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백(三白)의 고장'으로 불리는 경북 상주. 쌀과 곶감, 그리고 누에고치가 상주의 세 가지 흰 보물이다. 이 가운데 누에고치에서 뽑아낸 명주와 비단은 한때 상주 경제를 떠받친 대표 산업이었다. 그 영광의 역사를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는 곳이 바로 함창의 허씨비단직물이다.
허씨비단직물은 단순한 직물 공장이 아니다. 수십 년 동안 전통 명주길쌈을 계승하며 상주의 산업과 문화를 함께 지켜온 살아 있는 산업유산이다. 현재는 5대째 가업을 이어오며 전통 명주의 생산은 물론 체험과 교육을 통해 우리 전통 섬유문화를 알리고 있다.
현재의 허씨비단직물로 이어지는 허씨 가문의 명주길쌈 가업은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함창에서 이어져 왔으며, 허씨비단직물이라는 사업체는 1988년에 설립됐다.
◆명주의 역사를 지켜온 사람들
대표인 할아버지 허호(67) 씨, 아들 허담 씨, 손자 허조·허율이 명주를 짜는 베틀 자동화 기계 앞에 섰다. 할머니 민숙희 씨와 며느리 박미진 씨도 함께 일하고 있다. 3대가 한 공간에서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비짓땀을 흘리고 있다. 허 대표의 집안은 5대째, 아내 민 씨 가문은 4대째 명주로 대를 이어오고 있다. 부부는 명주실 만큼이나 부드러우면서도 질긴 운명적 만남이었다.
허씨비단직물은 역사가 말해주듯 상주 함창의 자랑거리다. 3천300여 평의 토지에 명주를 이용한 각종 직물을 짜는 공장과 함께 전시장, 체험장도 운영하고 있다. 공장에서는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 명주와 생명주, 옥사명주, 손 누비 등 다양한 종류의 원재료를 만든 후에 스카프, 베내옷, 가방, 수의 등의 제품을 만들어낸다. 제조 및 염색 방법 등 11건의 특허와 2건의 실용신안도 보유하고 있다.
◆명주 명콤비가 된 허호-허담 부자
현재 허호·허담 부자는 허씨비단직물의 명맥을 잇기위해 의기투합하고 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아들 허담은 서울 명문대를 졸업한 후 문경에서 공무원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런 아들에게도 항상 가업승계에 대한 마음의 부담은 늘 갖고 있었다. 명주로 인연을 맺은 부모가 하는 일을 내몰라라 할 수는 없는 또 다른 운명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마음을 누가보다 잘 읽고 있던 허담 부대표는 "공무원 시절에 명주와 관련해 일본에 출장을 가기 전 사전교육 시간에 자료 사진에 아버지가 나오는 모습을 본 후에 뿌듯함을 느꼈고, 출장을 다녀온 후에 가업을 잇기로 결심했다"고 털어놨다. 더불어, 자신이 가야할 길에 대한 명확한 확신이 섰고, 현재 가업을 시대에 맞도록 더 번영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아들의 노력에 허호 대표는 마음이 놓일 뿐 아니라 든든하기까지 하다. 허 대표는 "아들이 저보다 더 많이 연구하고, 허씨비단직물이 현 시점에서 나아갈 방향을 더 잘 알고 있다"고 흐뭇한 미소를 보였다. 허 부대표의 성균관대 문학사·경북대 섬유공학 석사·서울대 인류학 박사 과정의 3편의 졸업 논문은 모두 명주과 관련된 주제였다.
◆전국 최고의 전통 방식 명주 길쌈
명주길쌈은 긴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 작업이다. 누에를 기르고, 고치를 삶고, 실을 뽑아 여러 번 꼬고, 날실과 씨실을 맞춘 뒤 베틀에 앉아 천을 짠다. 단 한 필의 비단이 완성되기까지 수많은 손길과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허씨비단직물은 모계(母系) 중심의 가내 수공업 형태의 전통방식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인 생산기술을 접목해 명주의 품질을 높여 왔다. 부부가 합쳐서 9대째 이어오는 가업인 탓에 명주로 말하자면 따라올 자가 없다. 온갖 시행착오를 다 겪고, 각종 노하우를 갖고 있어 타 제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품질에서 앞서있다.
그러나 허씨비단직물은 산업의 명맥을 잇는 데 그치지 않고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넓혀 가고 있다. 전통 명주길쌈 체험과 천연염색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명주문화를 지역 관광자원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경상북도는 2019년 허씨비단직물을 '향토뿌리기업'으로 지정했고, 누에를 기르던 전통 잠실(蠶室)은 산업유산으로 선정했다. 또한 허호 대표는 전통 명주길쌈의 계승과 산업화,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13년 경상북도 최고 장인 선정, 2018년 경북도 문화상 수상, 2021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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