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시초는 의외로 학생 중심이었다. 12세기 무렵 유럽에서 배움을 원하는 학생들이 스스로 모여 길드를 만들고, 자신들이 원하는 학문을 가르칠 교수를 찾아 나섰다. 오늘날 대학(university)의 기원이 된 중세 대학의 모습이다. 지식을 얻고 싶다는 욕구로 사람들이 모였고, 그 공동체가 대학이 됐다.
그로부터 90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대학에 가는 이유는 꽤 달라졌다. 오늘날 대학은 취업과 사회 진출을 위한 관문이다. 대학에 가지 않으면 괜찮은 일자리를 얻기 어려워지고, '좋은 대학'을 졸업할수록 사회의 희소한 자원에 접근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게 현실이다.
사람들이 대학에 기대하는 것이 달라진 것처럼 국가가 대학에 요구하는 역할도 크게 늘었다. 특히 지역 대학에는 더 많은 짐이 얹혔다. 지방소멸을 막는 '최후의 보루'가 돼야 하고, 지역 산업을 혁신해야 하며, 기업이 원하는 첨단산업 인재도 제때 길러내야 한다. 인공지능(AI) 전환도 이끌고 창업을 활성화하며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해 지역에 정착시키라는 주문까지 받는다.
순수한 지식공동체라는 대학의 오래된 이상과는 다소 멀어졌을지 모른다. 그래도 대학이 이런 역할을 해낼 수 있다면 사회 전체로서는 고마운 일이다. 문제는 그 많은 역할을 떠맡은 대학 구성원들이 과연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상태인가 하는 점이다.
최근 만난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청년들이 대학에서 보내는 시간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입학과 동시에 학점과 자격증, 어학 점수, 인턴과 대외활동을 챙기며 취업 준비에 뛰어든다. 그렇게 대학 4년을 보내고도 졸업 후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취업할 때까지 돈이라도 아끼겠다며 친구와의 약속조차 줄이는 청년들도 있다.
교수들도 각종 정부 재정지원사업에 내몰리고 있다. 유·초·중등교육처럼 안정적으로 내려오는 교부금이 없는 대학들은 정부가 내놓는 사업 하나하나에 사활을 건다. 사업을 따내기 위해 계획서를 만들고 발표 평가를 준비한다. 선정되면 끝이 아니다. 이제부터는 성과를 내야 한다. 학생을 가르치고 자신의 연구를 수행하면서 수십 명의 참여 연구진과 예산, 실적까지 관리해야 한다.
직원들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오랜 등록금 동결과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 살림은 빠듯해졌는데 정부 사업과 평가, 각종 행정업무는 계속 늘어난다. 인력은 크게 늘지 않는데 해야 할 일은 많아졌다. 대학 현장에서는 과도한 업무로 몸이 아파 병가를 내거나 정신과 치료를 받는 직원이 늘고 있다는 이야기도 어렵지 않게 들린다.
대학 구성원의 정신건강을 더 이상 개인의 문제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 학생에게는 충분한 상담 지원과 안정적으로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취업 여건을, 교수와 직원에게는 교육·연구와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줘야 한다. 무엇보다 대학이 정부 사업에 매달리지 않아도 운영될 수 있도록 안정적인 고등교육 재정 기반을 갖춰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대학에 무엇을 더 시킬 것인지만 고민해 왔던 것은 아닐까. 이제는 질문을 바꿀 필요가 있다. 대학이 지역과 국가를 위해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그 역할을 계속 수행할 수 있도록 우리는 대학을 어떤 상태로 만들어야 하는지를 물어야 할 것이다.
대학에 대한 정부의 요구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 요구를 감당할 공동체가 건강한지부터 살펴야 한다. 병든 대학이 지역과 사회를 살릴 순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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