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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김우석] 흔들리는 레드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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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석 국민대 객원교수

김우석 국민대 객원교수
김우석 국민대 객원교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을 전격 공습했다. 우리나라 증시도 폭격을 맞았다. 이스라엘 이외 대부분 나라들도 같은 처지다. 남아있는 이란 지도부는 '결사 항전'을 선언하고, 미군뿐 아니라 중동 주변국까지 무차별 분풀이다.

이번에도 예외 없이 '레드라인'이 언급됐다. 미국은 '핵무기 현실화'에 선을 그었고, 이란은 '체제와 주권에 대한 직접 침해'를 선으로 설정했다. 이란의 주권에는 당연히 '핵 개발'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번 충돌 역시 그 임계점에서 폭발한 것이다. 양측의 레드라인이 충돌했고, 결국 군사적 행동이 뒤따랐다. 레드라인이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된 것이다.

레드라인은 국가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미 국방부와 AI 기업 앤트로픽(Anthropic)이 다른 레드라인으로 충돌했다. 미 정부는 앤트로픽 모델 '클로드(Claude)'의 군사적 활용을 확대하겠다며 강한 압박을 가했고, '공급망 리스크 지정' 논란까지 불거졌다. 그들이 충돌한 레드라인은 기술과 윤리, 안보와 실리의 충돌을 보여준다. 각자가 설정한 레드라인이 맞부딪히는 지점에서, 결국 선택은 행동으로 드러난다. 양자의 명분은 모두 나름의 설득력이 있지만, 이를 관철하는 것은 결국 의지와 능력이다. 특히 국제정치에서 레드라인은 '선언'이 아니라 '실행'의 기록으로 평가된다.

'레드라인'은 상대에게 넘어오지 말라는 최후의 경계선이다. '그 선을 넘으면 응징하겠다'는 선포이기도 하다. 국제정치에서 레드라인의 본질은 '예측 가능성(predictability)'과 '신뢰(credibility)'다. 넘으면 반드시 응징한다는 확신이 있을 때 억지력이 작동한다. 한 번 그은 선을 지키지 못하면, 다음 선은 더 가볍게 여겨진다. 그래서 레드라인은 군사력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다. 말에 책임을 지는 것이 국제정치의 기본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최근 발생한 주한미군사령관의 '서해 훈련 사과 논란'은 동맹 간 신뢰가 '레드라인의 충돌' 지점에서 얼마나 미묘하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 국방부는 미군 전투기의 서해 단독 훈련과 관련해 사과를 받았다고 발표했지만, 주한미군 측은 이례적인 심야 반박으로 "대비태세 유지에 대해서는 사과하지 않는다"고 맞받았다. '사과'냐 '유감'이냐의 표현 차이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그 이면에는 전략적 인식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중국 견제'를 위해 작전 자율성을 극대화하려는 미국의 레드라인과, '한반도 정세의 안정적 관리'를 우선시하는 한국의 레드라인이 어긋난 것이다.

이런 온도 차는 '비행금지구역 재설정' 논의에서도 드러난다. 우리는 긴장 완화를 명분으로 군사적 완충 장치를 복원하려 하지만 미국은 대북 정찰 공백과 대비태세 약화를 우려한다. 한쪽은 '관리 가능한 긴장'을, 다른 한쪽은 '빈틈없는 억제'를 강조한다. 동맹은 유지되고 있지만 선을 어디에 그을 것인가에 대한 합의는 분명해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이러한 모호함을 북한이 놓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북한은 핵·미사일 능력을 단계적으로 고도화하고 회색지대 도발을 반복하며 우리의 반응을 시험해 왔다. 이른바 '살라미 전술'이다. 선을 한 번에 넘지 않고 조금씩 넘는다. 우리는 강경한 선언을 하지만 실제 대응은 확전을 피하는 관리형 대응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전략적 자제'일 수 있지만 상대가 이를 '의지 부족'으로 해석하는 순간 레드라인은 흐려진다. 도발이 지속되고 그 피해도 심화된다.

레드라인의 선이 선으로 기능하려면 국내적으로는 국민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하고, 동맹 차원에서는 최소한의 공감대가 확보되어야 한다. '무엇을 넘으면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대한 일관성은 언제나 유지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정권교체 등에 의해 레드라인이 자꾸 움직이면 예측 가능성은 떨어지고 신뢰도 약화된다. 동맹은 우리의 의지를 의심하게 되고, 적성국은 우리를 깔보게 된다.

우리만의 레드라인, '선'이 있다는 신호조차 분명하지 않다면 억지력은 작동하기 어렵다. 레드라인은 말의 강도가 아니라 행동의 일관성으로 인식된다. 현재 우리의 레드라인은 안녕한가. 우리 안보는 분명한 선 위에 서 있는가, 아니면 조금씩 뒤로 밀리고 있는가. 흔들리는 레드라인 위에 억지력을 세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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