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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패권 전쟁은 '21세기판 삼국지'…관도대전과 적벽대전 [커버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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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반도체 패권 전쟁은
[커버스토리] 반도체 패권 전쟁은 '21세기판 삼국지'…관도대전과 적벽대전. AI로 형성한 이미지

세계 반도체 산업은 지금 거대한 패권 전쟁의 한복판에 있다. 미국은 AI(인공지능) 반도체와 첨단 장비를 무기로 중국을 압박하고, 중국은 자립형 공급망 구축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한국과 대만은 그 틈바구니에서 세계 공급망의 핵심 국가로 떠올랐다.

이 복잡한 흐름을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이하 삼국지)에 비유해 설명할 수 있다.

1980~90년대 미·일 반도체 전쟁은 관도대전(조조 VS 원소)과 유사했다. 당시 미국은 시스템과 규칙을 장악한 조조형 세력이었고, 일본은 막대한 제조 역량과 자원을 앞세운 원소형 세력이었다. 한국은 그 사이에서 살아남으며 성장 기반을 확보한 유비와 비슷한 위치였다.

2020년대 미·중 AI 반도체 전쟁은 적벽대전(조조 VS 손권)에 비유할 수 있다. 미국은 여전히 북방의 초강대국 조조이고, 중국은 강동을 기반으로 장기전에 나선 손권형 세력이다. 그리고 대만은 조조와 손권이 정면 충돌하는 사이 형주를 확보한 유비처럼 세계 공급망의 전략 거점으로 떠올랐다.

여기서 대한민국과 대만을 각각 유비에 대입했는데, 큰 맥락의 처지는 비슷해도 디테일은 서로 좀 다르다.

현실 반도체 전쟁이 삼국지의 결말까지 그대로 따라가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승패의 최종 결과보다, 각 세력이 충돌하고 연합하며 성장하는 과정과 전략의 구조다.

관도대전=미·일 반도체 전쟁과 한국의 부상. AI로 형성한 이미지
관도대전=미·일 반도체 전쟁과 한국의 부상. AI로 형성한 이미지

◆관도대전=미·일 반도체 전쟁

관도대전은 삼국지 초기 최대 규모의 패권 전쟁이었다. 북방의 거대한 세력 원소와 중원을 장악하려던 조조가 정면 충돌한 사건이다. 당시만 해도 원소의 우세가 예상됐다. 원소는 더 넓은 영토와 더 많은 병력, 더욱 풍부한 자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조조는 병참과 조직력, 전략적 결단에서 앞섰다. 결국 조조가 원소에게 대승을 거둔 관도대전은 단순 병력 규모보다 시스템과 운영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 전쟁이 됐다.

1980년대 세계 반도체 산업도 비슷했다. 당시 일본은 NEC·도시바·히타치·후지쯔 같은 기업들을 앞세워 D램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반면 미국은 설계와 소프트웨어, 산업 규칙 측면에서 강점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미국은 미·일 반도체 협정과 통상 압박을 통해 일본 중심 질서를 흔들기 시작했다.

이는 마치 관도대전에서 조조가 원소의 병참선을 흔들며 판세를 뒤집은(조조가 원소의 병참기지 오소를 습격해 대승을 거둔 것) 흐름과 닮았다.

◆美, 반도체 질서 설계 조조형 세력

삼국지의 조조는 단순한 군벌이 아니었다. 병참과 행정, 인재 시스템을 가장 효율적으로 운영한 세력이었다.

현재 반도체 산업에서 미국도 비슷한 위치에 있다. 엔비디아와 AMD 같은 AI 반도체 기업, 시놉시스와 케이던스 같은 반도체 EDA(전자 설계 자동화) 기업, 그리고 첨단 장비 공급망과 특허 체계까지 미국은 반도체 산업의 규칙 자체를 통제하는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중국 기업 화웨이에 대한 첨단 장비 수출 제한이나 AI GPU 규제 역시 단순한 무역 갈등이 아니다. 상대의 핵심 병참선을 겨냥하는 전략적 압박 수순이다.

중요한 건 미국의 상대가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는 점이다. 1980~90년대에는 일본이었고, 지금은 중국이다. 하지만 미국이 '반도체 질서를 설계하는 조조형 세력'이라는 구조 자체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 성장 그래프. AI로 생성한 이미지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 성장 그래프. AI로 생성한 이미지

◆日 반도체 몰락→韓 기회

1980년대 일본 반도체 산업은 세계 최강에 가까웠다. 1988년 기준 세계 반도체 매출 상위 10개 기업 가운데 6개가 일본 기업이었다.

일본은 단순한 반도체 생산국이 아니었다. 소재와 부품, 장비까지 강한 제조 생태계를 구축하며 '반도체 왕국'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미국 내부에서는 이대로 가면 일본이 미래 산업 패권까지 가져간다는 위기감이 커졌다.

그랬던 일본 반도체 산업은 1990년대 들어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미국은 1986년 미·일 반도체 협정을 통해 일본 기업들을 압박했고, 일본 내부적으로는 버블경제 붕괴 이후 공격적 투자가 위축됐다. 여기에 일본 기업 특유의 수익성 중심 경영과 느린 의사결정 구조도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정반대로 대응했다. 1980~90년대 삼성전자와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는 대규모 설비 투자와 공격적 증설을 밀어붙였다. 수익성이 낮아도 생산 규모를 키우며 점유율 확대에 집중했고, 메모리 가격 폭락 국면에서도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결국 1990년대 후반부터 세계 D램 시장의 중심축은 일본에서 한국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는 삼국지 속 원소 세력이 압도적 자원과 병력을 갖고도 변화하는 전쟁 형국을 제대로 읽지 못해 무너진 흐름과 닮았다.

또 원소의 내부 분열과 느린 결단은 일본의 관료적 조직 문화, 보수적 투자, 시장 변화 대응 지연에 비유할 수 있는 부분이다.

반면 한국은 그 틈을 파고들며 관도대전 이후의 유비처럼 성장 기반을 확보했다.

사실 관도대전 당시 유비는 전장의 주역이 아니었다. 조조나 원소처럼 거대한 영토와 병력을 가진 세력도 아니었다. 그러나 일단 살아남았고, 두 강자의 충돌 속에서 성장의 기반을 마련해 지켜낸 게 중요하다.

적벽대전=미·중 반도체 전쟁과 대만의 부상. AI로 형성한 이미지
적벽대전=미·중 반도체 전쟁과 대만의 부상. AI로 형성한 이미지

◆적벽대전=미·중 반도체 전쟁

관도대전에 이어 적벽대전도 삼국지의 흐름을 바꾼 전쟁이었다. 중원을 통일한 세력 조조가 남쪽으로 진격했고, 그 타깃이 된 손권은 강동 기반의 수군과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맞섰다.

여기서 조조를 미국에, 손권을 중국에 대입해 보자. 현재 미·중 간 AI와 반도체를 포함한 '기술 패권' 경쟁이 비슷한 구도다. 미국은 첨단 기술과 AI 생태계를 장악한 초강대국이다. 반면 중국은 거대한 내수시장과 성숙 공정(구세대 반도체 생산) 골자의 장기 자립 전략을 바탕으로 독자 공급망 구축에 나서고 있다.

물론 현실은 적벽대전과 완전히 같지 않다. 조조는 적벽에서 대패했다. 하지만 현실의 미국은 여전히 기술 패권을 장악하고 있다.

다만, 미국이 한때 중국의 기술 굴기를 보고 큰 위기를 경험했다는 점에서 적벽대전의 조조와 닮은 측면이 있다. 2018년 이후 화웨이의 5G 장비와 중국 기술기업의 급성장은 미국 내부에 강한 충격을 줬다. 미국이 화웨이 제재와 첨단 반도체 수출통제에 나선 배경 역시 단순 견제가 아니라 패권이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과 무관하지 않았다.

더구나 중국이 희토류 공급망이라는 또 다른 병참선까지 쥐고 있는 점은 미국의 부담을 더욱 키웠다. 반도체를 비롯해 전기차, 첨단무기 등 생산에 필요한 희토류 상당 부분을 중국이 공급하는 구조 속에서, 미국은 공급망 재편과 자국 생산 확대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즉, 현실의 '반도체 적벽대전'은 조조(미국)의 몰락이라기보다는, 패권국(미국)이 처음으로 자기 약점과 공급망 리스크를 절감한 순간이었을 터다.

주요 반도체 기업 성장 비교 그래프. AI로 생성한 이미지
주요 반도체 기업 성장 비교 그래프. AI로 생성한 이미지
NVIDIA(엔비디아), TSMC(대만적체전로제조고분유한공사), ASML, Broadcom(브로드컴), Samsung(삼성전자), SK hynix(SK하이닉스), AMD, Intel(인텔), Qualcomm(퀄컴), Micron(마이크론) 등 세계 AI·반도체 산업 패권을 주도하는 기업들의 로고가 새겨진 의자가 막사 안에 배치돼 있다. AI로 형성한 이미지
NVIDIA(엔비디아), TSMC(대만적체전로제조고분유한공사), ASML, Broadcom(브로드컴), Samsung(삼성전자), SK hynix(SK하이닉스), AMD, Intel(인텔), Qualcomm(퀄컴), Micron(마이크론) 등 세계 AI·반도체 산업 패권을 주도하는 기업들의 로고가 새겨진 의자가 막사 안에 배치돼 있다. AI로 형성한 이미지

◆고래 싸움에 성장한 대만

또한 중요한 건 적벽대전의 최대 수혜자는 유비였다는 점이다. 조조와 손권이 정면 충돌하는 동안 유비는 형주를 확보했고, 이후 촉한 건국의 기반까지 마련했다.

대만이 그런 포지션을 취한다. 미·중 충돌이 격화하는 사이 대만 TSMC는 세계 최첨단 파운드리 기업으로 성장했고, 글로벌 AI 산업의 핵심 생산지로 떠올랐다.

TSMC는 그 전략적 중요도로 인해 중국과 대만 간 분쟁, 즉 양안관계에서 일종의 안보 방파제 역할도 맡고 있다. 그 성격을 적벽대전에서 삼국이 공통되게 노린 땅 형주에 비유해보자.

삼국지에서 형주는 단순 영토가 아니었다. 북방의 조조도, 강동의 손권도, 그리고 마땅한 근거지가 없는 떠돌이 신세였던 유비 역시 반드시 확보하려 했던 전략 요충지였다.

현재 세계 반도체 산업에서 TSMC와 대만의 위치가 비슷하다. 애플과 엔비디아, AMD 같은 글로벌 핵심 기업들은 TSMC 생산라인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 역시 첨단 공급망 차원에서 대만을 중시하고, 중국 역시 대만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즉, 대만은 단순한 반도체 생산지가 아니라 세계 첨단 산업 전체의 전략 요충지다.

단, 이 비유는 삼국지의 외교 관계를 온전히 옮겨온 건 아니다. 현실의 미국과 대만은 중국에 맞서는 첨단 공급망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면서도 미국은 대만의 반도체 산업을 호시탐탐 노리는 압박을 구사하고 있다. 실제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중 정상회담 직후였던 이달 15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누군가가 '미국이 우리(대만)를 밀어주니 (중국으로부터)독립하자'고 말하는 상황은 원치 않는다"며 대만을 향해 "우리(미국)의 반도체(산업)를 다년간 훔쳐 갔다"고 견제구를 날렸다. 대만의 지정학 리스크와 반도체 산업을 저울질하며 압박하는 맥락이었다.

그래서 중요한 건 적벽대전 속 동맹 구도보다, 조조와 손권의 거대한 충돌 속에서 유비가 형주를 확보하며 가장 큰 전략적 이득을 가져갔다는 점이다. 대만 역시 미·중 패권 경쟁을 발판 삼아 세계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으로 부상했다는 점이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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