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북항 친수공원에 나타난 상어 한 마리가 '국민 스타'가 됐다. 시민들은 3.5m가량의 무태상어로 추정되는 녀석을 '부캉이'라고 불렀다. 열흘 남짓한 기간에 친수공원 방문객이 60만 명을 넘었다. 주변 상권은 반짝 특수(特需)를 누렸다. 기업들은 '부캉이 마케팅'에 열을 올렸다. 급기야 부산시는 부캉이를 명예홍보대사로 위촉했다. "부캉아, 또 온나"라는 현수막까지 등장했다. 부캉이는 불청객이다. 인공수로에 들어온 뒤 바다로 나가지 못해 머물고 있다. 당국이 워터펌프를 동원해 외해(外海)로 유도했지만 실패했다. 이제는 대형 그물을 이용해 바다로 돌려보내려 한다. 시민들은 작별을 아쉬워한다. 그러나 상어는 본래의 서식지로 돌아가야 한다. 최근 동해안의 대형 상어 혼획(混獲)이 크게 늘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해수 온도 상승으로 해양 생태계가 변하고 있다는 신호다. 상어가 친수공원에 등장한 것이 반길 일이 아니란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걱정보다 즐거움을 원했다. 상어가 나타나니 사진을 찍고, 이름을 짓고, 굿즈를 만들고, 홍보대사까지 앉힌다. 기후변화라는 '불편한 질문'은 묻혀 버렸다. 모두가 들떠 있을 때, 녹색당이 일침(一鍼)을 날렸다. "상어에 환호하며 즐길 때가 아니라 그 심각성을 깨닫고 삶과 시스템의 근본적인 대전환을 시작해야 한다"며 "상어의 출현은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경고"라고. 올봄 대전에서는 늑대 '늑구'가 동물원을 탈출했다. 9일 동안 도심을 누비며 국민의 관심을 끌었다. 처음에는 재난 문자까지 발송될 만큼 긴박(緊迫)했지만, 곧 '국민 늑대'가 됐다. 사람들은 늑구가 다치지 않기를 기원했다. 늑구가 돌아오자, 안부를 묻고 박수를 보냈다. 대전시는 캐릭터화까지 검토했다. 늑구빵과 굿즈 같은 상품도 등장했다. 부캉이와 늑구의 공통점이 있다. '경로 이탈'이다. 부캉이는 바다에서 인공수로로, 늑구는 사육장을 넘어 도시로 나왔다. 우리는 길 잃은 동물을 보며 반가우면서도 안쓰러워했다. 그러나 그들의 이탈 원인을 인식하는 데 둔감했다. 낯선 동물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것은 친근함의 표현이다. 부캉이와 늑구는 경쟁 스트레스와 혐오가 넘치는 세상에 위안을 줬다. 다만 그들이 주는 경고에 귀 막고, 환호작약(歡呼雀躍)한 '가벼움'이 씁쓸하다.
2026-10-02 05:00:00
점심때인데 그 식당에는 손님이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주인장이 기쁘게 맞았다. 오늘 첫 손님이란다. 친구는 말했다. "한두 명 더 불러올걸." 그는 허세를 부렸다. 달랑 두 명인데, 돼지국밥 '특' 두 그릇에 수육을 대(大)짜로 주문했다. 친구는 독특한 식객(食客)이다. '손님 없는 식당'을 찾아다닌다. 예약하거나 줄 서서 먹는 맛집에 열광하는 세태에서 비켜나 있다. 직장에서 혼자 점심을 먹을 때면 조용한 식당에 간다. 때론 동료들을 선동한다. "식당의 맛은 평준화됐다. 그러니 손님 대접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한산한 식당이 최고지." 얼렁뚱땅 같은데, 묘한 설득력이 있다. 맛으로 승부를 건다? 그건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다. 자본이 성패(成敗)를 가른다.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이다. 밑천이 부족한 식당들은 버티기 힘들다. 한 끼의 매출은 누군가의 하루를 살린다. 외로운 식당을 찾는 것은 응원이다. SNS에서 봤던 미담(美談)이 생각난다. 휴가 나온 군인이 식당에서 밥을 먹고 계산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미 누군가 음식값을 대신 내고 갔다. 메모 한 장 남겨두고. "나라를 지켜줘서 고맙습니다." 얼굴 새파란 청년의 인생관이 바뀔 수 있는 순간이다. 내게도 값진 청춘의 기억이 있다. 대학생 시절 학사주점(學士酒店)에서 홀 서빙을 했다. 근무 첫날, 뒷정리를 할 때였다. 주점 사장이 화장실 휴지통을 비우려던 나를 만류했다. "홀 서빙하러 왔지, 화장실 청소하려고 온 게 아니잖아." 화장실은 자신의 몫이라는 것이었다. 알바생 한 명 쓰는 가게의 사장이지만, 큰 나무 같았다. 부모님께 드리라며 가끔 음료수도 손에 들려줬다. 그는 어른과 고용주의 품격을 보여줬다. 그곳을 거쳐간 알바생들은 오랫동안 그와 인연을 이어갔다. 밥 한 끼 팔아주고, 밥값을 내주고,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거창한 일'은 아니다. 언론에 소개될 미담도 아니다. '사소한 선의(善意)'다. 그렇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작은 선의들이 공동체를 건강하게 유지한다. 어르신의 폐지 수레를 밀어주는 학생들, 아이들이 길을 건널 때까지 기다려주는 운전자, 택배 기사에게 물 한 병을 건네는 사람, 양심껏 진료하는 의사, 직업윤리를 지키려는 변호사, 사회적 약자에게 친절한 공무원 등은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들이다.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는 작은 선행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 "위대한 일은 없다. 다만 큰 사랑으로 하는 작은 일들이 있을 뿐이다."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義人) 10명이 없어서 멸망했다. 예수는 주린 자, 목마른 자, 나그네, 헐벗은 자, 병든 자, 옥에 갇힌 자, 곧 인간 존재의 가장 취약한 곳에 있는 이들을 돌본 사람을 '의인들'이라고 불렀다. 의인은 타인의 필요에 응답하고, 타자에게 곁을 내주는 사람이다. 큰 기둥만이 집을 지탱하는 것은 아니다. 작은 버팀목, 주춧돌도 집을 떠받친다. 인간 세상도 마찬가지다. 무명씨(無名氏)들의 작은 힘들이 모여 세상을 지킨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중략)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도종환의 시, '담쟁이') 담쟁이의 힘은 연대(連帶)에서 나온다. 여린 잎이지만 서로 의지하면 거대한 벽을 넘는다. 로마 제국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인간은 서로를 위해 태어났다"고 하지 않았나.
2026-09-29 05:00:00
매미가 물러가니 귀뚜라미가 왔다. 자지러지던 매미의 여름은 낭랑한 귀뚜라미의 가을로 이어진다. 봄은 여름에 밀려나고, 여름은 가을에 자리를 내준다. 가을은 겨울을 준비하고, 겨울은 봄을 잉태(孕胎)한다. 매미가 아무리 목청껏 울어도 시간을 붙잡을 수 없다. 귀뚜라미의 구슬픈 울음도 겨울을 막지 못한다. "귀뚜라미가 울 땐 24도래. 안단다, 지들도. 조금 있으면 겨울이 온다는 것을. 그래서 저렇게 간절히 구애 중이라는 거란다. 겨울을 혼자 나지 않으려고."(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염기정의 대사) 가을은 고독의 계절이다. 고독은 외로움과 다르다. 고독은 자발적이고 주도적인 상태다. 내면을 채우고 성찰하는 긍정적인 경험이다. 반면 외로움은 비자발적이고 수동적인 감정이다. 내가 원하는 인간관계가 충족되지 않아 발생하는 심리적 결핍이다. 신라의 문장가 최치원이 지은 '추야우중'(秋夜雨中)은 가을의 고독을 다룬 절창(絕唱)이다. 추풍유고음(秋風唯苦吟·가을바람에 쓸쓸히 읊어 보나니)/ 세로소지음(世路少知音·세상엔 나를 알아주는 사람 별로 없구나/ 창외삼경우(窓外三更雨·창밖엔 밤 깊도록 비가 오는데)/ 등전만리심(燈前萬里心·등불 앞에 마음은 만리 밖을 내닫네). 자연은 시작할 때와 물러날 때를 정확히 안다. 매미도, 귀뚜라미도, 풀꽃들도 그렇다. 모두가 시절인연(時節因緣)이다. 세상만사도 그러하다. 정치는 어떤가. 정치의 세계는 순리를 거스르는 일이 너무 많다. 물러나야 할 때 버티고, 내려놓아야 할 때 움켜쥔다. 자신의 죄는 '조작'이며, 상대의 무죄는 '봐주기'다.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면서도 자신만은 특별해야 한다. 국민의 삶은 아랑곳없고 정쟁과 세력 다툼이 반복된다. 민족 최대의 명절 한가위에도 그들은 독설을 내뿜었다. TV 보면서 밥 먹다가 숟가락 던질 뻔했다. 권력의 시간은 유한하다. 때가 되면 물러나야 한다. 이를 잊으면 권력은 오만해진다. 나라를 걱정하는 국민의 마음을 '추야우중'에 기대어 '추야우정'(秋夜憂政)으로 불러본다. "秋風獨苦吟 朝野少同心 窓外三更雨 燈前萬里心"(가을바람에 홀로 괴롭게 읊조리니/ 조정과 민심에 한마음이 드물구나/ 창밖엔 밤 깊도록 비가 오는데/ 등불 앞에는 온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 아득하구나).
2026-09-28 05:00:00
[이런일] 대구 첨단요양병원, ISO 45001 인증 획득
대구 첨단요양병원(병원장 김규종)이 국제표준 안전보건경영시스템인 ISO 45001:2018 인증을 획득했다. 글로벌 인증기관 IGC(Institute of Global Certification)를 통해 획득한 이번 인증은 의료 현장의 잠재적 위험 요소를 사전에 발굴·완화하고, 지속 가능한 안전보건 관리 프로세스를 갖춘 기관에 수여되는 국제 규격이다.이번 인증 범위는 ▷요양·재활 의료서비스 ▷혈액투석 ▷가정간호 서비스 제공 전반에 이른다. 유효기간은 2026년 9월 16일부터 향후 3년간이다.김규종 병원장은 "이번 ISO 45001 인증 획득은 요양·재활 환우분들이 안심하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공식 인정받은 성과"라며 "앞으로도 고도화된 리스크 관리와 철저한 감염·안전관리를 통해 무사고·안심 병원의 표준을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
2026-09-27 11:55:44
명절의 시작은 차례상 장보기다. 대형마트가 생기기 전만 해도 전통시장은 제수용품을 사려는 사람들로 대목을 봤다. 전을 부치고, 나물을 무친다. 송편을 빚고, 밤을 친다. 명절 당일 부엌은 전쟁터다. 대소가(大小家)를 다니며 차례를 지낸다. 차례가 끝나면 음복(飮福)을 하면서 덕담을 나눈다. 따끈따끈한 '명절 민심'이 형성되기도 한다. 과도한 차례상과 접객(接客)은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정작 가족이 오붓이 대화할 시간은 부족하다. 갈등의 요소들도 많다. 누가 음식을 장만하고, 누가 설거지를 할 것인가. 본가(시댁)에 먼저 갈 것인가, 처가(친정)에 먼저 갈 것인가. 이러다가 조상을 모시는 날에 산 사람끼리 서운해진다. 명절 풍습(風習)이 달라지고 있다. 차례 대신 가족 모임을 하는 집들이 늘고 있다. 외식을 하고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가기도 한다. 한국리서치가 지난 4~7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번 추석에 차례나 제사를 지내려는 사람은 30%로 나타났다. 이 응답은 2023년 같은 조사를 시작한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지난해 설 때 40%, 지난해 추석과 지난 설에 각각 35%였는데 꾸준히 줄고 있다. 미풍양속(美風良俗)이 사라지는 걸까. 그렇게 볼 일만은 아니다. 시대가 바뀌면 풍습도 달라져야 한다. 조상님과 돌아가신 부모님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오랜 시간 허리 굽혀 전을 부치는 일일까. 고물가에 체면치레하느라 자손들이 등골 빠지는 일일까. 그렇지 않을 게다. "너희끼리 사이좋게 잘 살아라." 뭐 이런 소망 아닐까. 성균관도 차례상에 많은 음식을 올리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홍동백서'(紅東白西) '조율이시'(棗栗梨柹)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고 했다. 차례 음식을 돈 주고 사면 어떠랴. 부모님이 생전에 좋아하셨던 곰탕이나 김치찌개면 어떤가. 조상님이 정말 서운해하실 것은 자식들이 명절에도 만나지 않는 것일 테다. '차례 없는 명절'보다 '사람 없는 명절'이 더 두렵고 서글프다. '명절 소멸(消滅)'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많다. 차례가 없어지면 가족이 모이지 않고, 명절은 '긴 연휴'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이상국 시인은 "아름다운 풍속은 쉽게 없어지는 게 아니다"고 했다. kimky@imaeil.com
2026-09-21 05:00:00
[기고-박추환] 제2의 새마을운동, 새마을재단에서 시작된다
대한민국의 새마을운동은 1970년대 농촌의 생활환경 개선과 소득증대를 넘어 근면·자조·협동의 정신을 바탕으로 주민 스스로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고 국가발전을 이끌어낸 대표적인 지역개발운동이다. 주민의 자발적 참여와 공동체의 협력이 만들어낸 이러한 경험은 오늘날에도 개발도상국의 빈곤 퇴치와 지역개발을 위한 국제협력 모델로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는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 인구감소와 지방소멸, 청년 유출, 기후변화, 디지털 전환 등 새로운 사회·경제적 과제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따라서 제2의 새마을운동은 과거의 방식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새마을정신의 핵심 가치를 계승하면서도 시대 변화에 맞는 새로운 지역혁신 모델로 발전해야 한다. 그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할 기관이 바로 새마을재단이다. 새마을재단은 그동안 국내외에서 주민 역량강화, 새마을지도자 양성, 소득증대사업, 해외 시범마을 조성 및 국제교류 등을 추진하며 대한민국의 발전 경험을 세계와 공유해 왔다. 특히 최근 베트남을 비롯한 여러 국가와의 협력은 새마을운동이 단순한 농촌개발사업을 넘어 경제협력과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국제협력 모델로 발전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에는 베트남 주석과의 만남의 날 행사를 통해 양국 간 새마을 협력의 성과와 미래 방향을 공유했다. 올해는 베트남에서 '2026 글로벌새마을경제협력 컨퍼런스'를 개최해 새마을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공적 개발 원조)의 성과를 농촌개발과 경제협력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앞으로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대학, 기업, 비정부기구, 주민조직이 함께 참여하는 협력체계를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제2의 새마을운동은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을 농업·교육·보건·행정 등에 접목하는 '스마트 새마을', 지역 청년의 창업과 정착을 지원하는 '청년 새마을', 탄소중립과 환경보전을 실천하는 '그린 새마을', 지역자원과 관광·가공·유통을 연계하는 '소득형 새마을', 그리고 해외지역과 발전 경험을 공유하는 '글로벌 새마을'로 구체화될 수 있다. 특히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지 않고 일자리와 주거, 교육과 문화생활을 함께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지방소멸에 대응하기 위한 핵심 과제가 되어야 한다. 사업의 평가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시설을 얼마나 설치했는지, 예산을 얼마나 집행했는지가 아니라 주민소득이 얼마나 증가했는지, 청년이 얼마나 지역에 정착했는지, 주민참여와 공동체가 얼마나 회복됐는지 등 주민의 실질적인 삶의 변화를 중심으로 성과를 평가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재단이 축적해 온 인구, 소득, 농업생산, 교육, 주민참여 및 사업성과 등의 자료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인공지능과 데이터 분석을 활용하여 지역별 특성에 적합한 사업과 예산을 설계하는 데이터 기반 운영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재단이 추진하는 '3세대 새마을운동 실천모델 공모전' 역시 이러한 변화의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주민과 청년, 대학, 기업, 전문가 등이 지역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우수한 모델을 시범사업으로 연결해 효과를 검증한 뒤 국내외로 확산한다면 새마을운동은 다시 살아 있는 지역혁신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다. 제2의 새마을운동은 과거로 돌아가는 운동이 아니라, 과거의 성공 경험 위에 새로운 시대의 가치를 더하는 운동이어야 한다. 새마을정신에 디지털 기술과 청년의 창의성, 환경과 상생,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결합한다면 지방소멸과 사회 양극화, 기후위기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대한민국형 지역혁신 모델로 발전할 수 있다. 새마을재단이 그동안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변화와 혁신을 선도할 때, 새마을운동은 다시 한번 대한민국과 세계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끄는 중요한 원동력이 될 것이다. 박추환 영남대 경제금융학부 교수·새마을재단 기금심의위원
2026-09-20 13:16:10
[동정] 대구선명학교 박혜림 학생, 전국발달장애인 자기권리주장대회서 수상
박혜림 대구선명학교 고등부 2학년 학생이 9월 16일 서울시립발달장애인복지관에서 열린 '2026 제25회 전국발달장애인 자기권리주장대회'에서 '자기표현상'을 수상했다. 한국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가 주최한 이번 대회는 발달장애인이 자신의 생각과 꿈을 당당하게 표현하고, 자기결정과 사회참여의 역량을 키우는 자리였다. 박혜림 학생은 '손끝에서 피어나는 네일샵 원장님'이란 주제로 네일샵 원장이 되고 싶은 자신의 꿈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발표했다. 문종희 대구선명학교 교장은 "학생이 자신의 꿈을 자신의 목소리로 당당하게 표현한 것이 가장 의미 있는 성장이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꿈을 키워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하겠다"고 했다.
2026-09-20 13:15:13
사다리는 근사한 물건이다. 어릴 때 사다리가 있는 집이 부러웠다. 사다리는 담장 너머를 보여줬다. 사다리를 타면 어른이 된 기분이 들었다. 어른들은 경고(警告)했다. 사다리는 아이들에게 무서운 물건이라고. 그 시절, 사다리에서 떨어져 다친 아이들도 많았다. 그래도 아이들은 사다리를 좋아했다. 사다리는 상징(象徵)이다. 성경의 '야곱의 사다리'가 그렇다.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해 도망치던 길에서 꿈을 꾼다. 땅에서 하늘까지 이어진 층계가 있고, 천사들이 그 위를 오르내린다. 그 사다리는 땅과 하늘을 잇는다. 사다리는 예술 창작의 모티프(motif)였다. 영국의 화가이자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야곱의 사다리'(1805년)를 그렸다. 비디오아트 작가 백남준은 레이저와 빛으로 사다리를 만들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사다리는 '계층 이동'이나 '신분 상승'을 상징한다. 한때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유행했다. 가난하게 태어나도, 노력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압축(壓縮) 성장 시대에선 '계층 이동 사다리'가 잘 작동됐다. 이제 그 사다리가 무너지고 있다. 부모의 경제력과 태어난 지역에 따라 교육과 취업의 기회가 좌우된다. 지방의 청년이 수도권 대학에 진학하고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는 등록금만 필요한 게 아니다. 비싼 월세, 생활비, 교통비, 취업 준비 자금을 감당해야 한다. 최근 한 기업이 실시한 '2026 수저계급론 관련 인식 조사'에서 응답자의 78.5%가 '집안의 경제적 수준이 여유로우면 더 많은 기회를 누릴 수 있다'고 답했다. '사람마다 출발선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데 동의한 응답도 80.7%였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나 경제적 지원이 부족하면 자립하기 어렵다는 응답 역시 50.9%였다. 사다리는 천차만별(千差萬別)이다. 각목으로 대충 만든 사다리, 초경량 합금 사다리, 자동 사다리, 고가(高架) 사다리 등 재질과 성능이 다르다. 계층 이동 사다리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 첫 칸도 오르기 어렵다. 누구는 성큼성큼 올라가 쭉쭉 뻗어나간다. 무너지는 사다리도 많다. 주거 사다리, 성장 사다리, 금융 사다리, 교육 사다리…. 청년과 서민들이 무너진 사다리에 깔려 신음한다.
2026-09-17 05:00:00
[기고] 무상교육, '국립대'가 아니라 '학생'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
정부가 지방대학을 살리고 청년의 지역 정착을 유도하기 위해 등록금 부담을 낮추려는 정책 방향 자체는 충분한 경제적 의미가 있다. 문제는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기준이 왜 '학생'이 아니라 '대학의 설립 주체'여야 하는가이다. 2027년 정부 예산안은 지방국립대 신입생 약 6만 명에게 4년간 등록금 전액을 지원하는 한편, 지방사립대에 대해서는 지역인재장학금 지원 대상을 확대하는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지방 사립대 교수단체는 이러한 지원구조가 지방 국립대와 사립대 학생 사이에 큰 지원 격차를 만들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할 문제는 형평성이다. 정부가 등록금을 지원하는 이유가 청년의 교육비 부담을 줄이고 지역 인재의 이탈을 막기 위한 것이라면, 정책의 대상은 대학이 아니라 학생이어야 한다. 같은 지역에서 생활하고 비슷한 소득수준과 교육비 부담을 가진 두 학생이 단지 한 사람은 국립대에, 다른 사람은 사립대에 진학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로부터 받는 지원에 큰 차이가 발생한다면 그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경제적 근거가 충분한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특히 소득이 높은 국립대 학생에게 등록금 전액을 지원하면서 소득이 낮은 사립대 학생은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이는 재정지원의 수직적 형평성 측면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두 번째 문제는 가격정책이 학생의 대학 선택을 왜곡할 가능성이다. 대학 교육에는 교육의 질, 전공 적합성, 취업 가능성, 통학거리, 산학협력 등 다양한 선택요인이 존재한다. 그런데 특정 대학군의 등록금만 사실상 '0원'으로 만들면 학생은 이러한 교육적 요인뿐 아니라 정부가 만들어낸 큰 가격 차이에 영향을 받아 대학을 선택하게 된다. 경제학적으로 이는 정부 정책이 상대가격을 인위적으로 변화시켜 수요를 특정 대학으로 이동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그 결과 경쟁력 있는 지방 사립대학조차 학생 모집에서 불리해지고, 학생의 선택 역시 자신의 적성과 전공보다 등록금 차이에 더 크게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세 번째는 지방대학 생태계 전체에 미치는 외부효과이다. 지방 사립대학은 단순히 하나의 사적 교육기관이 아니다. 학생을 지역에 유입시키고, 지역기업에 인력을 공급하며, 소비와 고용을 창출하고, 산학협력과 연구개발을 수행한다. 이러한 기능은 국립대와 사립대 모두가 생산하는 지역의 사회적 편익이다. 지방 사립대학이 급격히 위축되면 그 피해가 해당 대학에만 머무르지 않고 청년유출, 상권 위축, 지역기업의 인력난 등으로 확산될 수 있다. 공동성명서 역시 지방 사립대학의 약화가 청년의 수도권 유출과 지역 산업의 인력난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지역균형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정책이라면 국립대만을 별도로 보는 것보다 지역 고등교육 생태계 전체가 만들어내는 편익을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면 개선방향은 '국립대 무상교육'에서 '지방대 학생 학비부담 경감'으로 정책의 기준을 전환하는 것이어야 한다.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국립·사립이라는 설립유형과 관계없이 모든 지방대 학생에게 일정 수준의 기본 장학금을 보장하고, 그 위에 소득수준과 경제적 어려움에 따라 지원을 추가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일정 금액의 기본지원은 모든 지방대 학생에게 적용하고, 저소득층에는 등록금 전액을 지원하는 식으로 설계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동일한 경제적 여건에 있는 학생이 대학의 설립형태 때문에 다른 대우를 받는 문제를 줄일 수 있다. 여기에 지역정책의 목적을 반영한 성과연계형 지원을 결합할 필요가 있다. 지역 전략산업 전공, 지역기업 취업, 산학협력, 지역정착 등 국가가 정책적으로 장려할 필요가 있는 활동에는 국·사립 구분 없이 추가 장학금과 재정지원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그러면 정부 재정은 단순히 특정 대학의 학생 수를 늘리는 데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인재 양성과 정착이라는 정책성과를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배분될 수 있다. 결국 쟁점은 국립대를 지원해야 하느냐 사립대를 지원해야 하느냐가 아니다. 국가가 한정된 교육재정을 어떤 기준으로 배분하는 것이 가장 공정하고 효율적인가의 문제다. 지방소멸을 막기 위한 무상교육 정책이라면 기준은 대학의 소유형태가 아니라 학생의 경제적 필요, 교육기회의 형평성, 그리고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가 되어야 한다. '국립대라서 무상'이라는 단순한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에서 공부하는 학생이기 때문에 지원받고, 더 필요한 학생이 더 많이 지원받는 제도'로 전환할 때 지방대학 지원정책은 형평성과 효율성이라는 두 목표에 보다 가까워질 수 있다. 박추환 영남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2026-09-16 12:18:51
에베레스트 해발 8,000m 부근에 '데스 존' (death zone)이 있다. 산소가 희박해 인간의 생존이 어려운 곳이다. 그곳에는 등반가들의 이정표가 있다. 오랫동안 얼음 속에 묻혀 있는 산악인의 시신들이다. 인간이 자연을 정복(征服)하려다 남긴 비극의 흔적이다. 이제 얼음이 녹으면서 시신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몇몇 시신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히말라야의 변화는 더 무섭다. 겨우내 쌓여야 할 눈이 예년보다 훨씬 빨리 녹고 있다. 지난겨울 힌두쿠시-히말라야 지역의 '적설(積雪) 지속도'는 관측 이래 가장 낮았다고 한다. 눈이 일찍 녹으면 봄과 여름에 천천히 공급돼야 할 물이 한꺼번에 하류로 흘러 홍수 위험을 키운다. 빙하(氷河)가 녹으면 더 큰 문제가 생긴다. 녹은 물이 암석과 흙을 쓸어내려 빙하호를 만든다. 그 빙하호의 약한 제방이 무너지면, 그야말로 거대한 물폭탄이 마을을 덮치게 된다. 최근 네팔에서 발생한 대참사도 이런 빙하호 붕괴와 연관된 것으로 지목됐다. '자연의 복수'는 꼬리를 문다. 중국 연구진은 남극반도의 빙하가 녹으면서 얼음 속에 갇혔던 수은이 다시 바다로 흘러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인간은 '자연을 정복한다'고 떠들어왔다. 산을 깎아 길을 냈다. 바다를 메워 도시를 만들었다. 더 높이 더 빨리 더 많이를 외쳤다. 정상에 깃발을 꽂으며 자연을 이겼다고 기뻐했다. 오만방자(傲慢放恣)하다. 자연은 모든 것을 기억한다. 자연은 인간의 지나친 욕망의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빙하 속 시신이 드러나고, 얼음에 갇혔던 수은이 흘러나오며, 산에 쌓였던 물이 홍수를 이뤄 마을을 덮친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미국의 시인이자 사상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월든'에서 "우리는 자연을 인간에게 종속된 것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인간 욕망의 끝은 어딘가. 자연의 인내는 언제까지인가. 레이철 카슨은 '침묵의 봄'에서 "자연은 결코 한 부분만 건드리고 끝나는 법이 없다"고 했다. 자연을 장난감처럼 다뤄서는 안 된다는 경고다. 인간은 자연의 한 부분만 골라서 바꿀 수 없다. 하나를 건드리면 다른 곳에서 반드시 반응이 일어난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 불교의 연기론(緣起論)과 같은 맥락이다.
2026-09-07 05:00:00
두 달여 전, 가슴 뭉클한 경험을 했다. 시화(詩畫) 작품 심사였다. 의뢰가 왔을 때, 문외한(門外漢)이 타인의 문예(文藝)를 평가하는 게 부담스러워 거절하려고 했다. 그러나 담당자는 '문해(文解) 교육을 받은 어르신들의 작품'이니 편하게 심사하면 된다고 했다. 한글을 뒤늦게 익힌 사람들이 지은 시를 감상하는 것도 소중한 기회가 아닐까. 결국 심사에 참여했다. 또 다른 '칠곡 할매 시인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적중했다. 삐뚤빼뚤한 글씨에 투박한 표현과 소박한 문장. 짧은 어휘력으로 저렇게 어머어마한 얘기를 녹여내다니. 거기엔 기성 시인이 흉내 내기 어려운 녹진한 삶이 담겨 있었다. 딸로 태어나 겪어야 했던 설움, 파란만장을 담은 인생 서사(敍事), 글자를 몰라서 당했던 창피, 버스 안내양과 여공(女工) 시절의 고생담, 풋풋한 첫사랑의 추억, 부모님에 대한 애증(愛憎)…. 그렇게 그들의 삶이 내게로 왔다. 글이 익숙하지 않고 배움이 짧은 어르신들이 어떻게 이런 시를 지을 수 있을까. 칠팔십 버텨온 삶이 시를 건져낸 것이다. 시심(詩心)은 '가방끈'이 아니라 '가슴속'에서 나온다는 게 빈말이 아니었다. 칠곡 할매 시인 박금분 씨의 '시'를 봐도 그렇다. "가마이 보니까/ 시가 참 만타/ 여기도 시/ 저기도 시/ 시가 천지삐까리다." 지난 6월 서울에서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 공연(公演)이 있었다. 칠곡 할매 시인들의 이야기를 각색한 것이다. "우리 손주 책을 가져다/ 읽어 달라고 하니 무서워 죽겠다"는 가사처럼 글을 몰라 서러웠던 기억과 "우리 어매 딸 셋 낳아/ 분하다고 지은 내 이름"처럼 '여성'이라서 학교를 못 간 사연들이 펼쳐진다. 이 작품은 할머니들의 우정과 유쾌한 경상도 사투리로 관객들의 박수를 받았다. 9월 8일은 '국제 문해의 날'이다. 1966년 유네스코(UNESCO)가 문맹 퇴치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 제정한 기념일이다. 이날에는 두 개의 국제 문맹 퇴치 공로상 시상이 있다. '세종대왕 문해상'과 '공자 문해상'이다. 세종대왕 문해상은 한국 정부의 제안과 지원으로 1989년 제정됐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정신을 세계에 알리고, 문맹 퇴치에 기여한 단체와 개인을 장려하자는 취지다.
2026-09-02 05:00:00
그리스 이타카의 군주(君主) 오디세우스가 20년 만에 고향에 돌아갔다.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영웅이었지만 귀향길은 순탄치 않았다. 바다를 떠돌았다. 동료를 잃었다. 수많은 죽음과 고통을 겪었다. 영화 '오디세이'는 흥미롭다. 신화 속 영웅의 '귀환'(歸還)을 단순한 모험담으로 그리지 않았다. 전쟁에서 이긴 사람은 과연 어떤 얼굴로 집에 돌아가야 하는가? 영화는 이런 궁극의 질문을 던졌을지 모른다. 대한민국은 정치적 내전(內戰) 상태다. 여야가 맞붙고, 입법부와 사법부가 기싸움을 벌인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난 정권을 도륙한다. 내부 싸움도 죽기 살기다.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국민의힘의 계파 갈등에서 우리는 그 민낯을 목격했다. 예로부터 골육상쟁(骨肉相爭)이 더 잔인하다고 했던가. 어디를 가려고, 무엇을 위해 그렇게 싸우나? 참 열심이다. 오디세우스에게는 분명한 목적지가 있었다. 고향 이타카였다. 길을 잃고 폭풍을 만나도, 세이렌이 유혹을 해도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 정치에는 '이타카'가 보이지 않는다. 오직 정권을 잡는 것이, 정적(政敵) 제거가 목적이다. 정치적 견해가 다르면 그냥 적이다. 정책 토론은 없고 인신 공격만 난무하다. '국익'과 '민생'을 내세우나, 생각과 행동은 지지층만을 향한다. 정치는 전쟁이 아니다. 승자가 패자를 굴복시키는 게임도 아니다. 이긴 편이든, 진 편이든 모두를 같은 배에 태워야 하는 게 정치다. 오디세우스가 두려워했던 상대는 괴물이 아니었다. 괴물보다 길을 잃는 게 더 무서웠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에는 "죽기 마련인 인간들에게, 떠돌아다니는 것보다 더 고약한 게 없다"란 말이 나온다. 우리 사회는 너무 오래 떠돌고 있다. 저출생, 지방 소멸, 청년 실업, 노인 빈곤, 주거 불안, 의료·돌봄 대란처럼 나라의 미래가 걸린 현안들이 정처 없이 떠다니기만 한다. 정치권은 애초에 이런 대항해(大航海)에 관심이 없었던 것인가. 국민은 요동치는 배 안에서 고통받는데, 정치는 서로 키를 잡겠다고 드잡이한다. 오디세우스에게 승전(勝戰)은 영광이 아니었다. 자신 때문에 죽은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리며 고향으로 돌아간다. 영웅에게 필요한 것은 전리품만이 아니다. 승리의 책임과 희생자에 대한 애도도 영웅의 몫이다. 중국 철학자 노자도 이렇게 말했다. '살인지중(殺人之衆, 많은 사람을 죽였으면) 이애비읍지(以哀悲泣之, 슬퍼하고 비통해하고 눈물을 흘려야 한다) 전승이상례처지(戰勝以喪禮處之, 전쟁에서 승리하더라도 마땅히 장례의 예를 갖춰라).' 정치도 마찬가지다. 승자독식(勝者獨食)이 아니라 공존공영(共存共榮)이 필요하다. 집권당은 정치적 책임을 무겁게 여겨야 한다. 잘못된 개혁은 나라를 망친다. 정책의 실패로 일자리를 잃거나 궁지에 몰린 사람들도 생긴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책임을 서로 떠넘긴다. 잘된 일은 자기 공(功)이고, 잘못된 일은 상대의 탓이다. 오디세우스는 귀향길에서 부닥친 모든 불행을 신(神)의 탓,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았다. 정치는 평범한 시민 곁에 있어야 한다. 장사꾼의 한숨, 청년의 취업 고민,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불안, 노인의 병원비 걱정을 마주해야 한다. 그래야 정치가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오디세우스는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집에 돌아왔다. 그 순간, 그는 영웅이 아니라 남편이고 아버지며 한 명의 인간이 된다. 우리 정치도 그렇게 '사람의 얼굴'로 돌아와야 한다.
2026-09-01 05:00:00
"식당에서 음식을 받아 들고/ 나는 바람을 가르는 화살이 된다./ 고층 빌딩의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시간이 없어 나는 계단을 솟구쳐 오르는 열정이 된다./ 고객에게 욕을 들었을 때는/ 머리를 조아리는 사과가 된다./ 이 도시를 가로지르며/ 나는 오직 시간하고만 경쟁한다./ 나는 줄곧 서두르는 사람./ 하지만 나 역시 누군가의 아비이고, 누군가의 남편이며, 누군가의 자식이다./ 내가 바쁘게 달리는 까닭은/ 나를 기다리는/ 누군가의 삶을 위해서다." 최근 중국 최고 권위의 '루쉰문학상'(魯迅文學賞)을 받은 왕지빙(王計兵)의 시, '서두르는 사람'의 전문이다. 관념과 추상이 없다. 화려한 꾸밈도 없다. 우리처럼 '누군가의 아비, 누군가의 남편'이란 상투적인 표현을 썼다. 이렇게 평범한 작품을 쓴 시인이 루쉰문학상을 거머쥐었다. 중국의 문학계도 놀랐다고 한다. 왕지빙의 별명은 '음식 배달하는 시인'(외매시인·外賣詩人)이다. 농촌 출신에 중졸 학력인 그는 건설 노동, 폐지 수집 등을 거쳐 지금은 식당 운영과 배달 일을 겸하고 있다. 왕지빙은 구겨진 영수증에 뭔가를 끄적인다. 손이 바쁘면 담뱃갑에, 이마저 여의치 않으면 휴대전화에 음성으로 문장을 남긴다. 이렇게 쌓인 시들이 루쉰문학상이 됐다. 왕지빙은 "예순 살까지 배달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이젠 전업(專業) 작가로 살 만도 한데, 오토바이에서 내리지 않겠단다. 시는 책상머리가 아니라, 거리에서 태어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일까. 하기야 시인 김수영은 시작(詩作)을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고 했지 않았나. 루쉰문학상을 받은 왕지빙의 시집 제목은 '저공비행'(低空飛行)이다. 사람들은 성공을 높이 나는 독수리에 비유한다. 그러나 그는 낮게 나는 제비를 닮았다. 하늘은 독수리만의 것이 아니라 제비의 것이기도 하다. 문학은 낮은 곳에서, 길바닥에서, 그늘진 곳에서 꽃피울 때가 많다. 공장 노동자 박노해의 손에서, 현대중공업 노동자 백무산의 작업복에서, 험한 노동 현장을 누비고 다닌 송경동의 몸에서 시가 태어났다. 민중가요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안치환이 박영근의 시를 개작해 작사·작곡)의 원작(原作) 시인은 노동자의 삶, 슬픔, 사랑을 서정적으로 그렸다. 피와 땀으로 쓴 시가 관념으로 빚은 것보다 팔팔하다.
2026-08-25 05:00:00
약이 귀하던 시절, '안티푸라민'은 만병통치약(萬病通治藥)이었다. 유한양행이 1933년 개발한 약이다. 이 약은 삐거나 멍든 곳에 바르는 진통소염제다. 안티푸라민이란 이름은 약의 특성을 그대로 설명한다. '반대'란 뜻의 안티(anti)에 '불태우다, 염증을 일으키다'는 뜻의 인플레임(inflame)을 합쳐 발음하기 좋게 바꾼 것이다. 옛 어른들은 손이 터도, 벌레에 물려도 이 약을 사용했다. 심지어 자식들이 배가 아프다고 하면 배에, 감기가 걸렸다면 코 밑에 발라줬다는 이야기도 있다. 집집마다 안티푸라민 특유의 화한 냄새가 진동했던 시절이었다. 소화제 '활명수'는 국내 최초 양약(洋藥)이다. 동화약방(동화약품 전신) 창업자 민강 선생의 부친인 궁중 선전관(宣傳官) 민병호가 개발했다. 궁중에서 쓰던 생약 처방에 서양 의학을 접목해 만든 약이다. 활명수와 안티푸라민은 약을 만들어 나라에 보답하겠다는 '제약보국'(製藥報國)의 일념에서 나온 결과라고 한다. 다분히 '국뽕' 마케팅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두 기업의 역사와 사회 공헌, 창업주의 면면을 살펴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활명수에는 독립운동가 민강의 삶이 녹아 있다. 민강은 활명수 판매금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臨時政府)에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다. 3·1운동 이후에는 동화약방 사옥을 독립운동 연락 거점으로 활용했다. 국내와 임시정부를 잇는 비밀 행정기관인 서울연통부 활동에도 관여했다. '생명을 살리는 물'(활명수)이 '나라를 구하는 물'이 된 셈이다. 유한양행의 창업자 유일한 박사의 삶은 더욱 극적이다. 미국에서 사업가로 성공했지만 조국의 열악한 의료 현실을 보고 귀국해 회사를 세웠다. 약을 만들어 국민의 건강을 지키고 민족자본을 키우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면서 독립운동에도 헌신(獻身)했다. 광복을 앞두고는 미국 전략정보처(OSS)의 '냅코작전'(NAPKO Project·공작원들을 한반도에 침투시켜 미일전쟁의 승리를 도모하고자 했던 계획)에 특수 요원으로 선발돼 훈련까지 받았다. 두 기업 창업자들의 애국애족(愛國愛族)은 명확했다.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란 질문에 그들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로 답했다. 광복 81년, 친일 행적과 친일 재산 환수는 여전히 논란이다.
2026-08-18 05:00:00
"고요함이여/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의 울음." 일본의 시성(詩聖) 마쓰오 바쇼가 지은 하이쿠(俳句)다. 단단한 바위에 스며드는 소리라니. 짧은 글 속에 생명의 울림이 깊다. '살인 더위' '극한 폭염'. 더위가 극성을 부린다. 매미 소리는 청각적 여름 풍경이다. 그 청량한 소리는 혹서(酷暑)를 잠시 잊게 한다. 자연의 소리를 언어로 표현하는 게 가당치 않지만, 글로 옮겨본다. "맴맴맴맴 매~~"(참매미), "찌르르르~~"(말매미), "쓰르름쓰르름~~"(쓰름매미). 도심에선 참매미, 쓰름매미 울음은 들리지 않고, 사이렌 소리 같은 말매미 울음만 귀청을 때린다. 현기영 작가의 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에 등장하는 문장은 퍽 인상적이다. "소나기처럼 귀청 따갑게 왁자하니 쏟아지던 매미 울음소리." 여름을 농축(濃縮)한 표현이다. 매미는 땅속에서 유충으로 3~7년 동안 살다가 땅 위로 올라와 우화(羽化)한다. 성충이 된 매미는 2~4주 살다가 짝짓기해 알을 낳고 죽는다. 이런 매미의 생애는 강인한 삶과 존재의 덧없음을 상징한다. 매미 소리는 문학과 영화에서 고독과 허무를 암시하는 메타포(metaphor)로 자주 활용된다. 매미는 청량(淸亮)한 소리만큼 청량(淸良)한 본성을 지녔다. 매미 얘기를 하면서, 오덕(五德)과 익선관(翼善冠)을 빼놓을 수 없겠다. 조선시대 왕과 관리가 쓰는 관을 익선관이라고 했다. 관 뒤쪽을 매미의 날개 모양으로 꾸민 데서 유래된 명칭이다. 진나라 시인 육우(陸羽)가 말한 매미의 오덕을 익선관에 형상화한 것이다. 오덕은 이렇다. 첫째, 매미의 곧은 입은 늘어진 선비의 갓끈과 닮았다. 고로 매미는 학문(文)을 갖췄다. 둘째, 매미는 이슬을 먹고 사니 맑음(淸)이 있다. 셋째, 사람이 가꾼 곡식을 먹지 않으니 염치(廉)가 있다. 넷째, 집이 없으니 검소(儉)하다. 다섯째, 겨울이 되면 죽으니 신의(信)가 있다. 익선관은 매미의 오덕을 염두에 두며 선정(善政)을 펼치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익선관은 오늘의 정치인들에게도 유용하겠다. 오덕 가운데 하나라도 실천할 수 있도록. 대통령과 국무위원, 국회의원들이 서로의 익선관을 보면서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 모습, 생각만 해도 흐뭇하다. 오늘따라 매미의 떼창이 우렁차다. kimky@imaeil.com
2026-08-11 05:00:00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告知書)에서 아는 단어는 '합계 금액'. '장기수선충당금'(장충금)이란 뭘까? "겨우 몇 만원"이란 방심 속에서 돈은 차곡차곡 쌓인다. 178억원의 장충금을 노리고 조폭 두목 출신이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된다. 방영 중인 드라마 '아파트' 얘기다. 드라마 '아파트'는 흥미로운 소동극(騷動劇)이다. 장충금을 둘러싼 비리와 관리 권력의 갈등, 평범한 주민들이 부조리에 맞서는 모습은 코믹하다. 극적(劇的) 과장이 있지만, '현실의 모방'이기에 뒷맛은 씁쓸하다. '아파트' 극본을 쓴 김윤영 작가는 언론 인터뷰에서 "내 집과 이웃에게 관심을 가져보게 만드는 작품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드라마가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공동주택은 주민 모두의 관심으로 유지된다는 평범한 사실이다. '아파트' 첫 회가 방영된 지 10여 일 뒤, 현실 아파트에서 비극이 벌어졌다. 경북 경산시의 한 아파트에서 8명의 사상자(死傷者)를 낸 방화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관리 운영을 둘러싼 오랜 갈등과 누적된 감정이 끔찍한 결과를 초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주민이 요구한 지자체의 행정감사에서 관리비 공개 부실과 계약 절차 미흡 등의 문제가 확인됐다. 사소해 보였던 불신이 쌓여, 결국 아파트 공동체가 무너진 것이다. 이런 갈등은 특정 아파트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관리업체가 퇴직충당금이나 4대 보험료 등을 선지급받고도 남은 돈을 제대로 돌려주지 않거나, 각종 비용을 부풀려 관리비를 집행한 사례가 많다. 입찰 공정성과 업체 선정, 공사비 적정성을 놓고 법정 다툼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복마전(伏魔殿)이 따로 없다. 허술한 제도가 문제다. 장충금 집행 기준은 단지마다 다르다. 관리비가 어떻게 쓰였는지 주민이 쉽게 확인하기 어렵다. 잘못을 바로잡으려면 소송이란 지난(至難)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아파트 공동체의 일에 관심을 쏟는 주민이 많다면, 비리(非理)가 설 자리는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대단지 아파트에선 입주자대표회의 회장과 동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이 치열하다. 반면 작은 단지는 회장과 동대표를 할 사람이 없어 매번 어려움을 겪는다. 출근길, 아파트 게시판에 붙은 동대표 후보 등록 재공고가 마음에 걸린다.
2026-08-05 05:00:00
집안에서 박사(博士)가 나오면 잔치를 했던 시절이 있었다. 박사 학위 취득을 사법시험, 행정고시 합격과 같은 반열에 올리기도 했다. 특히 미국, 영국, 일본 등 이른바 '선진국 박사'는 대우가 각별했다. 소 팔고, 논 팔아 자식을 대학에 보내는 것도 버거웠는데, 박사라니! 서민들은 꿈도 꾸지 못할 대업(大業)이다. 1980년대, 집안 형님이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아 금의환향(錦衣還鄕)했다. 동네 잔치, 집안 잔치가 벌어졌다. 집안 아재들도 당신 자식이 박사가 된 듯 어깨를 들썩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학자에 대한 선망(羨望)이 크다. 배우지 못한 설움 탓일까? 선비를 추앙하는 유교 문화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박사는 권위의 상징이다. 박(博)은 넓다, 깊다, 많다, 크다는 뜻을 갖는다. 그래서 학제(學制)에 밝지 않은 사람들은 박사를 '모든 걸 다 아는 사람'으로 여기기도 한다. 박사는 '연애 박사' '컴퓨터 박사'처럼 어떤 일에 정통하거나 숙달된 사람을 비유하기도 한다. 동네 병원에 가면 '의학박사' 명패가 원장 책상에 보란 듯이 자리 잡고 있다. '의학박사라면, 병을 더 잘 고칠 것'이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 아들이 아버지 제사를 지낼 때 지방(紙榜)에 쓰는 일반적인 문구다. 여기서 '학생'은 '관직이 없는 선비'를 일컫는 예칭(譽稱)이다. 선비와 무관한 삶을 살았더라도 관례처럼 '학생'이라고 썼다. 학생 대신 처사(處士)란 용어를 쓰는 집안도 있다. 그래서 장관을 했으면 '현고장관부군신위', 박사였으면 '현고박사부군신위'라고 표현한다. 그랬던 박사가 푸대접을 받고 있다. 물론 박사가 과거보다 흔해진 이유가 있기도 하다. 국가통계포털(KOSIS)의 '2025년 국내 신규 박사 학위 취득자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신규 박사의 무직자 비율은 33.3%였다. 특히 30세 미만 청년 박사의 절반 이상은 무직 상태다. 박사 학위를 받고도 시간강사와 단기 계약직을 전전한다. 구직을 포기한 경우도 많다. 일할 곳이 없어서다. 박사란 '가방줄'이 취업에 되레 장애가 되기도 한다. 대학은 학령인구(學齡人口) 감소로 전임교원 채용을 줄이고 있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과 공공 연구기관의 취업문은 좁다. 특히 인문·사회 분야의 위기는 심각하다. 국가 연구개발 예산에서 인문·사회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낮다.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박사후연구원(博士後硏究員) 제도나 전문 연구기관도 부족하다. 이 때문에 대다수 박사들은 강의 몇 시간으로 겨우 생계를 잇거나 아예 전공과 무관한 생업에 종사한다. 인공지능(AI) 시대엔 언어와 역사, 문화, 국제 정세를 이해하는 인문·사회 분야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가 주권 AI 개발에도 한국어 데이터와 언어학 연구가 필수다. 인문학을 비용으로만 보는 시각은 근시안(近視眼)이다. 인문학 홀대는 궁극적으로 국가 경쟁력 약화를 초래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박사 인력을 국가 미래를 위한 전략 자산으로 여겨야 한다. 연구개발 투자 확대와 함께 지역에도 공공 연구기관과 정책 연구 기능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대학·지자체·산업계를 연계한 '지역 정주형(定住型) 연구 생태계'도 구축해야 한다. 박사는 학문에 매진(邁進)한 끝에 얻는 최고의 전문성이다. 개인은 물론 국가가 막대한 교육·연구비를 투입해 길러낸 핵심 인적 자원이다. 박사들이 쉬거나 단순 업무에 종사하는 것은 나라의 손실이다. 박사 3명 중 1명이 백수라니, 오호통재(嗚呼痛哉)라!
2026-08-04 05:00:00
모처럼 학창 시절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였다. 부모님의 안부를 묻고 자식과 주식 얘기를 거쳐 '퇴직 이후의 삶'이 서사(敍事)의 대미를 장식했다. 생활을 뻔히 아는 처지라 대화는 솔직담백했다. 공통점은 '그냥 쉬고 싶다'였다. 한 친구는 캠핑카를 사서 전국을 싸돌아다니겠다는 포부를 늘어놨다. 여행지에서 허드렛일로 돈을 벌 수도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나는 자연인이다'를 즐겨 보는 친구는 대구 외곽에서 전원생활을 할 생각이라고 했다. 또 다른 한 명은 쉼터와 서재(書齋) 삼아 책방을 운영하겠다고 했다. 낭만이 물결치는 생각들이다. 다만 현실이 그 꿈을 허락할지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했다. 인생 후반부는 '자신을 만나는 시간'이라고 한다. 젊을 때 못 이룬 자아실현(自我實現)의 꿈이라 할까? 밥벌이에 내몰렸던 한 인간을 위한 선물이기도 하다. 영국의 철학자 토머스 힐 그린(Thomas Hill Green)은 "자아실현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했다. 젊은 날에는 먹고사는 일이 먼저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고, 부모님을 돌보는 '의무적인 삶'을 살았다. 가정과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에 맞춰 달렸다. 가끔 한눈팔다가도 이내 눈길을 돌렸다. 정년퇴직을 앞둔 사람들은 존재론적 질문을 마주한다. 나는 누구인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남은 시간은 무엇을 위해 쓸 것인가. 정신과 의사이자 분석심리학자인 카를 융(Carl Gustav Jung)은 "인생의 오후를 인생의 아침과 같은 프로그램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 노후는 경쟁과 성취를 중요시한 젊은 날과 달라져야 한다는 의미다. 나이가 들면 자신의 내면(內面)과 화해하고 진정한 자아를 찾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70세 이상 취업자가 200만 명을 넘었다. 60세 이상 취업자 수도 50대 취업자를 추월했다. 한국인의 실질 은퇴 연령은 72세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노인 고용률(37%)과 노인 빈곤율(40.4%) 모두 OECD 국가 중 1위다. 일하는 노인이 가장 많은데도 가난한 노인이 가장 많은 나라다. 참담한 역설(逆說)이다. 한국인의 노후는 왜 가난할까? 몇 가지 원인을 꼽을 수 있다. 첫째, 현재 노인층 가운데 국민연금 수급자(受給者)가 많지 않다. 둘째, 자영업 비중이 높아 노후 준비가 부족했다. 셋째, 국가의 노후 소득 보장 체계가 미약하다. 우리나라는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합한 공적연금의 소득대체율이 35~40%다. 적정 노후 소득(70%)의 절반 수준이다. 노후가 불안한 사회다. 은퇴가 또 다른 생존 경쟁의 시작이 됐다. 정년퇴직을 해도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재취업에 성공해도 임금은 보잘것없다. 경력과 무관한 단순 노무직에 종사하는 경우도 많다. 노후는 버텨 내야 하는 시간이 됐다. 50대 이후는 생애주기(生涯週期)에서 험난한 시기다. 부정적인 '생애 사건'이 잇따른다. 정년퇴직으로 사회적 역할이 줄고 경제적 불안이 커진다. 부모의 병이 깊어지거나 부모의 죽음을 맞닥뜨리기도 한다. 자신이나 배우자의 질병이 시작된다. 사별의 고통도 겪는다. 삶의 상실이 집중되는 구간이다. 이 와중에 '생계'라는 쇠사슬까지 끌고 다녀야 한다.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물론 돈이 여유와 행복을 결정짓지는 않는다. 행복과 여유는 '마음가짐'이니까. 그러나 생존에 필요한 돈이 없다면, 마음도 궁핍(窮乏)해진다. 개인만의 불행일까. 아니다. 사회의 실패다.
2026-07-07 05:00:00
식당이나 카페에 가면, 어린이들이 '유튜브'에 빠져 있는 모습을 흔히 본다. 유튜브 콘텐츠에 혼(魂)이 팔린 아기들도 많다. 돌은 지났으려나. 부모들이 음식을 먹거나 수다를 떨기 위해선 아이들에게 유튜브를 틀어주는 게 현실적인 방법일지도 모른다. 천방지축 뛰어다니거나 저지레할 아이들을 얌전하게 의자에 앉혀 둘 수 있으니 말이다. 영유아(嬰乳兒)가 TV나 스마트폰 동영상에 오랜 시간 노출되면 여러 능력이 떨어진다고 한다. 특히 동영상에 노출된 아기는 그렇지 않은 아기보다 사회성이 저하된다는 것이다. 3년 전 '미국 의학협회 소아과학 저널'(JAMA Pediatrics)에 실린 일본 도호쿠대 연구팀의 연구 결과다. 연구팀은 7천97명의 영유아를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동영상 노출 시간이 긴 1세 아동은 1년 후 2세가 되는 시점에 사회성, 미세 근육을 움직이는 능력 등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 조사에 따르면, 전체 표본 중 48%의 가정에서 1세 아기에 대한 동영상 노출 시간은 하루 1시간 미만이었다. 1~2시간은 30%, 2~4시간은 18%였다. 4시간 이상은 4%로 집계됐다. 부모가 어리거나, 저소득층 가정일수록 동영상에 노출되는 시간이 긴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보건기구(WHO), 미국 소아과학회(AAP) 등은 2~5세 아동의 동영상 시청 시간을 하루 1시간 미만으로 설정할 것을 권고(勸告)하고 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최근 흥미로운 연구 보고서를 발표했다. 부모가 꾸준히 책을 읽어 준 자녀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문해력(文解力)과 수리력이 높다는 것이다. OECD가 한국·영국·벨기에·네덜란드·아제르바이잔·브라질·몰타·아랍에미리트(UAE) 등 8개국 5세 아동 2만3천여 명을 대상으로 한 '유아 인지·사회 정서 국제 연구(IELS)'의 결과다. 보고서에 따르면 부모가 5세 자녀에게 일주일에 5회 이상 책을 읽어줄 경우, 주 1회 미만인 아동에 비해 초기 문해력은 32점, 초기 수리력은 23점 높게 나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자료를 보면, 청소년 10명 가운데 4명이 스마트폰 과의존(過依存) 위험군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다. 영유아기부터 유튜브에 빠지니, 중독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자녀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유튜브보다 책이다.
2026-06-30 05:00:00
[이런일] '2026 대구국제주류&칵테일쇼' 성황리 폐막
대한칵테일조주협회·제이엠컴퍼니 주관 '2026 대구국제주류&칵테일쇼'가 6월 26일부터 28일까지 대구 EXCO에서 열렸다. 이번 행사는 전시와 시음, 세미나, 체험 프로그램, 비즈니스 상담 등으로 진행됐으며 주류·음료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는 기회가 됐다. 행사를 주관한 이희수 조직위원장(대한칵테일조주협회장·대구한의대 교수)은 "대구국제주류&칵테일쇼는 주류 전시회를 넘어 주류문화와 산업, 관광, 교육, 지역경제를 연결하는 대한민국 대표 융복합 플랫폼"이라며 "K-푸드와 K-컬처의 세계적인 확산과 함께 K-칵테일과 우리 전통주가 새로운 관광 콘텐트이자 미래 성장산업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2026-06-29 11:3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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