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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창] 80년의 청진기, 대구 시민이 키워낸 인술(仁術)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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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호 대경영상의학과 원장
김경호 대경영상의학과 원장

요즘 유달리 필자의 머리에서 맴도는 음식이 있다. 미슐랭의 화려한 성찬은 아닐지라도, 그에 못지않게 맛있고 매력적인 음식, 진한 돼지기름과 눅진한 마늘 향이 일품인 일본의 교자노오쇼(餃子の王将)의 군만두다.

1967년 교토대학 인근의 조용한 골목에서 시작한 일본식 중화요리식당 교자노오쇼는 현재 740여 개의 점포를 거느린 일본의 '국민 식당'이 되었다. 기름 끓는 소리와 뽀얀 증기의 뜨거운 열기, 사람들 술잔 부딪히는 소리로 활기 가득한 이곳이 국민적 사랑을 받는 이유는 비단 음식의 맛 때문만은 아니다.

창업자인 가토 아사오는 자주 끼니를 거르는 가난한 학생들의 처지를 안타까워했다. 그는 젊은이들이 밥을 굶어서야 되겠냐며 '돈이 없으면 30분 설거지하고 배부르게 밥을 먹으라'라는 공고를 붙였다. 신성한 노동력을 당당하게 밥으로 교환하라는, 돈 없는 청춘들의 자존심까지 지켜준 따뜻한 배려였다. 이곳에서 허기를 채웠던 이들은 훗날 의사, 변호사, 기업가가 되어 돌아와 만두 수백 인분을 선결제하는 아름다운 일화까지 생겨났다. 일본 국민들은 이 감동 스토리에 '어떤 일이 있어도 오쇼는 못 버리지'라며 강력한 지지를 보내게 된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한때 무리한 확장으로 도산 위기에 처했던 교자노오쇼를 회생시킨 4대 사장의 이야기도 일본 국민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매일 새벽 5시30분이면 제일 먼저 출근하여 본사 현관과 주차장을 직접 쓸고 닦으며 밝게 인사하던 사장은, 어느 겨울 새벽 총격으로 사망하게 된다. 창업주의 아들인 전 사장과 야쿠자간에 있었던 부적절한 자금 거래를 끊어내고 기업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 하다가 결국 살해당한 것이다. 야쿠자의 살해위협에도 굴복하지 않고 맞서다가 목숨을 바친 사연을 알게 된 시민들은 일부러 가게를 찾아 만두를 사 먹으며 응원을 보냈다. 교자노오쇼의 만두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인정과 신뢰의 아이콘인 것이다.

시민과 기업이 서로를 믿고 지켜온 아름다운 '연대와 신뢰의 스토리텔링'을 곱씹으며, 필자는 우리의 고향 대구시와 대구 의료의 역사를 떠올린다. 대구시의사회는 내년에 창립 80주년을 맞이한다. 산수(傘壽)의 세월 동안, 대구시 의료가 이만큼 성장하고 대한민국 의료의 메카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최신 의료 장비도, 화려한 병원 건물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시민들이 보내준 변치 않는 신뢰와 사랑이었다. 대구시의사회 80년은 대구 사람 이야기이고, 대구시의 역사이다.

돌이켜보면 대구시의사회는 대구시의 현대사 속에서 늘 시민의 곁에 있었다. 멀게는 한국전쟁의 포화 속에서 피란민들을 치료하던 천막 진료소 시절부터, 가깝게는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코로나19 팬데믹의 대유행까지 고난을 함께 극복해 왔다. 특히 2020년 봄, 대구시에 코로나19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던 그 암흑 같았던 시기에도 대구의 의료진은 물러서지 않았다. 생업을 제쳐두고 자원봉사에 나섰고 K방역의 신화를 창조했다. 하지만 그 영광의 이면에는 대구 시민들의 위대한 품격이 있었다. 사재기 하나 없이 차분하게 서로를 배려하며 연대했던 시민들, 의료진을 향해 따뜻한 커피와 도시락, 응원의 손 편지를 보내주며 격려해 주셨던 시민들이 없었다면 대구는 결코 그 잔인했던 봄을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광복에서 현재까지, 대구의 의료진이 청진기를 놓지 않고 환자 곁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대구 시민들의 든든한 믿음과 응원 덕분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대구시의사회 80주년 행사는 의사들만의 전유물이나 그들만의 잔치가 아니다. 이 잔치의 진짜 주인공은 대구시의사회를 낳아주고 키워준 대구 시민들이다. 대구시의사회 80주년은 의료계가 시민들에게 얼마나 큰 빚을 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 사랑에 어떻게 보답해야 하는지를 깊이 성찰하고 감사하는 보은의 장이다. 대구시의사회 80주년 슬로건 시민 공모전, 초등학생 미술대회 등의 행사에 '시민과 함께'라는 가치를 담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작은 중국집에서 국민 식당이 된 교자노오쇼가 시민들과 나눈 것은 따뜻한 인정이었고 시민들의 화답이 신뢰와 사랑이었듯이, 대구시의사회 80년 또한 대구 시민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아름다운 동행이었다. 대구는 의술(醫術)을 넘어 따뜻한 인술(仁術)이 흐르는 의료특별시임을 자부하며, 대구 의료의 청진기는 다가올 미래 100년에도 시민의 심장 박동에 귀를 기울이며 늘 그 곁을 지킬 것이다.

김경호 대경영상의학과 원장·대구시의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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