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도시의 푸른나무(205)-도전과 응징(36)

순옥이와 나는 나이트클럽으로들어선다. 클럽 안이 한산하다. 무대는 비어 있다. 느린 음악이 흐른다. 시끄럽지 않아 좋다. 북적대지도 않는다. 순옥이가 내 손을 끌고 무대로 나간다. 나는 절뚝거리며 끌려간다. 우리는 무대로 올라선다. 순옥이가 나를 껴안는다. 내 가슴에 얼굴을 묻는다. 곡에 맞춰 느리게 발을옮긴다. 나는 쓰러질 것같다. 순옥이의 허리에 손을 두른다. 미끄러운 실크옷이다. 맨살이 느껴진다. 살이 아니라 척추뼈다. 순옥이는 말이 없다. 훌쩍거린다. 내 셔츠에 얼굴을 비빈다. 나는 왜 이러느냐고묻고싶다. 순옥이가 얼굴을 든다. 얼굴이 온통 눈물이다."오빤 늘 듣기만 하지? 듣고도 말을 않지?"

"그래, 말하지 않아"

"오빠, 에이즈 알아?"

갑자기 순옥이가 묻는다. 에이즈? 텔레비전에서 그런 말을 들었다. 타락한인간에게 내린 신의 징계라고 아나운서가 말했다. 순옥이가 내 몸을 민다.나는 쓰러지려다 겨우 발을 바로잡는다. 몸이 붕 뜨는 것 같다."나 아무래도 그것 걸린 것 같애. 오빠한테 처음 하는 말이야"순옥이의 말이 또록하다. 취한 목소리가 아니다.

"병이잖아?"

"그래, 병이야. 지독한 병. 에이즌 치료약이 없어"

"죽게 돼?"

"그래, 죽을 수밖에 없어. 내 인생은 끝장이야. 너무 짧았지만, 후회를 안해"

"안 죽어"

내가 보기에 순옥이가 죽을 것 같지는 않다. 죽는 꿈을 꿨는지도 모른다.나야말로 죽다 살아났다. 폐차 트렁크에 오래 갇혀 있으면 죽는다. "시우야,네 아빈 얼마 못살거야. 얼굴색이 그런데도 그렇게 술을 퍼마셔대니. 허긴그래. 학교서 잘렸겠다, 마누라는 도망을 갔겠다. 취하지 않고 맨정신으로어떻게 배겨" 길례댁이 내게 말했다. 아버지 얼굴에 병기가 있었다. 나날이여위어갔다. 끝내 아버지는 풀밭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오빠는 내 병을 잘 몰라. 난 알아. 언젠가, 오빠와 춤 출때, 흑인 봤지?산업체 외국인 근로자말야. 불쌍해서, 자꾸 추근대서 외박했지. 그 치가 에이즈 감염자래.쫓겨날까봐 이름 바꿔 취업했대.그치가 죽었어. 신문에도났지. 텔리비 피디수첩 프로에도 방영됐고. 그치 국내 취업체를 추적하는데,마지막 취업공장이 여기 프레스공장이야"

"봤어, 그치"

그 흑인은 우리 옆에서 춤을 추었다. 깜조록한동남아 사내와 춤을 추었다. 키들거리며 웃었다. 나는 그 얼굴을 알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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