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문과 굉음 사이에서 마주한 '풍요의 도시'
이른 아침 암리차르를 출발한 비행기가 도착한 스리나가르 공항은 민간과 군이 함께 사용하는 시설이다. 활주로 주변에는 헬기와 전투기가 줄지어 서 있었고, 머무는 동안에도 쉴
새 없이 들려오는 굉음이 이곳의 긴박한 현실을 대변했다. 도착 직후 진행된 엄격한 외국인 등록 절차와 통제는 이곳이 파키스탄과의 접경지이자 분쟁의 중심인 잠무(Jammu) 카슈미르주(州)의 주도임을 실감케 했다.
산스크리트어로 '풍요의 도시'라는 뜻을 지닌 스리나가르(Srinagar)지만, 거리마다 배치된 장갑차와 무장 군인들의 모습은 풍요보다 긴장이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히말라야산맥 아래 젤룸(Jhelum) 강 유역을 따라 펼쳐진 수려한 수변경관은 그 삼엄한 경계를 무색하게 만들 만큼 매혹적이었다.
히말라야 산맥 권역의 대표 도시인 스리나가르는 젤룸 강 유역을 따라 형성되었으며, 달호수와 니긴 호수를 비롯한 수려한 수변 경관으로 유명하다. 특히 여러 호수와 도시가 어우러진 풍경 덕분에 '동양의 베니스'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19세기 도그라 왕국 시기에는 여름 수도로 번성했으며, 이후 유럽인과 인도 상류층의 휴양지로 각광받았다. 무굴 제국 시대에 조성된 정원들도 지금까지 남아 도시의 풍경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도시 한가운데 솟은 샹카라차랴(Shankaracharya) 언덕에 오르면 스리나가르의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눈 덮인 설산을 배경으로 푸른 호수와 시가지가 어우러진 비경을 보고 있노라면, 왜 이토록 아름다운 땅이 오랜 시간 갈등의 대상이 되어야 했는지 아쉬운 탄식이 절로 나온다. 19세기 도그라 왕국의 여름 수도였던 이곳은 여전히 파시미나 숄, 세밀한 목각, 카펫 등 세계적인 수공예품의 본고장으로서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 아름다움 속에서도 긴장은 늘 함께했다. 검문소와 무장 군인의 존재는 여행자의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스리나가르는 분명 매혹적인 도시이지만, 동시에 현재진행형의 현실을 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 호수 위 하우스보트에 머무는 동안만큼은 긴장이 한결 누그러졌다.
연꽃이 가득한 호수와 잔잔한 물결 위의 수상가옥은 마치 다른 세계에 들어온 듯한 평온함을 선사했다. 하지만 이후 뉴스로 접한 충돌 소식은 그 평온이 잠시 빌린 시간임을 실감하게 했다.
◆호수 위에 핀 평화, 달 호수의 하우스보트
삼엄한 도심의 긴장을 뒤로하고 '동양의 베니스'라 불리는 달 호수(Dal Lake)에 들어서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거대한 연꽃이 수면을 뒤덮고 그 위로 고즈넉한 수상가옥인 '하우스보트'가 떠 있는 모습은 분쟁의 그림자를 잠시 잊게 할 만큼 평온하다.
달 호수는 스리나가르의 생명선이자 대표적인 명소다. 약 15km에 이르는 호안에는 무굴
정원과 하우스보트, 호텔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이룬다.
무굴 제국의 통치자들은 이곳을 여름 피서지로 삼아 정원과 파빌리온(Pavilion)을 조성했
다. 오늘날에도 그 흔적은 호숫가 곳곳에 남아 고요한 아름다움을 더한다.
달 호수를 상징하는 것은 단연 하우스보트다. 영국 식민지 시절 시작된 이 떠 있는 숙소는
단순한 숙박 시설을 넘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나무로 지어진 떠 있는 궁전은 카슈
미르만의 독특한 문화를 담고 있다. 케랄라(Kerala)의 하우스보트가 물길을 따라 이동하는 것과 달리, 이곳의 보트는 호숫가에 정박해 머무는 형태가 특징이다. 일부는 20세기 초 건조된 이후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하우스보트 사이를 오가는 전통 배 '시카라'(Shikhara) 또한 빼놓을 수 없는 호수의 전령사다. 화려하게 장식된 이 작은 배는 여행자에게는 낭만적인 이동 수단이지만, 주민들에게는 생업을 위한 중요한 도구다. 사람들은 시카라를 이용해 낚시를 하고 물자를 나르며
일상을 이어가는 삶의 터전이다.
특히 해 질 무렵, 붉게 물든 하늘과 호수 위를 떠다니는 시카라의 실루엣은 스리나가르 여
행의 백미다. 분쟁의 긴장이 잠시 멈춘 그 자리에는 오직 노 젓는 소리와 호수의 숨결만이
가득하다. 숙소인 하우스보트 안에서 느끼는 이 평온함은 이후 뉴스에서 접하는 충돌 소식을 믿기 어렵게 만들 만큼 비현실적인 평화를 선사한다.
달 호수는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삶과 풍경이 함께 어우러진 또 하나의 세계다.
◆지상낙원을 닮은 무굴 정원과 고결한 사원들
스리나가르의 진짜 매력은 호수를 넘어 그 주변의 정원과 사원에서 완성된다. 지상낙원이
라는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실감하게 하는 공간들이다. 과거 무굴 제국의 황제들이 지상낙원이라 칭송하며 조성한 정원들은 도시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 있다.
대표적인 무굴 정원인 샬리마르 바그(Shalimar Bagh)는 황제 자한기르가 사랑했던 왕비
를 위해 만든 휴식처로, '사랑의 정원'이라 불린다. 산지 지형을 따라 조성된 3단 테라스
와 중앙 수로는 정교한 질서를 이루며, 자연과 인간의 설계가 이룬 절묘한 조화로 공간 전
체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니샤트 바그(Nishat Bagh)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기쁨의 정원'이라는 이름답게 달호수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시원한 개방감을 자랑한다. 계단식 구조를 타고 흐르는 물길은 무굴 정원의 정교한 미학을 그대로 품고 있다. 넓게 펼쳐진 테라스, 호수와 어우러진 풍경이 시원하고 개방적인 느낌을 준다.
도심으로 들어가면 종교적 깊이를 지닌 공간들이 이어진다. 14세기 말 건립된 스리나가르의 대표적인 이슬람 사원 자미아 모스크(Jama Masjid)는 네 개의 목조 탑과 피라미드형 지붕이 어우러진 독특한 건축 양식으로 중앙아시아의 향기를 풍긴다. 지금도 신앙과 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한다. 넓은 안뜰과 목조 건축 양식이 고요하면서도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젤룸 강변의 샤 에 하마다니(Shah-e-Hamadan) 모스크 역시 인상 깊다. 6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이 사원은 카슈미르 전통 목조 건축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으며, 깊은 경건함을 전한다.
이곳의 정원과 사원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자연과 인간, 그리고 신앙이 오랜 시간에 걸쳐 빚어낸 공간이다. 분쟁의 긴장 속에서도 이처럼 평온한 풍경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더욱 깊은 울림을 준다.
스리나가르는 분명 긴장과 불안이 공존하는 도시다. 그러나 그 경계 너머에는, 한 번쯤 마
주할 가치가 있는 고요하고도 신비로운 아름다움이 자리하고 있다. 현실 속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낙원, 그 위태로운 평화가 영원하기를 바라며 발길을 돌렸다.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ymahn11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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