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중장년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등산이 코로나19 이후에는 20대에게까지 대중적인 레저스포츠가 됐다. 실내 운동을 할 수 없던 시기 대안으로 찾은 장소가 바로 도시 근교의 산이었기 때문. 팬데믹 이후에도 등산은 나이를 막론하고 꾸준히 사랑받는 레저스포츠가 됐다.
처음 산이 생겼을 때 길은 없었을 터. 지금의 등산로는 오랜 시간 사람들이 오고가며 만들어진 길이기에 맨 처음 길을 튼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1976년 창설된 '한오름 산악회'는 대구의 등산 문화의 길을 트고 닦으며 올해 50주년을 맞았다. 이병진 한오름 산악회 10대 회장은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랑스러운 전통은 창립의 뜻을 세우고 초석을 다져주신 선배 회원님들의 헌신과 봉사, 그리고 역대 회장단과 모든 회원 여러분의 변함없는 사랑과 참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한 만큼, 이전의 발자취가 없었다면 지금의 등산로는 개척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창립회장인 이동로(73) 고문과 박진흠(66) 전 회장 등 한오름 산악회 회원들이 들려주는 등산 이야기를 통해 대구 등산 문화의 변화상을 확인해볼 수 있었다.
◆ 운동화에 양말 무릎까지 올려신고
1970년대 당시 등산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땠는지 궁금해하는 기자에게 이 고문과 박 전 회장은 '한오름 산악회 50년사'에 실린 사진을 보여줬다. 1976년 12월 12일 당시 회장이었던 이 고문을 포함한 한오름 산악회 창립 멤버들이 가산산성을 오른 뒤 촬영한 기념 사진이었다.
이 고문은 "당시 복장을 보면 요즘 스타일의 등산화를 신은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운동화 정도만 갖춰 신었다"며 "등산화는 수제로 향촌동 수제화골목 등에서 맞춰 신는 경우가 많았다"고 술회했다.
사진 중 독특한 패션이 있다면 등산 양말안에 바짓단을 넣고 양말을 무릎 근처까지 올려신었다는 점. 이 고문은 "당시 '니커보커' 스타일이라고 해서 등산 다니던 사람들에게는 그게 유행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 전 회장은 "지금은 등산로 안내판도 많고, 개별 산악회들이 달아놓은 리본들이 길을 알려주지만 예전에는 그런 리본이 없어서 등산로의 나뭇가지를 우리가 아는 방식으로 부러뜨려 길을 표시했다"고 말했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등산은 전문성을 띄는 레저스포츠라기 보다는 관광의 한 부분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다. 한오름 산악회의 결성 의의는 전문적인 등산을 추구했다는 점에 있다. 이 때부터 대구에도 암벽등반 등의 전문성을 요하는 산악활동이 시작됐다. 가르쳐주는 사람도, 제대로 된 장비도 없던 시절, 이들은 책이나 장비 수입 과정에서 등산 기술을 배우고 익혔다.
◆ 산악회 붐·전문 등산분야 태동
1980년대 들어서며 산악회가 우후죽순 생기기 시작했다. 당시 산악회는 지금처럼 등산 일정을 잡은 뒤 등산객을 모아 대절한 버스를 타고 등산을 즐기고 오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매일신문을 비롯한 신문 5단광고 자리나 여행 지면의 한 귀퉁이에는 산악회 회원과 등산객 모집 공고가 빠지지 않았다. 이 고문은 "산악회 일정 광고를 올려놓으면 연락이 많이 왔다"며 "덕분에 신문사 관계자들과도 안면을 트기도 했고 매일신문과 함께 등반 행사도 진행한 적이 많았다"고 추억하기도 했다.
대중적인 등산과 함께 전문 등산 분야도 도입되기 시작했는데 빙벽 등반도 이 시기에 그 개념이 들어왔다. 등산 장비 수입 사업도 해 봤다는 이 고문은 "80년대 이전 장비들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가격도 매우 비쌌다"고 말했다. 박 전 회장도 "이 고문이 당시 들고 왔던 장비들을 보면 다들 눈이 휘둥그레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등산을 자주 다니다보니 조난이나 사고도 겪는다. 이 고문과 박 전 회장은 강원도 동해시에 있는 두타산 알바위골 빙벽 등반 도전 당시 올라가다가 자일을 고정하는 픽이 빠져 수십 미터를 미끄러져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있었다. 또 팔공산 산행 중 비를 만나 길을 잃고 헤매 밤을 새서 걸어 내려오기도 했다.
◆ 돈 주고도 못 사는 등산의 희열
90년대 이후 등산 이외에 즐길 레저스포츠가 많아지면서 등산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도는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한오름 산악회는 산악 구조대 자원봉사활동이나 해외 등반 도전 등으로 전문 등산의 영역을 넓혀갔다.
최근 산악회들 중에는 전문 등산 영역까지 손대면서 초보 등산객과 어울리는 산악회를 찾아보기 힘들다. 박 전 회장은 "암벽 등반이나 빙벽 등반 등은 팀워크가 중요한데, 요즘 산악회 중에는 이를 가르치거나 전문적으로 다루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며 "우리도 나이가 많다 보니 예전처럼 도전하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인공 암벽 등반 등으로 사람들이 즐기는 기술적인 등산 영역이 넓어진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고문과 박 전 회장은 "오히려 일반적인 등산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고 답했다. 등산의 기본은 일단 산을 걷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게 이들의 지론. 단순한 산행을 넘어 높은 산의 바위와 얼음 지형을 오르는 신체적·기술적 행위와 그에 담긴 도전 정신, 윤리, 문화를 이르는 '알피니즘'(Alpinism)이 등산의 기본인 만큼 이 부분이 등산 행위에 담겨있어야 한다고 이들은 말한다.
50여년을 산과 함께 동고동락해 온 한오름 산악회 회원들은 "일단 산을 올라보라"고 말한다. 정상에 올라서서 바라보는 풍경과 '올라왔다'는 사실에서 오는 희열은 이루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며 돈 주고도 못 살 감정이라는 것. 그래서 이렇게도 말한다. "산에 오르는 재미에 미치게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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