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에게 보도의 작은 단차는 거대한 벽과 같습니다. 생애 최초의 고난 앞에서 아이의 뇌는 다양한 해결 방법을 찾습니다. 울음으로 나의 어려움을 알리기, 부모의 손을 잡고 함께 극복하기, 몸을 돌려 엎드린 채 한 발씩 딛고 내려가기 등을 선택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아이는 성장합니다. 실패하면 다른 전략을 선택하는 융통성을, 성공하면 큰 성취감을 얻겠지요. 더불어 의사소통의 필요성을 깨달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마음에 부모가 매번 번쩍 안아준다면 스스로 세상을 향해 내딛는 진정한 첫걸음은 미뤄지게 됩니다. 당장의 편리함이 역설적으로 아이의 회복탄력성을 키울 기회를 앗아가는 셈입니다.
◆ 결핍의 저울에서 시작되는 변화
애나 렘키는 저서 '도파미네이션'을 통해 무한한 편리함과 즉각적인 만족이 오히려 우리의 정신적 균형을 무너뜨린다고 경고합니다. 현대인은 스마트폰의 스크롤 한 번으로 모든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도파민 과잉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뇌에서 쾌락과 고통은 시소처럼 작동합니다. 쾌락 쪽으로 과하게 기울어질수록 우리 뇌는 균형을 맞추려 반대편 고통의 무게를 더 무겁게 더합니다. 우리가 자극적이고 편안한 것을 쫓을수록 역설적으로 작은 불편함조차 견디지 못하는 무력감과 우울함이 찾아오는 이유입니다. 저자는 현대인들이 고통을 회피하려다 오히려 '결핍의 결핍' 상태에 빠졌다고 지적합니다. 쾌적한 온도와 풍족한 먹거리 속에서 뇌의 보상 회로는 정체 되고 도전할 의지조차 상실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 뇌는 본래 불확실성과 적당한 스트레스에 대응할 때 가장 활발하게 깨어납니다. 가끔은 스마트폰을 내려놓거나 배고픔과 추위를 견뎌보는 자발적 고통을 선택하는 수고로움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불편함의 무게는 시소의 균형을 맞춰 아주 작은 일상에서도 깊은 만족을 느낄 수 있는 건강한 정신적 토양을 만들어줍니다.
성장은 불편함의 지점에서 비로소 시작됩니다. 단차 앞에 선 아이가 스스로 길을 찾아 내려왔을 때 느끼는 것은 단순한 안도감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의 힘으로 상황을 통제하고 극복해 냈다는 강렬한 감각, 즉 살아가는데 가장 큰 무기가 될 자기효능감입니다. 우리 어른들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불편함을 견뎌내는 과정은 안락함에 길들어 잠들어 있던 우리의 감각을 깨웁니다. 그리고 '나는 충분히 강하며 어떤 상황도 헤쳐 나갈 수 있다'라는 단단한 확신을 선물할 것입니다.
◆자발적 불편함으로 내딛는 성장의 한 걸음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회고록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통해 소설가라는 안락한 서재의 삶 뒤에 숨겨진 러너(runner)로서의 치열한 일상을 고백합니다. 그는 창작이라는 정신적 활동이 실은 고도의 신체적 지구력을 요구하는 노동임을 깨닫고 스스로를 매일 아침 길 위라는 불편한 환경으로 이끕니다.
현대인은 효율과 편리를 최고 가치로 여기며 몸의 고생을 피하려 애쓰지만, 저자는 오히려 자발적인 고립과 피로를 선택합니다. 그에게 달리기는 단순히 건강을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의 한계가 어디인지 확인하고 그 한계를 조금씩 뒤로 밀어내는 고독한 의식입니다. 소설을 쓰기 시작한 이후 20년 넘게 매일 10km를 달리고 일 년에 한 번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는 그의 규칙적인 삶은 부모가 안아주기를 기다리는 아이가 아니라 스스로 단차를 내려가며 근육을 키우는 아이의 성장 방식과 닮았습니다.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고뇌는 선택하기 나름'이라는 저자의 말은 달리는 도중 마주하는 육체적 한계점에서 멈춰 설지, 아니면 좀 더 나아갈지가 오직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자기 통제력은 안락하기만 한 삶에서는 배울 수 없는 귀한 자산입니다. 인내의 순간들이 모여 우리를 지탱하는 단단한 회복탄력성의 뼈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날씨나 기분 등의 불편함을 핑계 삼지 않고 매일 운동화 끈을 조여 맵니다. 그리고 매일 달린다,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는다는 자신만의 규칙을 꾸준히 지켜갑니다. 달리기는 길과 자신만이 함께 하는 고독하고 고단한 여정입니다. 그 여정의 시작과 마무리를 오로지 자신의 의지와 선택으로 해냈다는 사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강력한 자기효능감을 선사합니다.
편안함은 당장의 평온을 주지만 불편함은 내일을 살아갈 힘을 줍니다. 오늘도 단차 앞에 서서 망설이는 우리 아이들에게 번쩍 안아 올리는 손길 대신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의 눈빛을 건네봅니다.
대구시교육청 학부모독서문화지원교사모임































댓글 많은 뉴스
김부겸 "대구가 국힘 버려야 진짜 보수 살아나"…대구시장 출마 선언
"김부겸 버릴 만큼 대구 여유 있습니까"…힘 있는 여당 후보 선물 보따리 풀었다
올해 벌써 58명 사직…검찰 인력 붕괴, 미제사건 12만 건 폭탄
"父를 父라 부르지 못하고" 텃밭 대구서도 '빨간점퍼' 못 입는 국힘, 어쩌다[금주의 정치舌전]
김부겸, 내일 출마선언…국회 소통관·대구 2·28공원서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