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꽃장식 800만원, 우리 집 꽃집은 안 된대요"…예식장 '지정업체' 카르텔, 공정위는 언제 나서나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예식장 3곳 중 1곳 "생화 장식·본식 도우미 필수"…가격 공개 의무만으론 한계, 지정업체 강제 자체를 규제해야

생성형 AI를 활용한 이미지.
생성형 AI를 활용한 이미지.

"대관료만 350만원인데 이건 그냥 문을 열어주는 값이래요. 꽃은 예식장 지정 플로리스트, 한복은 지정 한복집, 턱시도는 지정 대여점, 사회자와 도우미도 지정 업체. 하나라도 밖에서 가져오면 '홀 컨디션 유지'를 이유로 안 된다고 합니다."

내년 4월 결혼을 앞둔 30대 직장인 A씨는 예식장 상담을 세 곳 다닌 뒤 계약서를 들고 한참을 망설였다. 견적서 맨 윗줄 대관료는 감당할 만했다. 문제는 그 아래 줄줄이 붙은 '필수 항목'이었다. 생화 꽃장식 400만원, 본식 도우미 60만원, 음향·조명 패키지 80만원, 폐백 한복 대여 90만원. 외부 업체를 쓰면 반값도 안 되는 것들이었지만 선택권이 없었다. A씨는 "대관료가 싸다고 골랐는데 필수 옵션을 더하니 다른 예식장보다 비쌌다"며 "결혼식이 아니라 옵션을 사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런 구조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달 발표한 조사에서 결혼식장 354곳 중 32.8%가 생화 꽃장식이나 본식 도우미 등을 필수 추가 항목으로 두고 있었다. 성수기 주말 예식일수록 이런 조건이 붙었다. 결혼비용 자체도 다시 오르고 있다. 소비자원이 2025년 4월부터 올해 6월까지 전국 14개 지역에서 체결된 결혼서비스 계약 11만299건을 분석한 결과 성수기(3~6월, 9~12월) 평균 비용은 2천156만원으로 비수기 1천954만원보다 202만원 높았다. 4월 예식은 평균 2천238만원으로 가장 비쌌고 1월은 1천913만원으로 가장 저렴했다. 결혼식장 대관료와 식대, 스드메 패키지만 합친 금액으로 옵션은 빠져 있다.

대관료 상승세는 특히 가팔랐다. 올해 2월 기준 전국 대관료 중간 가격은 350만원으로 한 달 전보다 16.7% 뛰었다. 광주는 지난해 12월 100만원이던 대관료가 두 달 만에 250만원으로 두 배 이상 올랐다. 대구의 한 특급호텔 웨딩홀은 식대 1인 11만원에 기본 꽃장식과 대관 비용이 2천만원, 스드메 800만원을 얹으면 예식장 비용만 6천만원을 넘는 견적을 내놓았다. 여기에 혼수와 예물, 신혼여행을 더하면 2024년 기준 평균 결혼 준비 비용은 6천298만원에 이른다.

예비부부들이 가장 분통을 터뜨리는 대목은 '가격'보다 '선택권 박탈'이다. 참가격 통계상 예식장 기본장식비는 전체 결혼서비스 계약금액의 3.9%에 불과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기본장식 위에 '성수기 업그레이드' 생화 장식이 필수로 붙으며 수백만원이 추가된다. 스드메도 마찬가지다. 소비자원이 결혼준비대행업체 20곳을 조사한 결과 19곳(95%)이 사진 파일 구입비, 드레스 피팅비 등을 기본 서비스가 아닌 별도 항목으로 뺐고 13곳(65%)은 옵션 가격을 구체적으로 표시조차 하지 않았다.

문제는 이 관행이 공정거래위원회가 13년 전 이미 확인하고도 손을 놓은 사안이라는 점이다. 공정위는 2013년 서울 특급호텔 20곳의 예식상품을 조사해 12곳이 꽃장식을, 9곳이 무대연출을 필수 항목으로 강제한 사실을 적발했다. 당시 19개 호텔 평균 꽃장식 비용이 700만원을 넘었고 한 호텔은 2천57만원에 달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다수의 고급 예식홀이 존재하고 소비자의 사전 선택 기회가 있다"는 이유로 법적 제재 대신 자율 시정을 택했다. 호텔들은 견적서에서 '필수' 표시만 지우고 상담 단계에서 권유하는 방식으로 관행을 이어갔다. 그 사이 끼워팔기는 특급호텔을 넘어 일반 웨딩홀과 컨벤션으로 번졌고, 대상도 꽃장식에서 한복·턱시도·도우미·사회자·음향으로 늘었다. 자율 시정의 결과가 관행의 전국화였던 셈이다.

공정위가 지난해 11월 중요정보고시를 개정해 예식장과 결혼준비대행업체에 기본 서비스와 선택 품목의 세부 요금, 위약금과 환급 기준을 홈페이지나 참가격에 공개하고 계약서 표지에도 표시하도록 한 것은 진일보다. 올여름부터 이행 여부를 집중 점검하고 있으며 위반 시 최대 1억원의 과태료를 물릴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얼마인지 알려주라'는 규제일 뿐 '왜 여기서만 사야 하느냐'에는 답하지 않는다. 가격을 미리 공개하더라도 외부 업체 반입을 막고 지정업체 이용을 대관 조건으로 묶는 구조 자체는 그대로 남는다.

결혼서비스 업계 관계자는 "예식장은 대관료를 낮게 보이게 하고 지정업체에서 받는 수수료로 수익을 보전하는 구조가 굳어져 있다"며 "지정업체 강제를 규제하지 않으면 대관료 공개는 미끼 가격 공개에 그친다"고 말했다. 실제로 공정거래법은 거래상 지위를 이용해 다른 상품 구입을 강제하는 행위를 불공정거래행위로 금지하고 있다. 예식장이 대관을 조건으로 자사 또는 특정 업체의 꽃·한복·도우미 구입을 강제하는 것은 이 조항이 겨냥하는 전형적 끼워팔기에 해당한다는 게 소비자단체의 시각이다. 한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2013년 공정위가 법적 제재를 포기한 논리는 '고급 예식홀이 많으니 다른 곳을 고르면 된다'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어디를 가도 같은 조건이라 그 논리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정보 공개 점검을 넘어 지정업체 강제 실태에 대한 직권조사에 나설 때"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요구되는 조치는 세 가지다. 첫째, 공정위가 전국 주요 예식장의 지정업체 강제 실태를 직권조사하고 위법성이 확인된 사업자에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2013년처럼 행정지도로 끝내서는 관행이 반복된다는 것이 지난 13년의 교훈이다. 둘째, 결혼서비스업 표준약관을 제정해 외부 업체 반입 금지, 지정업체 의무 이용 조항을 불공정 약관으로 명시하는 것이다. 셋째, 예식장 견적서에 '대관료'가 아닌 '필수 항목을 모두 포함한 총액'을 먼저 표시하도록 하는 총액표시제 도입이다. 여기에 스드메처럼 예식장 옵션 가격도 참가격에 항목별로 공개해 지역 간 비교가 가능하게 해야 한다.

민간 시장의 관행이 얼마나 비정상적인지는 공공예식장이 역으로 보여준다. 서울시는 시민청, 서울시립대 자작마루, 문화비축기지, 한성백제박물관 루프탑 등 공공시설 61곳을 결혼식장으로 개방해 대관료를 무료 또는 소액으로 받고 비품비를 최대 100만원 지원한다. 지난 6월에는 공공예식장 이용 부부에게 연출비를 최대 300만원까지 지원하는 이벤트도 내놨다. 금천구시설관리공단은 지난해부터 금나래문화체육센터를 '대관료 0원'으로 개방하면서 전기·냉난방·주차를 제공하고 꽃·장식·연출은 부부가 원하는 대로 자율 구성하도록 보장했다. 같은 서울에서 한쪽은 대관료를 받지 않으면서 장식 자유를 보장하고, 다른 한쪽은 대관료 수백만원을 받고도 꽃집 선택권을 빼앗는 것이다. 다만 공공예식장 몇십 곳으로 연간 20만 건에 가까운 결혼식 시장의 관행을 바꿀 수는 없다. 규제 당국이 움직여야 하는 이유다.

이는 저출산 대책과도 직결된다. 통계청 2024년 사회조사에서 결혼을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 결혼 자금 부족(31.3%)이 꼽혔고, 국민 76.9%는 결혼 비용과 의식·절차를 포함한 결혼식 문화가 과도하다고 답했다. 소비자원은 예비부부들에게 계약 전 참가격 누리집에서 결혼식장과 스드메 가격을 확인하고, 성수기에 예식을 계획한다면 대관료가 아닌 필수 추가 항목을 모두 더한 총액 기준으로 비교하라고 당부했다. 스튜디오 촬영을 생략하는 '드메' 계약도 빠르게 늘고 있다.

A씨는 결국 지정업체 조건이 없는 예식장을 찾아 계약을 다시 했다. 대관료는 100만원 더 비쌌지만 총액은 300만원 줄었다. 그는 "결혼식 한 번 하는 데 왜 꽃집을 고를 자유까지 사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결혼 지원금을 늘리는 정부가 정작 결혼 비용을 부풀리는 시장 구조는 13년째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자신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개혁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반발이 따른다고 강조하며, 개혁의 속도와 방식에 신중함을 기할 필요...
브리핑 데이터를 준비중입니다...
며느리의 출산 예정을 이유로 시아버지가 해외여행 일정을 우선시하며 출산 날짜를 변경해 달라는 요청이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부산의 한 전...
이스라엘군은 10일(현지시간) 레바논 남부 알리 타헤르 능선에 구축된 헤즈볼라의 대규모 지하 시설을 폭파하여 지진 규모 4.1의 폭발을 일으..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