안긴 그 집으로 향해야겠다는 조바심이 일었다.
모든 것이 담백해지는 계절이야말로 사물의 민낯이 오롯이 드러나는 법이다. 집 또한 그러하다. 집을 떠받드는 영혼을 마주하고 싶다면 겨울을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조탑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하늘을 등지고 선 갈색 표지판 하나가 나그네를 맞는다. '권정생 선생 살던 집'. 언덕 아래 그 집까지 남은 거리는 고작 백오십 미터, 단숨에 걸어가면 금세 닿을 듯 가깝다. 고개를 돌리면 마을의 유서 깊은 유적인 오층전탑이 솟아 있다. 신라의 숨결을 간직한 보물이건만, 아쉽게도 지금은 해체 보수가 한창이다. 탑의 온전한 자태를 눈에 담지 못한 아쉬움이 발을 쉽게 떼지 못하게 한다.
마을로 한 발 더 다가가니 골목을 따라 이어진 그림이 말을 붙인다. 낮은 담장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진 벽마다 아이들이 정겨운 행렬을 이루고 있다. 바가지를 든 채 나그네에게 수줍은 인사를 건네는 아이들에 뒤이어 유독 마음을 붙드는 얼굴 하나가 있다.
어린 동생을 업은 모습으로, 엄마의 품에 안긴 모습으로 몽실이는 거기 있었다. 금방이라도 담장 밖으로 걸어 나와 손을 맞잡아줄 것만 같다. 그 작고 따뜻한 손에 이끌려 마을의 골목 끝, 빌뱅이 언덕의 흙집까지 함께 걸어 올라가고 싶다.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붉은 함석지붕을 머리에 인 흙집 한 채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 집엔 대문도, 담장도 없다. 그 어떤 발길도 가로막지 않는 열려 있는 집이다. 설렘을 품고 찾은 나그네의 마음을 가볍게 하는 곳이다. 이곳은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자신을 앞세우지 않았던 동화 작가 권정생의 삶을 닮은, 더없이 정갈한 성소(聖所)다.
어귀에 서서 가만히 집을 들여다본다. 낮게 내려앉은 지붕은 처마로 이어져 집을 감싸고, 그 아래 흙벽은 세월의 무늬를 머금은 채 담담하게 집을 들어 올리고 있다. 처마 밑에는 낡은 의자들이 형제처럼 나란히 놓여 있고, 아이들의 인사 글이 담긴 방명록 함도 그 곁에 놓여 있다. 마당 한편에 선 나목들은 가지를 뻗어 하늘을 가르고, 그 그림자는 작가의 혼처럼 마당 구석구석에 길게 드리워져 있다.
◆집이라는 이름을 얻기까지
흙벽은 노모의 깊은 주름처럼 군데군데 갈라져 있고, 낡은 창살 여닫이문에는 켜켜이 쌓인 세월의 더께가 역력하다. 문 위에는 손바닥만 한 이름표 하나가 붙어 있다. 정직하게 적힌 세 글자, '권정생'. 문고리에는 녹슨 자물쇠가 걸려 있으나 문은 닫혀 있지 않다. 흙벽에 붙은 '조탑안길 57-12'라는 현대식 주소판은 이 집이 결코 빈 집이 아님을 상기시킨다.
이 겨울, 하늘 아래 외따로 홀로 놓인 집. 이 집이 기댈 이웃이라면, 생전에 작가가 즐겨 오르내리던 빌뱅이 언덕 하나면 족하다.
이 집은 내로라하는 명문가의 고택도, 유명 건축가의 도면 위에 그려진 화려한 유산도 아니다. 겉모습은 그저 빌뱅이 언덕에 몸을 낮춘 작은 흙집 같지만, 이곳에는 뭇 생명을 보듬는 따뜻한 영성이 배어 있다. 작고 여린 존재들의 이야기가 이 집에서 길어 올려졌으니, 이곳은 사람만 사는 터전이 아니었다.
작가는 마당의 풀 한 포기조차 함부로 베지 않았다. 계절마다 꽃들이 스스로 피고 지도록 두었다. 해가 지면 호롱불을 밝혀 방을 채웠고 인쇄 수입이 생겨도 집을 늘리지 않았다. 몸은 늘 아팠지만, 어려운 이들을 위해서는 인색하지 않았다. 주인을 닮은 이 집에는 꾸며낸 가식이 없다. 더 가난해짐으로써 곁을 살리는 순수한 가난이 고스란히 깃든 집이다.
숨을 가다듬고 미닫이를 조심스레 밀친다. 작가의 흑백 사진이 먼저 눈에 든다. 액자 앞에는 도토리 몇 알과 마른 풀잎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누군가 다녀간 흔적이다. 이 집을 찾은 사람들이 저마다 그리운 마음을 꾹꾹 담아 남기고 간, 소박한 선물일 테다. 책장에는 책들이 듬성듬성 꽂혀 있다. 읽히기 위해 전시된 책이라기보다, 늘 그 자리에 있던 이 집의 분신 같다.
이것이 전부다. 이 좁고 작은 방에는 억지로 꾸며낸 구석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작가는 책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비좁은 틈바구니에서 먹고 자고, 그리고 끝내 글을 썼다. 문틈으로 밀려든 바람이 잠시 쉬어가고 벌레들도 제 집인 양 스스럼없이 드나들었을 방. 밤이면 낮은 창을 넘어온 달빛이 작가의 원고지 위를 소리 없이 비췄을 것이다.
무엇 하나 욕심으로 채우지 않은 겸손한 방. 그렇기에 많은 것을 채울 수 있었던 방. 뭇 여린 생명에게 곁을 내어준 이 방이야말로, 고귀한 서재였던 셈이다.
작가는 이른 나이부터 외로움과 함께 살아왔고, 가난과 병은 늘 그의 삶 가까이에 있었다. 그 오래고 모진 유랑의 시간을 건너온 작가를, 이 집은 말없이 받아들였다. 이 흙집은 외로움을 더 깊게 가두는 거처가 아니었다. 집은 작가를 쉬게 했고, 다시 일어서게 했으며, 끝내 아름다운 이야기를 상상하게 했다.
이름이 알려져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졌어도, 작가는 이 집을 떠나지 않았다. 집 또한 그의 삶을 운명처럼 받아 안으며 마지막 순간까지 곁을 지켰다. 그래서 이 흙집을 그저 거처가 아니라 작가의 삶을 안은 자리라고 불러도 좋겠다.
◆다시 흙집으로 걷는 길
밖으로 나와 집 뒤편으로 발길을 옮긴다. 그곳엔 작가가 아끼고 사랑했던 빌뱅이 언덕이 집을 등지고 이어져 있다. 겨울이 깊은 까닭에 풀은 말라비틀어지고 나무들은 잎을 모두 내려놓았지만, 언덕은 텅 비어 보이지 않는다. 흙집은 언덕에 뿌리를 내리고, 언덕은 흙집을 품어 안았으니, 둘은 나눌 수 없는 한 몸이 아닌가. 빌뱅이 언덕이 없었다면 흙집은 외로웠을 것이고, 흙집이 없었다면 언덕은 그토록 맑은 이야기들을 세상에 내어놓지 못했을 것이다.
빌뱅이 언덕 아래 이 흙집에는 작가가 감당하고 살아낸 삶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정처 없이 떠돌며 잠시 몸을 뉘었던 좁은 방들, 임시로 비를 피했던 남의 집 처마, 그리고 길 위에서 헤어진 동무들의 얼굴이 이 집 곳곳에 포개져 있다. 그러니 이 집은 어느 날 갑자기 덩그러니 지어진 게 아니다. 이곳저곳 흩어져 있던 작가의 조각난 삶이 이 언덕 아래 모여, 마침내 집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이다.
흙집을 뒤로한 채 일직교회로 길을 나선다. 마을을 비켜 흐르는 개울은 추위에 꽁꽁 얼어붙었다. 투명한 얼음 위로 햇살이 반원처럼 내려앉아 머물고 있다. 물은 멈춘 듯 보이지만, 아래에는 잔 생명들의 잔잔한 기척이 남아 있을 것이다.
저 멀리 일직교회의 뾰족한 종탑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 너머로 보이는 산등성이는 지난 산불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듯 거뭇하게 그을려 있다. 어머니를 여읜 작가는 1968년 무렵. 교회 문간방에 의탁해 살며 새벽마다 종을 울리는 종지기가 되었다. 겨울이면 꽁꽁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예배당 종을 울리고, 다시 그 좁은 방으로 돌아와 글을 썼을 것이다. 그렇게 어렵사리 세상으로 나온 글이 '강아지똥'이다.
교회 마당에 발을 들이자, 세월의 무게를 떠안은 소박한 종탑이 한눈에 들어온다. 순간, 환청일까. 은은한 종소리가 귓가에 남는다. 낮고 낮은 존재들을 글로 어루만지던 작가. 그 종소리는 작고 여린 것들에게 바치는 사랑의 노래 같기만 하다.
교회를 나서며 고개를 드니, 저만큼 빌뱅이 언덕 아래 흙집이 보인다. 저 집을 두고 마을을 떠나는 게 아쉬워서일까, 다시 흙집 쪽으로 걷는다. 한 번 더 언덕이 안은 그 집에 서고 나서야 돌아설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그렇게 나그네는 흙집을 향해 길을 내디딘다.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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