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접속(1997)은 음악을 빼면 완성되지 않는 1990년대 한국 영화의 대표 사례다. 다른 예를 살펴보면 판소리 붐을 일으킨 영화 서편제(1993)가 있다. 서편제는 락으로 음악을 시작했지만 국악을 체득해 국악인으로 나선 김수철의 음악세계가 영화음악으로 구현된 첫 사례이기도 하다. 당시로서는 블록버스터급 제작비 30억원이 투입된 영화 쉬리(1999)는 음악감독 이동준이 70인조 관현악단을 동원해 할리우드 첩보물 체급의 리듬과 공간감을 만든 사례다.
접속은 이들과 결이 좀 다르다. '신의 한 수'라 할 수 있는 선곡이 다른 요소들을 압도한 사례다. 새로운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도 분명 가치 있는 일이지만, 과거의 좋은 음악을 골라 써 폭발력을 내는 건 영리하기까지 한 일이다.
◆PC통신 넘어 음반으로 접속
영화 '접속'은 PC통신으로 인연을 맺은 남녀의 이야기로 잘 알려져 있는데, 사실 좀 더 중요한 매개체가 있다. 음반이다. 라디오 음악 방송 PD로 일하는 동현(한석규 분)은 어느날 옛 연인이 우편으로 보낸 한 장의 레코드판 때문에 마음이 흔들린다. 이 앨범에 수록된 곡을 방송으로 틀자, 그걸 듣고 매료된 수현(전도연 분)이 레코드 가게에서 해당 음반을 찾지만 구할 수 없다.
결국 PC통신으로 라디오 프로그램에 음악을 한 번 더 틀어달라고 신청한다. 이에 동현은 신청자가 혹여 옛 연인일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PC통신에 접속, 수현과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이내 수현이 옛 연인이 아니란 걸 알게 되지만, 둘은 옛사랑과 짝사랑이 만든 열병을 앓는 닮은 처지가 서로 끌렸던지 온라인으로 계속 교감한다.
두 사람을 PC통신으로 연결시켜 준 곡은 미국 락 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가 1969년 발표한 3번째 앨범 수록곡 페일 블루 아이즈(Pale Blue Eyes)다. 해당 음반은 영화 초반부 동현에게 전해지며 등장, 후반부 동현을 기다리는 수현의 손에 들려진다. 처음과 끝이 연결되는 수미쌍관이다. 접속이라는 제목을 단순히 해석하면 그 수단인 PC통신을 떠올리겠으나, 좀 더 깊게 보면 두 사람이 감정을 이입(접속)한 음반이 핵심 매개체다.
영화의 결승선 바로 앞에선 음악의 바톤 터치도 극적으로 이뤄진다. 미국 재즈 뮤지션 사라 본의 어 러버즈 콘체르토(A Lover's Concerto)가 두 사람에게 마치 봄비처럼 내린다. "How gentle is the rain that falls softly on the meadow(들판을 부드럽게 적시는 빗방울들은 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로 시작하는 노래다. 우울하고 가라앉은 분위기의 페일 블루 아이즈가 지나가고 마치 언약식처럼 사랑을 축복하는 노랫말의 곡이 영화 엔딩을 장식하는 것이다.
◆전도연·조영욱의 출세작
두 곡을 비롯해 영국 소울 뮤지션 더스티 스프링 필드의 사랑의 모습(The Look of Love) 등 선곡 리스트가 일품이다. 음악감독 조영욱의 솜씨다. 작곡가 출신이 아니라서 대신 작곡팀을 지휘해 영화음악을 만들고 이에 더해 선곡으로 승부를 보는 이례적 스타일인데, 특히 박찬욱과 여러 작품에서 협업했다.
이등병의 편지(김광석)를 삽입한 공동경비구역 JSA(2000)를 시작으로 박찬욱 영화의 강점인 미쟝센을 소리로 구현한 셈인 올드보이(2003), 친절한 금자씨(2005), 헤어질 결심(2022) 등의 음악을 작업했다. 너에게 난 나에게 넌(자전거 탄 풍경)의 도입부 기타 연주가 흘러야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영화 클래식(2003)과 한국 느와르의 아이콘이 된 영화 신세계(2013)의 음악도 프로듀싱했다.
조영욱이 이렇게 한국 영화음악을 이끌어온 경력의 출발점에 접속이 있다. 즉, 그의 영화음악 데뷔작이다. 마찬가지로 장윤현의 영화감독 데뷔작이자 드라마 출연만 하던 전도연의 영화배우 데뷔작이기도 하다. 접속으로 조영욱은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장윤현은 대종상 신인감독상, 전도연은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과 대종상 신인여자배우상을 수상했다. 이를 포함해 접속은 대종상에서 최우수작품상 등 7개 트로피, 청룡영화상에선 한국영화최고흥행상 등 2개 트로피를 수확했다.
접속 OST 음반은 공식적으로 80만장 이상, 비공식적으로는 100만장 이상 팔려 지금도 깨지지 않는 한국 영화 OST 음반 판매량 1위 기록을 갖고 있다. 영화 역시 1997년 추석 때부터 연말까지 전국 150만 관객을 그러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음악으로 승부하고픈 한국 영화라면 여러모로 닮고 싶은 기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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