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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우의 읽거나 읽히거나] 슬픔에 밀려나지 않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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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기차의 꿈
데니스 존슨 지음/ 다산책방 펴냄

영화평론가 백정우

매년 연말이면 영화전문가와 매체들이 꼽은 그해 최고 영화를 발표한다. 대개 10위까지 순위를 매기지만 상위 서너 편은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나 역시 순위를 매기곤 하는데 2025년 내가 꼽은 1위는 '기차의 꿈'이었다. 고민할 여지가 없었고, 이전까지 본 모든 영화를 지워버릴 만큼 압도적이었다. 찾아보니 원작이 있었다. 2002년 출간 이래 평단과 독자에게 변함없이 호평 받은, 2024년 뉴욕타임스 선정 '21세기 최고의 책' 데니스 존슨의 '기차의 꿈'이다.

"미국 철도의 중요한 업적은 미국이 강대국으로 발돋움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고, 게다가 그것을 한 인간의 일생보다 짧을 정도로 단기간에 이뤄냈다."(크리스티안 월마·철도의 세계사)

철도는 단지 승객을 많이 끌어들인 것뿐만 아니라 미국이라는 나라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미국인들은 강을 건너고 숲을 헤치고 사막을 건너 대륙 반대편에 이르는 장대한 철도를 꿈꿨다. 미국의 꿈에 일조한 숱한 노동자들 가운데 1886년 그레이트 노던 철도를 타고 아이다호까지 온 (친부모를 잃고 생일도 알지 못하는) 소년이 있었다. 고모 손에 자라난 로버트 그레이니어는 벌목공이 됐고 철도 공사장에서 일했으며 평생을 외롭게 살았다. 그는 글래디스 올딩과 결혼을 했고 어여쁜 딸 케이트도 얻었다. 그러나….

행복의 크기와 무관하게 예기치 않은 상실과 마주할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이다. 불의의 화재와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은 상실. 그런데도 그레이니어에게 슬픔은 늘 거기 있던 것처럼 삶의 무게로 자리 잡는다. 즉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기보다 그 자체를 인정한다. 글래디스와 케이트의 부재를 받아들이고 유령 같은 고립된 일상이 이어질 때 슬픔은 조용히 그레이니어의 오두막에 내려앉는다. 이 짧은 소설이 가진 힘과 근력이다.

132쪽에 불과한 소설이 이토록 큰 울림으로 다가온 까닭은 단순하면서도 외로운 단어들에 있을 터. 그러므로 책의 끄트머리에서 만나는, 그레이니어의 인생을 수식하는 문장은 하나의 가치를 품고 살아온 한 인간에게 바치는 최대한의 예의로 읽힌다.

"그레이니어는 여든 살이 넘어서 1960년대까지 살았다. 살아 있는 동안 태평양에서 수십 마일 떨어진 서부까지 여행한 적도 있지만, 바다를 직접 본 적은 없었다. 동쪽으로 가장 멀리 간 곳은 몬태나주 경계선 안쪽으로 40마일 거리인 리비였다. 그가 사랑한 사람은 한 명. 아내 글래디스였으며, 재산은 땅 1에이커, 말 두 마리, 수레 한 대였다. 그는 술에 취한 적이 없고, 총기를 구매한 적도 없고, 전화기로 대화를 나눈 적도 없었다. 기차를 자주 탔지만 자동차도 많이 탔고, 비행기도 한 번 타본 적이 있었다."(129쪽)

영화평론가 백정우

'기차의 꿈'은 19세기에 태어나 20세 중반까지 산 남자, 벌목공으로 철도 시대의 주역이었으며 비행기를 타봤고 텔레비전을 통해 우주 시대가 열리는 장면도 목도한 한 남자의 이야기다. 슬픔과 고독을 이기려 애쓰지 않으면서 비탄에 빠져 생을 버리지도 않은 나무 같은 사내, 로버트 그레이니어의 삶과 그가 견딘 시간에 대한 헌사다. 기차가 지나간 뒤에 풍경이 달라지지 않듯이 인간의 삶도 그렇게 계속된다는 엄연한 진실. 작가 데니스 존슨의 전언일 것이다.

백정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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