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따르자니 현실 여건이 안 되고, 현실을 따르자니 예술이 안쓰럽다. 사랑과 같은 것이다. 예술과 현실은 결합될 수 없어 보이지만 예술가와 사업가 커플은 그런대로 행복한 한 쌍으로 보인다."
예술에 관해 말해주는 책은 많다. 미술관에 관한 것도, 미술작품에 대한 탐색도. 그러니 예술가를 다룬 책은 더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태반은 정보와 에피소드 혹은 가십을 적절하게 섞은 것에 불과했다. 저자의 감상 태도와 통찰력에 차이는 있을지언정 어디서나 익히 만날만한 내용이라는 얘기.
그런 아쉬움 가운데 만난 157쪽짜리 책은 나의 눈을 확장시켜줬다. 고백하자면 서두에 언급한 문장, 곧 책의 서문을 읽자마자 이 책은 뭔가 다를 거야, 라고 확신했다. 2004년에 초판이 나왔으니 벌써 22년 전이다. 영화가 멀게 느껴질 때마다, 영화 속 세상이 흐릿할 때마다, 예술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울 때마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재독한 책. 철학자 강유원의 예술탐색 '삶은 늘 우리를 배반한다'이다.
'지성사로 읽는 예술'이라는 부제처럼 저자는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삶 속에서, 삶이 늘 우리를 배반하는 현실에서 예술을 좀 즐긴다고 해서 잘못될 일은 없다면서 "우리는 예술작품을 읽어도 그 안에서 현실을 보았고, 시대를 보았다"고 말한다. 그것을 적은 게 이 책이다.
책은 구석기 시대에서 시작해 신석기와 이집트를 거치고 그리스 고전주의와 헬레니즘을 경유한 다음 로마제국의 실용주의를 훑은 후 르네상스와 매너리즘과 바로크를 지나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에 이어 인상주의에서 막을 내린다. 157쪽으로 장구한 예술사를 일별하는 게 가능할까? 충분히 가능하고 탁월하게 빼어나다. 예컨대 저자는 구석기와 신석기를 구분하는(석기 모양에 근거해) 흔한 방식은 표면에 드러난 것에 불과하고, 중요한 것은 그들이 정착생활을 했느냐 아니냐, 라는 것. 즉 예술은 정신활동에 속하므로 그 활동은 삶의 방식에 의해 조건 지어진다는 얘기. 그래서 "구석기 시대의 표현방식은 자연주의적 태도로, 신석기 시대의 그것은 기하학적 태도로 지칭된다."(21쪽)
로마시대에는 예술의 자율성 대신 즐거움과 유희를 강조하는 엔터테인먼트를 전면에 내세우는데, 로마 사람들은 현실의 삶을 견고한 토대 위에 세우고 시스템을 구축하느라 바빴다고. 그들은 허상을 따르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그들에게 교양이 없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로마인들은 그리스인들처럼 골치 아픈 사변적 철학에 매달리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계산하고 그것이 얼마나 쓸모 있는지만을 문제 삼았"(57쪽)으며 그것이 로마인의 삶과 예술을 관통한 원리였다는 대목은 신선하고 기발하다.
철학자의 눈을 통해 바라본 예술의 역사, 예술사를 습득하기에 안성맞춤인 '삶은 늘 우리를 배반한다'. 각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에 달린 해설의 탁월함은 그 자체로 걸출한 리뷰가 된다. 예컨대 책 말미에, 인상주의를 정리하는 웅숭깊은 통찰. "사진의 발명으로 인상주의가 등장하게 됐다는 말은 이 시대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한 도식적 설명에 지나지 않는다. (중략) 인상주의의 세계 속에서 모든 것은 한순간도 정지해있는 법이 없으며, 원근법적 세계가 무너지고 중심에서 이탈하여 모든 것들이 중심이 되며 기존 가치의 체계가 사라진다."(151쪽) 내가 이 책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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