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한옥이 옹기종기 모인 조용한 대구 달성군 하빈면 묘골마을. 평범한 한옥마을처럼 보이는 이곳에는 지워지지 않는 역사가 숨어 있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도 충절을 잊지 않았던 사육신을 기리는 공간, 육신사가 자리한 곳이다.
◆ 목숨 걸고 지킨 충절, 살아남은 후손
묘골마을은 사육신 중 한 사람인 박팽년의 후손들이 대대로 터를 잡고 살아온 동네다. 박팽년은 생전 세조의 총애를 받았지만 끝내 단종을 향한 충절을 굽히지 않은 인물로 유명하다. 세조를 '나으리'라고 부르며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세조가 녹봉으로 내린 쌀 역시 단 한 톨도 먹지 않은 채 광에 쌓아뒀다고 전해진다.
그가 죽은 뒤에도 가족에게는 혹독한 시련이 이어졌다. 충절을 지킨 대가로 삼족을 멸하라는 명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아들은 죽임을 당하고, 딸은 관비로 보내질 처지였다.
그때 박팽년의 둘째 며느리가 아들을 낳았다. 집안의 대를 이을 수 있는 유일한 남자아이였다. 순천박씨 집안은 아이를 살리기 위한 묘안을 냈다. 마침 집안의 여종이 딸을 낳자 두 아이를 바꿔치기한 것이다. 그렇게 박팽년의 손자는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박비'라는 이름으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박비는 신분을 숨긴 채 살아가 어느덧 17살이 됐다. 그리고 스스로 조정으로 찾아가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이야기를 들은 성종은 그에게 '하나뿐인 옥구슬'이라는 뜻의 '일산'이라는 이름을 내려주고 노비의 신분에서도 벗어나게 했다. 박일산은 이후 묘골마을로 돌아와 박팽년의 후손으로 살아갔다고 전해진다.
◆ 한옥 사이 사육신의 흔적
그 긴 이야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마을을 천천히 걸어봤다. 마을 초입에는 박팽년을 비롯한 사육신의 삶과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성삼문, 이개, 유성원, 하위지, 유응부의 사연을 고루 볼 수 있다.
박물관 옆으로는 한옥들이 이어진다. 대부분 박팽년의 후손들이 살아온 집과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그중 유독 새것처럼 말끔한 한옥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박팽년의 후손이 운영하는 한옥카페다. 깊은 역사를 품은 마을을 찾는 방문객이 적지 않지만, 잠시 쉬어갈 공간이 마땅치 않았던 것이 카페를 시작한 계기라고 한다. 이날도 더위를 피해 한옥카페로 발걸음을 옮기는 방문객들이 눈에 띄었다.
한옥 담길을 따라 천천히 올라가자 간간이 들리던 말소리가 사라진다. 대신 발밑에서 퍼석이는 흙길과 새소리가 귀를 간질인다. 조용함을 즐기며 낮은 오르막을 오르니 사당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사당 초입에는 아직 꽃을 피우지 않은 연꽃이 빼곡하게 심겨 있고, 곳곳에는 배롱나무가 붉은 꽃을 피우고 있다. 이곳이 바로 육신사다.
◆ 고요한 사당 속 여섯 사람
처음부터 육신사였던 것은 아니다. 본래는 박팽년 한 사람만을 모시던 사당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박팽년의 후손 박계창이 박팽년의 기일에 여섯 어른이 사당 문밖을 서성이는 꿈을 꿨다. 사육신 가운데 박팽년을 제외한 다섯 사람은 이미 세조의 손에 목숨을 잃었고, 이들을 함께 기릴 후손도 남아 있지 않은 탓이라고 여겼다. 꿈을 계기로 박계창은 사육신을 모두 모시기 시작했고, 지금의 육신사로 이어지게 됐다.
육신사 안에는 사육신 한 사람 한 사람의 역사를 새긴 육각비가 자리하고 있다. 여섯 면의 비석 아래에는 거북이 조각이 놓여 이들의 이야기를 단단하게 받치고 있다. 그 뒤로는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자리한다.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어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돌아오는 길, 아까와는 같은 마을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고운 꽃도, 정갈하게 이어진 한옥 담장도 그저 예쁘기만 한 풍경은 아니었다. 이 담장 너머에는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던 이들의 이야기가 있었고, 그 뜻을 지키기 위해 신분까지 감춰야 했던 후손들의 시간이 있었다.
조용해서 더 오래 머물고 싶은 마을. 하지만 천천히 들여다볼수록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이야기가 모습을 드러내는 곳이다. 묘골마을은 그렇게 아름다움과 비극적인 역사를 한자리에서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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