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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독(誤讀)해도 괜찮아, 책 한 권 오독오독 잘 씹어 먹을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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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오독의 발견
김민철 지음/ 김영사 펴냄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고등학생 시절 호기롭게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펼쳤다가 머리를 쥐어싸맨 적이 있다.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뺨치는 전개에다 등장인물은 왜 이리 많고, 심지어 이름은 왜 다들 기본 네 글자 이상인지. 도서관에 놓인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의 1권만 손때가 묻어있고 2, 3권은 깨끗한 이유를 그 때 알았다. 핑계 같지만, '벽돌 고전책'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 것도 그 즈음이지 않을까.

이 기억을 떠올린 건 김민철 작가의 신간 '오독의 발견' 속에 비슷한 경험이 등장해서다. 그 역시 중학생 때 엄마가 사준 문학 전집 앞에 설레는 마음으로 앉았다가, 1권 '무정'의 벽을 넘지 못하고 독서와 멀어졌다고 고백한다.

성인이 돼서도 책과 친해지기란 도무지 쉽지가 않다. 바쁜 시간을 쪼개 책을 읽어야한다는 부담과 강박 속에, 책을 읽으면서도 자꾸 숫자를 세고 정답을 찾으려 한다. 올 한 해 몇 권을 읽어야 할까, 내게 유익한 책은 뭘까, 이 책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뭘까.

20년간 카피라이터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했고 '모든 요일의 기록', '모든 요일의 여행' 등을 쓴 김민철 작가는 책 '오독의 발견'을 통해 우리가 독서를 사랑할 수 있는 방향을 넌지시 알려준다.

각자의 방식대로 '오독(誤讀)'하며 한 권의 책을 '오독오독' 씹어먹는, 때로는 '5독'까지도 하는 '오독오독 북클럽'의 대장으로서, 지은이가 제시하는 바는 간단하다. 책 속에서 마음껏 걸어보고, 느껴보고, 머물러보고, 음미해보고, 길을 잃어도 볼 것. 그는 읽고 읽고 또 읽으며, 문장과 단어를 오독오독 씹어서 소화하는 것이, 여러 권을 읽어 숫자를 늘려가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지은이가 책과 함께 보낸 시간을 담은 다섯 편의 에세이에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삶에 스며든 열네 번의 '오독' 얘기가 담겨있다.

그는 한강의 '희랍어 시간'을 통해 스스로의 어둠을 고요히 끌어안게 되고, 카뮈의 '결혼·여름' 안에서 세계를 남김없이 직시하게 만드는 빛을 발견한다. 난해하게만 느껴졌던 토니 모리슨의 작품에서 퍼즐 조각을 맞춰가는 즐거움을 맛보고, 아니 에르노와 함께 부모님의 자리를 다시 바라보기도 한다.

샬럿 브론테, 진 리스, 페터 비에리로 이어지는 독서는 나라는 존재를 다시 묻게 만들고, 끝내는 퇴사 결심과 같은 삶의 방향을 선택하는 순간에도 스며든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부터 정혜윤, 김인정까지, 픽션과 논픽션, 마침내 '코스모스'와 켄 리우, 샤샤 세이건으로 이어지는 지은이의 '독서 경로'를 따라가다보면 나의 내면에도 책을 닮은 수만 갈래의 길이 생겨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특히 그는 '오독 일기'를 권한다. 책의 어떤 부분이 내게 특별하게 다가왔는지 짤막하게나마 기록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 이유라도 써보라는 것. 뿐만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 답답하거나 개운한 감정, 떠오르는 얘기 등을 모두 기록해보라고 얘기한다.

독서가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책을 내 마음대로 풀어내 '나만의 책'으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가 강조하는 부분이다. 같은 여행지를 방문한 이들의 여행기가 저마다 다르게 기록되듯, 같은 책을 읽더라도 각자의 오독 일기가 다르게 쓰여질 수 있다고 말한다.

책을 다 읽고나면 더 이상 오독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서툴더라도 한 권의 책을 끝까지 걸으며 나만의 길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용기를 심어주기 때문. 그리고 그 길이, 미처 알지 못했던 내 삶의 새로운 방향으로 안내할 것이라는 희망까지 전하는 책이다. 256쪽, 1만8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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