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10일 미국주식예탁증서(ADR) 나스닥 상장을 계기로 "주주 요청이 있다면 액면분할을 검토할 수 있다"고 언급하면서 SK하이닉스 액면분할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300만원을 넘보던 주가가 최근 반도체 섹터 조정 속에 100만원대 후반까지 내려앉은 터라 액면분할이 주가 반전의 실마리가 될지 관심이 쏠립니다. 하지만 액면분할은 기업가치를 바꾸는 이벤트가 아닌 만큼 기대만으로 접근하기엔 짚어볼 대목이 적지 않습니다.
액면분할을 이해하려면 먼저 액면가를 알아야 합니다. 액면가는 회사가 주식을 처음 발행할 때 정한 1주당 가격입니다. 다만 액면가는 발행주식 수를 정하는 기준일 뿐 기업의 실제 가치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시장에서 중요한 건 실적과 수급으로 결정되는 주가입니다.
액면분할은 이 액면가를 일정 비율로 쪼개 발행주식 총수를 늘리는 것을 뜻합니다. 1만원짜리 피자를 8조각으로 자르든 40조각으로 자르든 피자 한 판의 값은 그대로인 것과 같습니다. 조각 수가 늘면 한 조각 값이 싸질 뿐입니다.
15일 종가 기준 208만2000원인 SK하이닉스를 10대 1로 액면분할한다면 주가는 20만8200원이 되고 주식 수는 10배로 늘어납니다. 208만원어치를 들고 있던 투자자의 평가금액은 그대로 208만원입니다. 시가총액도, 기업가치도, 계좌 잔고도 1원 변하지 않습니다.
기업가치가 그대로인데 왜 액면분할을 할까요. 핵심은 유동성입니다. 주가가 지나치게 높으면 소액 투자자들의 진입 자체가 어려워집니다. 200만원짜리 주식은 부담스럽지만 20만원이라면 매달 몇 주씩 담을 수 있습니다. 살 수 있는 사람 자체가 늘어나는 셈입니다.
실제 효과도 확인됩니다. 삼성전자는 2018년 5월 50대 1 액면분할을 단행했습니다. 260만원에 육박하던 주가가 단숨에 5만원대로 내려왔고, 재상장 첫날 거래량이 100배 이상 폭증하며 하루 거래량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액면분할 전 15만명이 채 안 되던 삼성전자 소액주주는 이후 400만명대로 불어나며 명실상부한 '국민주'로 자리 잡았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도 유통 주식 수가 늘면 인수합병 시도에 노출되는 위험을 줄일 수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액면분할을 경영진이 주가와 주주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액면분할이 다시 거론되는 배경에는 이른바 '황제주'의 급증이 있습니다. 황제주는 주가 100만원을 넘는 종목을 부르는 시장 용어입니다. 코스피 상승과 이달 15일 기준 황제주는 효성중공업, SK하이닉스, 두산, 고려아연,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양식품, 삼성전기, SK스퀘어 등 8개까지 늘었습니다.
1주당 가격이 수백만원에 달하면 개인 투자자는 분할 매수조차 쉽지 않습니다. 거래 참여자가 줄면 유동성이 얇아지고, 작은 수급만으로도 주가가 급등락하는 가격 왜곡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SK하이닉스는 소액주주 수가 1년 만에 78만명에서 118만명대로 40만명 넘게 불어났습니다. 주주 저변이 넓어진 만큼 "한 주에 수백만원은 너무 비싸다"는 목소리도 그만큼 커지는 것입니다.
◆액면분할, 무조건 호재는 아냐…본질은 실적
다만 액면분할을 무조건적인 호재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기업의 매출과 영업이익, 시장 지배력 같은 본질적 가치는 전혀 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 사례가 그렇습니다. 액면분할 직후 기대감은 컸지만 1년 뒤 주가는 오히려 13% 정도 하락했습니다. 반도체 업황 둔화 영향 속에 이후에도 한동안 4만~6만원대에서 횡보했습니다.
해외의 경우 과거 2차례 액면분할을 진행한 테슬라의 사례를 봐도 그렇습니다. 지난 2020년 500달러 수준이던 주가를 100달러로, 5대1 액면분할 했던 테슬라는 이후에도 회사 성장 가도 속에 주가가 고공행진했었지만 지난 2022년 약 890달러에서 296달러로 3대1로 액면분할했던 테슬라 주가는 경기침체 위기, 성장 부진 등과 맞물려 우하향했습니다.
주가가 저렴해 보이는 착시효과도 경계해야 합니다. 200만원이던 주식이 20만원이 되면 싸 보이지만 기업가치는 그대로여서 가격만 보고 저평가됐다고 판단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결국 분할 이후 주가를 가르는 것은 액면가가 아니라 실적입니다.
그렇다면 SK하이닉스는 실제로 액면분할에 나설까요. 기대가 커진 것은 ADR 흥행과 본주 부진이 엇갈렸기 때문입니다. ADR은 지난 10일(현지시각) 흥행 속에 나스닥 상장에 성공했지만 국내 본주는 100만원대 후반으로 내려오며 약세를 이어갔습니다. 미국에선 사겠다는 수요가 확인됐는데 정작 국내 투자자는 비싼 주가에 발이 묶여 있으니, 문턱을 낮춰 접근성을 높이자는 목소리가 커진 것입니다.
다만 실현 시점은 불투명합니다. 이사회 결의도, 거래소 공시도 아직 없습니다. 경영진도 신중합니다.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곽노정 대표는 "지금 당장은 액면분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고, 최 회장도 최고재무책임자(CFO)로부터 아직 관련 제안을 보고받은 적이 없다는 단서를 달았습니다.
서두르기 어려운 현실적 이유도 있습니다. SK하이닉스는 이번 ADR 상장으로 전체 발행주식의 약 2.5%에 해당하는 1779만주를 신주로 찍어낸 직후입니다. 이 물량이 시장에 소화되기 전에 액면분할까지 겹치면 주가 변동성이 커질 수 있습니다. 여기에 액면분할은 통상 분할 직후 일정 기간 주가가 조정을 받는 경향이 있어 시점 선택이 까다롭습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액면분할은 기업 가치를 높이는 이벤트라기보다 투자 접근성과 유동성을 높이는 이벤트"라며 "비싼 주식을 더 많은 사람이 사고팔 수 있게 문턱을 낮추는 장치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문턱이 낮아진 뒤 주가가 오를지 내릴지는 결국 실적이 답할 문제"라며 "SK하이닉스의 장기적인 주가 방향은 인공지능(AI) 투자 확대와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성장, 실적 개선 등 펀더멘털이 좌우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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