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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은식의 페리스코프] 국방의 본질을 망각한 국방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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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

지난 16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전국안보시민단체총연합 등 주최로 안규백 국방부 장관 탄핵촉구 국민대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6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전국안보시민단체총연합 등 주최로 안규백 국방부 장관 탄핵촉구 국민대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1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 발언을 듣고 있는 안규백 국방부 장관. 연합뉴스
지난 21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 발언을 듣고 있는 안규백 국방부 장관. 연합뉴스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 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 주은식

지난 25일 취임 1주년을 맞이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개혁의 범위와 깊이가 심화할수록 진통도 거세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64년만의 문민장관으로서 "지연된 개혁의 무게를 숙명처럼 끌어안고 진력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확실히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은 두루뭉술하게 넘겼고 국민의 사퇴 요구는 외면했다.

◆국방은 정치적 자리가 아니라 국가 생존을 책임지는 자리다

국방부 장관이라는 자리는 단순한 행정부의 한 부처 장관이 아니다. 국방부 장관은 5천만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존망을 책임지는 자리이며, 평시에는 전쟁을 억제하고 유사시에는 승리를 설계해야 하는 국가 최고 수준의 전략 책임자다. 그러나 그의 조치는 국방을 허문다는 생각을 국민들에게 각인시켰다.

국방부 장관에게 요구되는 첫 번째 자질은 정치적 충성심이나 정무적 감각이 아니다. 그것은 국방의 본질을 이해하는 전략적 식견, 군 조직에 대한 깊은 이해, 국가 안보를 정파의 이해보다 앞세우는 책임 의식이고 공인의 윤리 감각이다.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이라는 영화를 보면 학생들이 완고한 교수진과 극한의 경쟁 속에서 좌절을 딛고 스스로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타인과의 경쟁을 넘어선 내면의 싸움에서 이기는 주도적인 태도와 윤리 감각이 진정한 성취를 만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오늘 대한민국이 직면한 문제는 단순히 특정 장관 개인에 대한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과연 국방의 기본 개념과 군의 존재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국가 방위를 책임지는 자리에 있어도 되는가 하는 국가적 질문이다.

◆국방은 정치의 연장이 아니라 국가 생존의 마지막 방벽이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을 정치의 연장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이것은 정치가 군을 마음대로 다룬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정치 지도자는 군사력이라는 국가 최후의 수단을 사용할 때 가장 냉철한 전략적 판단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국방은 인기와 여론으로 운영되는 영역이 아니다. 군의 개혁도 단순한 조직 축소나 통합이 아니다. 군사제도 하나를 바꾸는 순간 그것은 수십 년 뒤 국가 안보 역량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장교 양성체계, 군의 전통과 정신, 지휘체계는 하루아침에 만들 수 없는 국가 전략 자산이다.

그런데 최근 추진되는 사관학교 통합 문제를 비롯한 여러 국방 정책 논란에서 국민들이 우려하는 것은 단순히 특정 정책의 찬반이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국방의 본질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군의 근간을 흔드는 결정을 너무 쉽게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군은 일반 행정조직과 다르다. 효율성이라는 경제 논리 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군의 전투력은 조직표나 비용 계산 만으로 생성되는 것이 아니다. 전통, 명예, 자부심, 역사적 정체성, 지휘관과 장병 사이의 신뢰가 결합되어 만들어진다.

◆가장 위험한 것은 무지가 아니라 확신에 찬 무지다

국가 운영에서 가장 위험한 지도자는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다. 전문가의 조언을 듣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지도자는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판단을 절대화하고 다른 의견을 배척하는 순간 국정은 위험해진다. 역사적으로 실패한 지도자들의 공통점은 능력이 부족해서 만이 아니다. 자신의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군사 분야는 더욱 그렇다. 전쟁과 안보는 실험할 수 없다. 잘못된 판단의 대가는 국가적 재앙으로 돌아온다.

국방부 장관은 군을 변화시키는 사람이기 이전에 군의 본질을 지켜야 하는 사람이다.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전통을 해체하고,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전투력을 약화시키며, 미래전이라는 구호 아래 현실의 군사적 조건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개혁이 아니라 위험한 실험이다.

◆정통과 사이비를 가르는 기준

역사와 철학에서 정통과 사이비를 구분하는 기준은 간단하다. 정통은 개인의 욕망이 아니라 보편적 가치와 객관적 원칙을 따른다. 자신의 생각을 자연의 이치와 공동체의 가치에 맞추려 한다. 반면 사이비는 세상의 기준을 자신에게 맞추려 한다. 자신이 기준이 되고, 자신의 판단이 곧 진리가 된다. 국가 안보에서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개혁가는 조직 구성원의 목소리를 듣고, 역사적 경험을 존중하며, 장기적 국가 이익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오만한 개혁가는 자신의 구상을 절대화하고, 반대 의견을 낡은 기득권과 저항으로 몰아붙인다. 국방은 개인의 철학을 시험하는 무대가 아니다.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미래가 걸린 영역이다.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권력은 이미 실패한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공직자는 국민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 국민적 우려가 커지고, 전문가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군 원로들이 심각한 경고를 보내고 있다면 정부와 장관은 이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국민의 비판을 무시하고 "내가 옳다"는 태도로 밀어붙이는 순간 그것은 정책 추진력이 아니라 오만이 된다. 역사는 국민을 무시했던 권력을 결코 그냥 두지 않는다. 권력은 언젠가 끝나지만, 잘못된 결정의 흔적은 국가에 생채기를 남긴다. 국방부 장관은 국가 안보의 관리자다. 자신의 자리와 명예보다 국가의 미래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대한민국 안보를 위해 스스로 물러날 용기도 필요하다

장관에게 필요한 마지막 덕목은 책임이다. 민주국가에서 장관은 실패할 수 있다. 그러나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정책 판단이 국민적 신뢰를 잃고, 군 내부의 공감대를 얻지 못하며, 국가 안보에 대한 우려가 확산된다면 그 책임을 져야 한다. 자리 지키기가 책임이 아니다. 국가를 위해 물러날 줄 아는 것도 책임이다. 안규백 장관에게 국민이 묻는 것은 개인의 과거가 아니다.

"국방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는가. 군을 국가 안보의 도구가 아니라 정치적 개혁 대상으로만 보고 있지는 않은가. 대한민국 군의 역사와 전통을 존중하고 있는가. 국민의 목소리를 들을 자세가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 장관직을 유지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안보의 문제가 된다. 국방은 실험장이 아니다. 국민의 생명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맡기는 자리에는 반드시 겸손한 전문성, 책임 있는 판단, 국가를 자신보다 앞세우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이 국방부 장관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자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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