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오후 대구 중구 한 초등학교 앞 문구점. 입구에 들어서자 문구용품보다는 '말랑이', '왁뿌볼(왁스 코팅된 공)' 등 촉감을 자극하는 장난감, 과자·아이스크림 등 간식 매대가 먼저 보였다. 텅 빈 문구점 한구석에는 주인이 홀로 앉아있었다.
◆경영난에 폐업 내몰리는 문구점
학생들의 '사랑방'이었던 학교 앞 문구점이 해마다 사라지고 있다. 고객과 매출이 계속 줄어들며 운영에 어려움을 느끼는 가게가 늘어나서다. 공간으로 줄이거나 무인으로 바꾸는 등 운영비를 줄이기 위해 여러 방안을 강구하지만, 살아남지 못한 문구점들은 결국 폐업으로 내몰린다.
문구유통업협동조합이 파악한 2024년 전국 문구점(문구·회화용품 소매업) 수는 7천800곳으로, 5년 전인 2019년(9천468곳)에 견줘 20%가량 줄었다. 문구점의 평균 사업 존속연수는 10년 7개월이다.
대구 지역 문구점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구시에 따르면, 2024년 지역 문구점 수는 사업체 수는 391곳으로 10년 전인 2015년(525곳)보다 25.5%(134곳) 줄었다. 지역 초·중·고 학교 수(463곳)를 감안하면 인근에 문구점이 없는 학교도 꽤 된다.
12년 차 문구점 주인 박모 씨는 "예전엔 문구점 안이 바글바글해 아이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는데 지금은 대부분의 시간이 텅 비어있다"며 "매출도 10년 새 절반으로 줄어 근근이 가게 운영을 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저출생 및 대형·온라인 업체 영향
저출생으로 인해 학령인구가 감소하고 초저가 판매 플랫폼이 늘어난 점이 문구점 감소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전국 초·중·고 학생 수는 2016년 588만명에서 2025년 502만명으로 10년간 14.6%, 대구는 29만명에서 23만명으로 20.7% 줄었다.
대형마트부터 초저가 생활용품점 '다이소', '쿠팡' 등 이커머스 플랫폼까지 문구류를 저가에 판매하며 경쟁 채널도 늘어났다. 특히 국내 온라인 문구 거래 규모는 코로나19를 거치며 2021년 1조5천742억원에서 지난해 2조1천536억원으로 5년 새 5천794억원 치솟았다.
지역 중학생 이서현(14) 양은 "학교 앞 문구점에서는 가끔 급하게 필요한 게 생길 때만 이용한다"며 "아무래도 가격이 저렴하고 종류가 많다 보니 다이소나 쿠팡을 더 많이 찾게 된다"고 했다.
또 2011년 시작된 '학습 준비물 지원 제도'도 문구점 매출에 직격탄을 날렸다. 학습 준비물 지원 제도는 학교가 입찰을 통해 문구류를 일괄 구매한 뒤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지급하는 제도다. 특히 학교 입찰에 지역 문구점보다 다른 업종을 운영하는 업체나 이른바 페이퍼컴퍼니가 대거 참여하고, 낙찰 업체가 수수료를 받고 물량을 다른 업체에 넘기는 사례도 적지 않다.
최근 문구점을 폐업한 이모(70) 씨 "영세 문구점 사업자 대다수가 고령이라 온라인 전자입찰 시스템 사용을 어려워하고, 참여하더라도 가격·납품 조건 등에서 밀려 사실상 입찰 경쟁에 참여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소상공인 상생 방안 마련 필요
문구 업계에서는 학습 준비물 지원 제도와 관련해 지역 문구점만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역 문구점 인증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현재 대구시교육청은 '공립학교 회계 예산편성 기본지침'에 학습 준비물 예산의 10% 이상은 학교 인근 소매 문구점을 이용하도록 권장하고 있지만 의무사항은 아니다.
이재민 문구유통업협동조합 차장은 "학교에서 입찰을 올리면 수십, 수백 개의 업체가 참여하는데 문구와 관련 없는 업종이 대다수"라며 "현재 시행되는 '지역 서점 인증제'처럼 실제 매장을 갖춘 지역 문구점만 참여할 수 있도록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볼펜, 연필 등 일부 전통 문구를 '생계형 저가 업종'으로 지정해 소상공인들만 판매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문구 산업 붕괴가 단순한 상권 축소가 아니라 국내 제조업 붕괴 등 더 큰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병우 한국완구협회장은 "다이소 등 대형업체들이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직수입 등을 통해 해외에서 제작한 문구·완구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유통하는 구조가 이어지면 국내 제조업체들은 납품할 데가 없다"며 "문구점이 사라지면 국내 제조업체 도산, 기술 인력 해외 유출, 국산 문구 소멸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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