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을 상습적으로 미루는 사업주는 이제 신용카드가 멈추고 은행 대출 창구가 닫힌다. 퇴직자에게만 붙던 연 20% 임금체불 지연이자는 회사를 다니고 있는 노동자에게도 붙는다. 상습 체불을 겨냥한 개정 근로기준법이 지난해 10월 시행된 뒤 1년, 체불 사업주를 옭아매는 그물은 한층 촘촘해졌다.
그런데도 돈은 여전히 밀린다. 지난해 임금체불액은 2조679억원으로 두 해 연속 2조원을 넘겼다. 피해 노동자는 26만명을 웃돌았다.
◆ 열에 일곱은 30인 미만 사업장
체불은 영세 사업장에 몰려 있다. 올해 상반기 체불액 가운데 30인 미만 사업장 몫이 74.2%였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박해철 의원실이 지난달 22일 고용노동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다.
문을 닫은 회사에서 생긴 체불도 불어났다. 올해 상반기 휴·폐업 사업장 체불액은 1531억원으로, 3년 전의 두 배를 넘는다. 업종별로는 지난해 제조업과 건설업이 나란히 체불액 1, 2위를 차지했다.
감독에 나서면 열에 일곱에서 체불이 드러난다. 고용노동부가 올해 8월까지 체불 특화 감독을 벌인 사업장 1만1213곳 가운데 8178곳이 적발됐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김형동 의원실이 지난 5일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자료에 나온다.
◆ 석 달치 밀리면 '상습'…카드·대출 막힌다
개정법은 상습 체불 사업주를 따로 정했다. 직전 1년 동안 노동자 한 명에게 석 달치 이상 임금을 주지 않았거나, 다섯 차례 이상 밀려 총액이 3천만원을 넘으면 해당한다.
이렇게 지정되면 사업주 정보가 한국신용정보원으로 넘어간다. 신용관리 대상자로 올라 대출과 신용카드 발급·한도가 제한된다. 등재 기간은 최장 7년이다. 국가와 지자체 보조금에서 배제되고 공공입찰에서는 감점을 받는다.
집행은 이미 시작됐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4월 고액·상습 체불 사업주 187명의 명단을 공개하고 298명에게 신용제재를 내렸다. 유죄 판결이 거듭된 사업주들이다. 한 여행업체 대표는 노동자 아홉 명에게 1억2천만원을 주지 않았고, 집을 판 뒤에도 개인 빚만 갚다 명단에 올랐다.
5월에는 대지급금을 1년 넘게 갚지 않은 사업주 2057명에게 처음으로 금융 신용제재가 들어갔다. 명단에 오른 사업주는 체불액을 다 갚기 전까지 출국도 막힌다.
형벌도 무거워졌다. 이달 8일부터 임금체불 법정형은 징역 5년 이하 또는 벌금 5천만원 이하로 올랐다. 명단 공개 뒤 3년 안에 다시 임금을 떼먹으면 피해자와 합의해도 처벌을 피하지 못한다.
◆ 재직자도 연 20%…법원 가면 3배까지
노동자 쪽 무기도 늘었다. 그동안 지연이자는 퇴직한 뒤에야 청구할 수 있었다. 이제는 재직 중이라도 정기 지급일 다음 날부터 연 20% 이자가 붙는다. 대한법률구조공단에는 재직 중인 노동자가 석 달치 밀린 급여에 월급일 다음 날부터 이자를 얹어 지급명령을 신청한 사례가 있다.
고의로, 또는 오래 임금을 미룬 사업주에게는 법원에 체불액의 최대 3배까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종전에는 없던 징벌적 배상이다.
다만 문턱이 있다. 노동청에 진정을 내면 시정지시 대상은 체불 원금뿐이다. 지연이자와 징벌적 배상은 법원에 민사소송을 내야 받아낼 수 있다. 노동계와 노동법률 전문가들은 다니는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내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인사 불이익과 해고 압박을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 열에 넷은 '합의'로 끝난다
제재가 세졌어도 사건 대부분은 합의로 닫힌다. 올해 1~7월 접수된 체불 사건 가운데 41.8%가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아 종결됐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용우 의원실이 지난 7일 공개한 고용노동부 자료를 보면, 이 기간 접수된 4만642건이 처벌 불원 의사로 처리됐다.
노동계는 상습 체불 기준이 너무 높다고 본다. 총액 3천만원 같은 요건에 걸리는 사업주가 적어 제재 대상 자체가 좁다는 지적이다.
경영계 시선은 반대다. 중소기업중앙회와 경영자총협회는 원자재값 상승과 경기 침체로 일시적 자금난을 겪는 중소기업에 대출 회수와 카드 정지가 겹치면 회생 기회가 사라진다고 본다. 원청 결제가 늦어진 영세 하도급 업체는 운전자금이 끊겨 파산과 체불 누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 이달 23일 첫 '상습' 확정
올해 대상 상습 체불 사업주를 처음 가리는 심의가 이달 23일 열린다. 확정된 사업주 정보는 곧바로 한국신용정보원에 넘어간다. 11월에는 하반기 고액·상습 체불 사업주 명단 공개와 신용제재를 다시 심의한다. 이후로는 매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체불 자료를 모아 정례 심의위원회를 연다.
첫 명단이 몇 명이나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석 달치와 3천만원이라는 문턱이 영세 사업장에 몰린 체불을 얼마나 걸러낼지, 23일 심의 결과가 가늠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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