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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야의 대중가요 문학을 품다]<10> 도시의 불빛과 소외의 '가로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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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 있다. 내 호올로 어딜 가라는 슬픈 신호냐. 긴 여름 해 황망히 나래를 접고, 늘어선 고층 창백한 묘석같이 황혼에 젖어, 찬란한 야경(夜景) 무성한 잡초인 양 헝클어진 채, 사념(思念) 벙어리되어 입을 다물다... 공허한 군중의 행렬에 섞이어, 내 어디서 그리 무거운 비애를 지고 왔기에, 길게 늘인 그림자 이다지 어두워...'

일제강점기 모더니즘 시인 김광균의 '와사등'이다. 와사등이 켜진 도시의 밤은 현란하면서도 황폐하다. 불빛 아래에는 우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근대 문명 안에서 인간이 느끼는 소외의 초상화이다. '와사등'에서 우리는 1930년대에 도시의 정서를 감각적으로 포착한 이미지즘(Imagism) 시가 출현한 것에 주목한다. 와사등은 가스등이다. 가로등이다.

가로등의 이미지는 문명이다. 하지만 문명의 불빛에는 인간의 외로움이 공존한다. 김광균은 도시의 화려함 뒤에 숨은 공허와 그 속에서 길을 잃은 개인의 고독과 방황을 애상적인 목소리로 표현한다. 빛과 어둠, 고층 건물과 잡초, 군중과 고독의 대비를 통해 문명화된 공간 속 인간의 단절을 섬세하게 그렸다. 감각적인 이미지를 많이 사용한 이 시는 손에 잡힐 듯한 고적한 풍경이다.

'비 오는 거리에서 외로운 거리에서, 울리고 떠나간 그 옛날을 내 어이 잊지 못하나, 밤도 깊은 이 거리에 희미한 가로등이여, 사랑에 병들은 내 마음 속을 너마저 울려주느냐' '희미한 등불 밑에 외로운 등불 밑에, 울리고 떠나간 그 사랑을 내 어이 잊지 못하나, 꿈도 짙은 이 거리에 비 젖는 가로등이여, 이별도 많은 내 가슴 속을 한없이 울려주느냐'.

가수 황금심의 '외로운 가로등'은 김광균의 '와사등'에 선율을 얹어 놓은 듯한 분위기이다. 시와 가요 모두 같은 시기인 1939년에 발표되었고 도시의 밤 풍경이라는 공간적 유사성에 쓸쓸한 소회가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다만 '외로운 가로등'은 도시의 밤 정경에 실연의 아픔과 체념적 성찰을 담고 있다. 대중가요다운 감성이다. 작사가 이부풍 또한 동아일보 신춘문예 출신의 문인이었다.

1979년도 아닌 1939년에 '외로운 가로등'이 유행했다는 사실이 무척 놀랍다. 대중가요가 엔카 스타일의 5음계에 치우쳐 있던 시절이었다. 블루스 선율에 탱고 리듬을 가미한 곡의 출현은 일제강점기 우리 대중음악의 다양성과 심층성을 입증한 것이다. '알뜰한 당신'으로 스타덤에 오른 가수 황금심의 새로운 창법도, '황성옛터'의 작곡가 전수린의 창의적 음악성도 놀라울 따름이다.

탁월한 미모에 간드러진 음색을 지녔던 황금심이 '외로운 가로등'에서 굵직하고 서글픈 성음을 구사하며 또다른 역량을 과시했다. 황금심은 서구적인 질감의 가요들도 맛깔나게 소화해낸 당대 최고의 보컬리스트였다. 트로트가 아닌 블루스 곡으로도 식민지 조선인들의 시린 상처를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마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외로운 가로등'은 그래서 우리 대중가요사의 귀중한 유산이다.

노래의 탄생 일화도 전한다. 사랑하는 남자의 학비를 보태기 위해 잠시 화류계에 몸담았던 여인이 출세를 한 남자의 버림을 받은 신파조의 사연이다. 남자가 자주 출입하는 요정집 앞 가로등 아래 홀로 선 여인의 모습은 '와사등'의 시적 자아이기도 하다. 현대의 가로등은 더 강렬하다. 그만큼 그늘도 짙다. '외로운 가로등'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물음은 여전하다. '내 홀로 어디로 가라는 슬픈 신호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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