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독도영유권을 본격 제기한 것은 우리 정부가 1952년 1월 이른바 평화선 (이승만 라인)을 선포, 독도가 우리 땅임을 천명한 뒤부터다. 이 때 일본은1905년 2월 무주지(주인없는 땅)를 영토에 먼저 편입했다고 주장하며 우리 정부에 항의했다. 이후 일본은 이러한 주장을 연례행사로 되풀이하면서 오늘에이르고 있다.
일본의 독도에 대한 흑심은 무력 도발로도 나타났다. 6.25전쟁중 우리 행정력의공백기를 틈타 독도에 日本領 이란 한자 표지를 세우고 점령한 것이다. 이 때우리 시대의 마지막 의병 이 출현한다. 울릉도 출신 전역군인 30여명이 바로그들이다. 이들의 무용담은 이제 전설이다. 이들은 지난53년 독도의용수비대(대장 洪淳七.87년작고)를 조직,경찰에 독도경비 임무를 넘길 때까지 3년8개월간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순시선과 목숨을 건 전투를 여러차례 벌이며 독도를지켰다. 의용수비대원이었던 김병렬씨(67.울릉군 도동2리 23)는 일본인들이 독도에 꽂아둔 일본영토표지가 10여개나 됐다 며 그 때 독도를 지키지 않았다면우리 어민들의 생활터전인 독도 근해가 일본인들의 손에 넘어갔을 것 이라고말했다.
일본은 그후 수시로 해상보안청 순시선과 항공기를 동원,독도 부근의 우리 영해와 영공을 침범했다. 또 일본 어선들도 틈만 보이면 우리 영해로 숨어들어와고기를 잡아갔다. 1977년부터 지난해까지 19년간 침범 횟수는 모두 33차례.(80.83.87.88.93년은 침범않았음) 영해침범은 29차례며 4차례 영공도 침입했다.특히 주목되는 것은 지난해에만 9차례에 걸쳐 영해와 영공을 침입,전체 도발건수의 4분의 1을 넘는 점이다. 올해 2백해리 배타적 경제수역 설정을 앞둔 시점에서 독도주변의 우리 영해와 영공을 이처럼 많이 넘본 것은 예사롭지 않다.
일본 총리및 각료들의 독도영유권 주장도 끊이지않고 반복됐다. 심지어 지난88년에는 구소련 군용기가 독도 상공을 비켜 지나간데 대해 일본영공을 침범했다며 소련당국에 공식항의하는 억지를 부리기도 했다.
일본의 독도에 대한 집착은 단순한 편집(偏執)증상만으로 치부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일본내 일부 우익단체는 독도쟁탈사수대 까지 조직해놓고 있다. 일본 시마네현(島根縣)에는 竹島(독도)여 돌아오라 는 아치가 도처에 세워져 있다. 민족 감정까지 자극해 자국민들의 감성에 불을 붙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대응은 미온적이기 짝이 없다. 우리 땅이고 우리가 차지하고있는 터에 일본이 아무리 떠들어봐야 아무 소용없지 않으냐 는 것이다. 단순명쾌한 논리다. 그러나 독도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5공全斗煥정권은 독도 나무심기조차 금지했다. 독도는 우리 땅 이란 노래도 한동안 방송금지곡으로 묶었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독도에 대한 언급을 꺼리며 정보를 통제하고 있다. 일본과의 외교적 마찰을 피하기 위한 조치라고 하지만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조선 숙종때 동래 어민 安龍福은 울릉도와 독도에 있던 일본인들을 쫓아내고대마도주에게 일본인의 출어금지 공한까지 받아왔다. 1공화국은 평화선 을 그어 독도가 우리 땅임을 만천하에 선언했다. 독도문제는 이같은 확고한 의사표시와 행동으로 해결해야 하지않을까.
曺永昌.金敎盛 .許榮國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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