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시회 대부분 {외화벌이} 목적

팔순을 바라보는 노혁명투사 A옹을 만났다. 연길시 변두리에 위치한 서른평남짓한 그의 아파트를 찾아간 것이었다. 감옥에서만 이십여년을 보낸, 더구나 오른쪽 다리 하나뿐인 불구의 몸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강건했다. 강마른체구가 마치 박달나무처럼 단단하고 팽팽한 기세를 드러냈다. 어쩌면 그의 건강은 육체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정신적인 면이 더 강한지도 모른다. 전 생애에 걸쳐 안으로 응어리진 분노가 아니었더라면 아마 그는 일찌감치 제풀에 허물어져 버렸으리라.지금은 소설가로 더 알려져있지만 일제치하 젊은시절 A옹은 중국대륙을 누비며 항일전에 참전하였던 애국용사였다. 그러나 그는 끝내 한쪽다리에 총상을입고 일경에 체포되었고 구주로 끌려가 감옥살이를 했다. 그 와중에 제대로치료를 받지못해 마침내 감옥에서 한다리를 절단한채 8.15광복을 맞이한 것이었다. 쌍지팡이를 짚고 조국으로 돌아온 그는 서울에서 열렬한 사회주의 운동을 전개하다 신분 노출이 두드러져 꼬리가 잡히기 전에 월북해 김일성을 만났다. 그의 휘하에서 공산주의 정권수립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A옹은처음부터 김일성이가 탐탁잖았다.

초기에 이미 드러난 김일성의 패권주의에 견디지 못하고 6.25뒤 A옹은 드디어 연변으로 망명해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그는 모택동 치하에서도결코 평탄치가 못했다. 미증유의 문화대혁명에 휩쓸려 그는 다시 십여년동안영어의 몸이 되었고 80년대 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풀려나 복권이 된 처지였다.

[나는 영원한 마르크시스트야]

서재로 들어가 마주 앉자 A옹이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그는 다시 [그러나김일성과 모택동은 나의 원수였어. 마르크시즘의 이상을 그들이 짓밟아버린거야. 김일성은 너무 오래 살았어. 북한 동포들이 당하는 고통을 생각해 보라구]하고 분노를 참지 못했다. 어쩌면 그는 혁명투사라기보다는 한 이상주의자가 아니었을까. 진정한 이상주의자는 설 땅이 없다. 그것이 그의 운명인 것이다.

요즘 A옹은 오전내 자신이 걸어온 파란만장했던 시대를 되새김질하며 자서전을 집필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거기에 자신이 체험한 김일성의 정체와 반역사적 행위를 샅샅히 기록하고 있는 중이었다.

얼마전 연길에서는 한 북한동포가 자살한 사건이 일어났다. 기적적으로 북한을 탈출해 연길까지 도망쳐온 그는 불행하게도 조교(북조선 국적의 연변동포)의 고발로 연길 공안당국에 검거되었다. 요즘은 사회적으로 공개만 되지 않으면 공안당국도 북한탈출동포를 일부러 색출하려고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그러나 북한 탈출동포가 부쩍 늘어나자 조교들이 암암리에 그들을 추적하고있었다. 만일 조교들이 구체적인 증거를 들어 누군가를 고발하면 공안당국도양국의 협정에 의해 어쩔수 없이 그를 북한으로 강제송환을 시켜야 한다. 그자살자도 그렇게 되자 북한행을 거부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만 것이었다.일주일만에 한꺼번에 도착한 북한 노동신문을 본다. 7월9일, 10일, 11일자다.북한 영사관을 통해 우편으로 배달되기 때문에 항상 그렇게 구문이 되어서도달된다고 한다. 9일자 1면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생할 것이다}라는 제목아래 검은 띠를 두른 김일성 사진이 전면을 차지하고 있다. 다른 지면도 모두 김에 관한 것으로 가득차 있다. 하다못해 광고도 전연 없는 신문,다만 김일성과 김정일의 선전삐라에 지나지 않는것이 노동신문이란 제호로매일 발간되고 있는 것이다. 10일자는 1면 전면에 김일성추도사설이 실려있다.물론 나머지 지면도 김에관한 기사뿐이다. 노동신문이야말로 역사상 전지면을 오직 한 사람을 위해 만든 신문의 효시일지도 모른다.

마침 연길시 도서관에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도서 사진.미술품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 잠깐 들러 보았다. 교실 크기만한 실내의 중앙 전시대에는책들이 꽂혀있고 4면 벽은 동양화, 자수, 사진 작품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모두 외화벌이를 위해 판매하고 있는 것들이었다. 아마 한국관광객들을 노린 것이리라. 양장을 한 좀 그럴듯한 책들은 모두 김일성, 김정일에 관한 것들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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