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올해도 7월 27일 정전협정 73주년을 '전승절'이라 부르며 대규모 기념행사를 여는 모습을 보면서 새삼 떠오른 국제정치학 용어가 있다. 이른바 '광인(狂人) 전략'이라 불리는 개념이다. 겉으론 비이성적이고 충동적인 행동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대에게 공포와 불확실성을 심어 협상 우위를 확보하려는 고도의 심리전이다. 현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외교 협상 방식이기도 하다.
흔히들 이 전략의 대표적 사례로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을 꼽는다. 그는 베트남전 당시 북베트남의 배후였던 소련을 압박하기 위해 핵무기 사용 가능성까지 암시하며 '예측 불가능한 지도자'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활용했다. 실제로 미군은 핵무기 탑재 가능 B-52 전략폭격기를 출격시켜 소련이 이를 감지하도록 만들었고, 백악관은 "닉슨 대통령이 통제되지 않는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외교 채널로 흘렸다. 상대가 공포를 느끼는 순간 협상의 기준 자체가 흔들린다는 계산이었다.
그런데 이 전략의 원조로 이승만 전 대통령이 종종 거론된다는 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6·25전쟁 발발 3년이 지난 1953년 6월의 이야기다. 당시 미국은 하루빨리 전쟁을 끝내기 위해 정전 협상을 서두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최소한 대한민국의 안전을 보장할 장치 없이는 휴전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북진통일' 주장 역시 결국 "휴전 이후 누가 우리를 지켜줄 것인가"라는 절박함과 연결돼 있었다.
이때 이승만 대통령은 유엔군 측과 사전 협의도 없이 약 2만7000명의 반공포로를 전격 석방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미국은 거의 패닉 상태에 빠졌고, 워싱턴 내부에서는 "이승만은 미쳤다", "통제 불가능하다"는 반응과 함께 유사시 제거 방안까지 검토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바로 그 사건이 미국의 인식을 바꾸게 된다. 한국을 배제한 채 한반도 문제를 마무리할 수 없다는 현실을 확실하게 각인했고, 그 결과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조건을 제시함으로써 마침내 정전협정이 성사되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대목이 하나 더 있다. 같은 해 11월 당시 미국 부통령이던 닉슨이 한미동맹 체결(10월 1일)을 기념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했는데, 이승만 대통령이 반공포로 석방과 한미동맹 성사 과정을 설명하며 이른바 '미치광이 전략'이라고 훈수를 뒀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훗날 닉슨이 베트남전에서 활용한 전략과 묘하게 겹쳐 보이는 대목이다. 물론 이를 두고 "닉슨이 이승만에게 배웠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국제정치에서 '광인 전략'이 때론 강력한 협상 카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임은 분명하다.
당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1인당 국민소득은 아프리카 최빈국들과 비교될 정도였고, 국군은 미군 지원 없이는 제대로 유지하기조차 어려웠다. 그런 나라가 세계 최강국 미국과 대등한 관계에서 군사동맹을 맺었다. 어찌 보면 국제정치사에서 찾아보기 드문 일이다. 더구나 폐허가 된 나라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던 한국민에게는 미국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곧 생존의 희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동맹은 이후 국가의 운명을 바꿨다. 미국의 확실한 안전 보장이 있었기에 전쟁 재발의 공포를 극복하고 해외에서 자본과 기술을 끌어들여 경제개발에 집중할 수 있었다. 만약 한미동맹 없이 휴전만 이뤄졌다면 과연 오늘날 같은 대한민국이 가능했을까.
이 질문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 더욱 실감이 난다.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가 NATO 가입과 전후 안전 보장에 사활을 거는 이유도 결국 여기에 있다. 국제정치에서 약소국의 생존은 선의나 국제법만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믿을 수 있는 군사동맹과 확실한 안전 보장 장치가 있어야만 국가의 존립을 담보할 수 있다. 어쩌면 지금의 우크라이나는 70여 년 전 전쟁의 폐허 속에서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했던 대한민국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북한이 정전협정일을 '전승절'로 기념하는 반면, 우리는 '유엔군 참전의 날'로 지정하였으나 국민 관심은 저조하다. 그러나 이날이 이승만 대통령이 '미치광이'라는 비난까지 감수하며 얻어낸 한미동맹의 출발점이었다는 사실만큼은 잊어서는 안 된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그 선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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