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준한 비경 속 삼엄한 긴장, 카르길 가는 길
스리나가르를 떠나 카르길(Kargil)로 향하는 길은 고대 실크로드의 주요 관문이었다. 만년설과 타지와스(Tajiwas) 빙하, 푸른 초원이 어우러진 절경으로 여행자를 맞이하지만, 동시에 인도와 파키스탄의 긴장이 여전히 살아 숨 쉬는 국경지대이기도 하다.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길목마다 무장군인들이 경계를 서고 있다. 곳곳의 검문소에서는 여권과 이름, 숙소 정보를 일일이 적어 제출해야 했다. 이동하는 내내 체크포인트가 이어졌다.
산 중턱과 계곡 깊은 곳에는 군인들의 야영지가 끊임없이 눈에 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접경 지역, 그 첨예한 화약고의 심장부로 점점 더 깊숙이 접어들고 있음이 온몸으로 실감 된다.
마침내 마주한 이름값 하는 해발 3,530m, 공포의 조질라(Zoji La) 패스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산더미처럼 쌓인 눈과 산사태로 흙이 도로까지 밀려 내려와 있고, 차량이 지나갈 수 있도록 거대한 눈 벽을 깎아 길을 만들어 놓았다.
겨울철에는 폭설 때문에 이 지역이 완전히 고립된다는 소문이 그제야 사실로 다가온다. 카슈미르와 라다크를 잇는 인도 최고의 오지 고갯길이자,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로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를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가파른 산비탈을 따라 지그재그로 길을 낸 모습은 경이로우면서도 두려웠다. 포장은커녕 안전 가드레일조차 없는 길이다. 한쪽은 깎아지른 절벽이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까마득한 낭떠러지가 어지러워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오금이 저려 왔다.
지나는 드라스(Drass) 마을은 세계에서 시베리아 다음으로 두 번째로 추운 지역으로 알려진 곳이다. 사람이 거주하는 마을 가운데 가장 추운 곳 중 하나라고 한다. 2005년 1월, 드라스의 기온은 무려 영하 60도를 기록했단다. 기상관측 사상 세계에서 두 번째로 낮은 기온이었다고 한다. 상상조차 힘든 추위다. 드라스에서 잠시 차를 세우고 짜이 한 잔을 마셨다. 뜨거운 차 한 모금이 얼어붙은 몸과 긴장을 조금이나마 녹여 주었다.
◆금빛 초원의 땅, 인도의 알프스 소나마르그
해발 2,730m의 소나마르그(Sonamarg)는 스리나가르에서 라다크로 넘어가기 전 반드시 지나야 하는 관문 같은 곳이다. 오래전에는 실크로드의 주요 교역로였고, 지금은 타지와스 빙하와 푸른 초원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산악 휴양지로 알려져 있다.
소나마르그라는 이름은 '금빛 초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름처럼 햇빛 아래 반짝이는 초원과 설산의 풍경은 환상적이었다. 주변의 목장과 침엽수림, 그리고 웅장한 설산은 마치 유럽 알프스를 연상시킨다. 한때 영국 식민지 시절에는 대표적인 휴양지였지만, 지금은 파키스탄과의 영토 분쟁 속에서 군사적 요충지가 되었다.
그동안 지나온 라다크 지역은 풀 한 포기 없는 메마른 고산 사막이었다. 그런데 조질라 패스를 넘어 도착한 소나마르그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푸른 침엽수림과 초록빛 산들이 펼쳐져 있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다.
설산에 둘러싸인 초원과 숲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신혼여행지로 유명하다는 말이 이해될 만큼 아름다운 곳이었다. 예로부터 아프가니스탄으로 이어지는 고대 교역로 가운데 하나였으며, 역사서에도 등장하는 지역이라고 한다. 소나마르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체험은 말 트레킹이다. 특히 만년빙하 지대인 타지와스 빙하를 다녀오는 코스가 유명하다고 한다.
무엇보다 반가웠던 것은 고산증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고산지대를 지나며 힘들었던 몸이 이곳에서는 한결 편안해졌다.
7월 말인데도 살구가 이제 막 익어가고 있었다. 늦게 익은 살구의 달콤한 맛은 긴 여정 끝에 받은 작은 선물처럼 느껴졌다.
◆상흔이 깊은 신앙의 도시 카르길
해발 약 2,757m의 카르길(Kargil)은 라다크 지역에서 레(Leh)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다. 주민 대부분은 이슬람교도이며, 스리나가르에서는 동쪽으로 약 204km, 레에서는 서쪽으로 약 234㎞ 떨어져 있다. 예로부터 교통과 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해온 도시이기도 하다.
1947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당시, 대부분의 이슬람 지역은 파키스탄에 편입 되었지만 카르길은 인도 영토로 남았다. 이후 1948년 제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 때 파키스탄이 점령하기도 했고, 1971년 전쟁에서는 다시 인도가 탈환했다.
그리고 1999년, 이곳은 세계를 긴장시킨 카르길 전쟁의 무대가 되었다. 파키스탄 군과 무장세력이 카슈미르 북부 카르길 지역을 기습 점령하자 인도는 공군과 지상군을 총동원해 반격했고, 결국 카르길을 되찾았다.
이 전쟁이 위험했던 이유는 양국 모두 핵무기를 보유한 상태였다는 점이다. 국제사회는 핵전쟁 가능성을 우려했고, 이후 양국은 정규전보다 사이버전·정보전·게릴라전 등 비정규전 중심의 전략을 강화하게 되었다. 지금도 이 지역은 간헐적인 무력 충돌이 이어지는 긴장의 땅이다.
카르길로 들어서면서부터 외부와의 연락은 거의 완전히 끊겼다. 와이파이는 물론이고 유료 문자조차 송수신이 안 된다. 지금까지 여행하며 문자 정도는 어디서든 가능했는데, 이곳에서는 그것마저 되지 않았다. 그만큼 깊고 험한 곳까지 들어와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고도가 높은 황량한 도시에는 흙탕물이 흐르고, 메마른 산등성이에는 벌집처럼 다닥다닥 집들이 붙어 있다. 힌두교 사원 대신 티베트 불교의 탑과 사원이 눈에 띄었다. 사람들의 옷차림과 생김새도 이전에 보았던 라다크 주민들과는 사뭇 달랐다.
카르길은 정전도 잦았다. 발전기를 돌려야 겨우 전기가 들어왔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게스트하우스 밖에서는 고성능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아잔(Azan) 소리가 밤새 이어졌다.
천둥처럼 울려 퍼지는 기도 소리는 낯선 여행자에게는 다소 버겁게 느껴졌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소리는 전쟁과 긴장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신이 들려주는 위로의 노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불안한 삶을 견디게 하는 자장가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다음 날 카르길을 떠나 레로 향했다. 멀어져 가는 도시를 바라보니, 가까이서 보았을 때보다 훨씬 더 신비롭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척박한 산들에 둘러싸인 카르길은 바로 그 척박함 때문에 더욱 깊은 인상을 남겼다. 신비롭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했던 도시 카르길은 그렇게 천천히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 ymahn11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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