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이른 봄. 경북 달성군 화원읍 낙동강변의 넓게 펼쳐진 하얀 백사장은 아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놀이터였다.학교가 쉬는 일요일이면 동네 아이들은 하나둘 강변으로 모여들었다.
태훈이와 영수, 영숙이, 미숙이,명자…. 이름만 불러도 금세 어디선가 "왔나!" 하며 뛰어나오던 친구들이었다.
"하나, 둘, 셋! 간다!"
눈을 하얀 수건으로 질끈 동여맨 술래인 영수가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온다. 친구들은 숨을 죽인 채 발끝으로 모래를 밟다가도, 술래가 엉뚱한 방향으로 손을 뻗는 순간 "여기다!" 하며 깔깔 웃음을 터뜨린다.
"영숙아! 뒤로 가! 뒤로!"
태훈이가 소리치자 영숙은 맨발로 모래를 박차며 달아난다. 발이 푹푹 빠질 만큼 보드라운 백사장은 아이들의 발자국으로 금세 뒤덮인다. 술래는 웃음소리만 믿고 냅다 달려들지만 허공만 붙잡는다.
"아이고, 거기 아니야!"
영숙이는 술래의 바로 옆을 살금살금 지나가더니 손바닥으로 등을 '툭' 치고는 재빨리 달아난다.
"잡아봐라!"
그 한마디에 술래는 방향을 홱 틀어 전력질주한다. 모래가 사방으로 튀고, 아이들은 까르르 웃으며 이리저리 흩어진다.
미숙이는 웃음이 터져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허리를 숙인다. 그 순간 술래가 손을 뻗어 미숙이의 멜빵치마 끝자락을 덥석 움켜잡는다.
"잡았다!"
"아이고! 놓아라! 반칙이다!"
미숙이는 몸을 비틀며 빠져나가려 하지만 술래인 영수는 모래에 발이 푹푹 빠지면서도 끝까지 놓지 않는다. 이를 지켜보던 태훈이와 영숙이는 배를 움켜쥐고 웃음을 참지 못한다.
"술래 바뀌었다! 이번엔 미숙이다!"
미숙이는 눈을 가리고 숫자를 세기 시작한다.
"하나, 둘, 셋… 숨는다!"
그 사이 아이들은 버드나무 뒤로, 강둑 아래로, 모래 언덕 너머로 재빨리 몸을 숨긴다. 하지만 숨는 것도 잠시, 웃음소리를 참지 못해 금세 들통난다.아이들의 발길이 지나갈 때마다 하얀 모래가 안개처럼 흩날리고, "잡아라!", "도망가!", "여기 있다!" 하는 외침이 강변에 메아리친다.신발 속에도 모래가 가득 들어가고, 얼굴에는 땀이 흘러내렸지만 누구 하나 집에 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시절 술래잡기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었다. 아이들의 웃음이 봄바람을 타고 낙동강을 건너던 축제였고,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은 세상에서 가장 넓은 운동장이었으며 강물은 아이들에겐 수영장이었으며, 버드나무 그늘은 쉼터였다.
세월은 흘러 하얀 백사장도 사라졌다. 빈일열 작 '술래야 잡아라' 작품 사진 한 장은 멈춰버린 시간을 다시 움직인다.1984년 낙동강변의 하얀 모래밭은 지금도 기억 속에서 가장 눈부신 유년의 풍경으로 남아 있다.



































댓글 많은 뉴스
'사드·K2·원전' 안보·전력 공급 떠안은 TK…돌아온 건 '패싱'
37도 '찜통' 교도소에 선풍기뿐…시민단체 "냉방시설 늘려야"
李대통령 "부동산 거품 더 방치못해…잃어버린 20년 도래할수도"
[호남 반도체 졸속 추진] 대구 軍공항 이전 성과 '0'…광주는 7개 전방위적 성과 대조
호남 반도체 과속에 절차 무시?…강대식 "LH, 참여 요청 전 투자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