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칼럼 김영호-한국시민사회의 성숙

최근의 엄청난 대 사건들의 연속-가령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대구지하철참사, 노태우 비자금사건에 따른 3김씨들의 대선자금 부정의혹과모든 재벌총수들의 범법행위노출, 그리고 5.18 특별법의 제정등을 보면서 매일매일 일종의 '앙시앵 레짐'(구체제)의 붕괴를 느끼게 된다. 이것은 한국형신시민혁명의 전개라고 하면 지나친 것일까?**'개발독재' 껍데기 탈피

근대초 서양은 시민혁명이 먼저 일어나고, 신흥시민세력이 중심이 되어 산업혁명을 이룩했다. 그러나 동아시아는 시민혁명이 선행되지 못하고 오히려개발독재형으로 산업화를 추진하였으며 고도산업화의 결과 시민사회가 전개되는 양상이었다. 개발독재시대에 산업화와 민주화는 심각한 마찰을 되풀이하였고 민주화의 후퇴가 강요되었다. 그러나 고도산업화가 이룩됨에 따라 중소득자가 광범위하게 형성되었고 중소득자가 중심이 되어 개발독재의 구각을깨면서 민주화가 본격화되고 민주화의 전개에 따라 점차 국가권력으로부터상대적 자율성을 갖는 시민사회가 서서히 성숙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바로 그러한 신시민사회의 문지방을 넘어서려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여기에서 잠깐 '계란모델'을 생각해 보자. 개발독재의 틀 속에서 성장한 중소득자층은 계란속의 병아리처럼 스스로 안으로부터 껍질을 깨고 나오지 못한다.그만큼 개발독재의 껍질이 두껍고 중소득자층의 체제의존적 성향이 강하기때문이다. 따라서 개혁세력이 밖에서부터 껍질을 깨는 작업과 중소득자층이안으로부터 껍질을 깨는작업의 제휴 연대가 필요했다. 1987년의 6월항쟁은그러한 '계란모델'로 이룩된 것이었다.

**문민정부의 개혁진통

그러나 계란에서 나온 병아리가 새시대의 집권세력이 되지 못했다. 양김의분열과 대립으로 노태우씨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 다음에 나온 문민정부도실은 구체제 세력과의 제휴에 의하여 들어섰다. 5.6공세력과의 합당과 조직지원 및 자금지원 없는 문민정부의 탄생은 상상하기 어렵다. 문민정부가 겪는 개혁의 진통와 혼란은 여기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문민정부가 들어선후에도 기본적으로 구체제의 피해는 지속되었다.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는 실은 부실공사의 결과요 부실공사는 정치경제적부패의 먹이사슬의 일부이며, 그사슬의 정점에 노태우씨 비자금 사건이 위치하고 재벌체제의 비대화가 진행되었으며 그 언저리에 3김씨 대선자금 의혹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개혁도 이루어졌다. 주목할만한 것은 개혁하지 않을 수 없을만큼 시민사회가 성장 성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6.29도 실은 시민사회의요구를 받아들인 것이고, 금융실명제 실시도 시민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며 금융실명제에 의하여 노태우씨 비자금을 더이상 덮어놓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번의 5.18특별법 제정 결정도 실은 시민사회의 광범하고 강력한 요구를 받아들인 것에 불과하다. 시민사회의 성숙으로 이제는 문민정부도 5.6공세력과의 연결을 끊고 시민사회의 품으로 뛰어드는 수밖에 없게된 것이다. 병아리는 서서히 자라나 스스로의 집을 짓게 된 것이다.이제 한국의 시민사회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조화시키면서 스스로의 집을지으려 하고 있다. 낡은 집을 파괴할때는 '…으로부터의 자유'가 중요했지만새 집을 지을때는 '…에로의 자유', 즉 참여의 자유가 중요하다. 지방자치도국가도 이제는 시민 참여와 창의에 의한 새로운 체제로 건축되어야 한다.**시민책임.의무도 막중

지금까지는 '목표의 민주화'가 중요했지만 이제는 '수단의 민주화' '방법의 민주화'가 훨씬 중요하다. 문민정부의 '문민독재'적 성격은 이제 시민사회의 성숙앞에 '수단의 민주화'로 대전환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권리가중요했지만 이제는 책임과 의무가 더욱 중요하다. 자기가 만든 쓰레기는 자기가 책임지는 자세로부터, 임금 못지않게 생산성을 중시하고 선량들에 대한비판 못지않게 책임있는투표를 해야 하는 무한책임의식이 절실히 요청되는것이다. 이제 한국의 시민은 도덕적으로 재무장하면서 상대적 자율성을 갖고세계속에 새로운 집을 지을 자각을 해야 할 것이다. 재벌체제도 그러한 각도에서 개혁되어야 한다. 최근의 엄청난 사건들의 와중에서 우리는 희미한 희망의 '빛'을 응시하고 있다. 〈경북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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