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변절의 시대]를 보면서

강원도 출신으로 고위 공직에 있는 한 친구는 신문에 파렴치한 범죄나 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곧 잘 이런 말을 했었다. 흉악 범죄나 파렴치하고 비도덕적인 사건중에 범인이 강원도 사람인 경우 는 거의 없다. 내말이 틀리는가 신문을 다시 한번 뒤져 봐라 자신의 고향 강원도가 그만큼 인심 이 순박하고 심성바르며 돌쇠 같이 심지가 굳고 착하다는 걸 은연중 자부하는 말이었다. 그 친구가 최근 강원도내 지역구의 자민련 국회의원들과 도지사등 소위 야당계 인사들이 줄줄이 탈당에 이어 여당의원으로 갑작스레 변신 한뒤 날치기 에 협력한걸 놓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 으며 친구들에게는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해진다.

그들의 당적 옮기기와 날치기 손들어주기가 소신이냐 변절이냐는 논란은 당사자들간의 정치적 이 해와 입장에 따라 서로 달라질수 밖에 없지만 관망하는 쪽의 시각으로는 변절 의 이미지가 더 강한것이 솔직한 느낌이다. 변절이란 말이 다소 과격하고 극단적이라면 변절의 의미를 좀더 크게 넓혀 생각해도 좋다.

예를 들어 절개를 벼린다는 의미 외에도 개인적인 소신의 수정이나 집단내에 합의돼 있는 신의의 무를 저버리는 일, 또는 사회정의와 양심의 위배나 작게는 기존의 상식적인 약속을 저버리는 것 까지를 다 변절의 큰 범주에 넣고 본다면 최근 우리는 한마디로 변절의 시대 에 살고 있다. 당장 어제 오늘 일어난 일들만 손꼽아 봐도 오늘날 우리의 시대가 변절의 시대임을 부정할수 없 다. 날치기는 의회민주주의 양식과 양심을 기준으로 할때 분명 합의된 정의의 위배로 변절 이다. 날치기와 싸웠던 민주투쟁의 이력을 영광의 상처로 자랑해오고 바로 그 투쟁 전력으로 정권을 따 낸 문민정부가 다시 그 날치기로 정권연장을 기도 한 것은 자신들의 정치철학과 자아소신 본질에 대한 변절이다. 날치기에 동참이 예상됐던 강원도 국회의원들의 탈당과 신한국당 입당 해명도 듣 기에 참담하다 못해 인간적인 연민을 가질 정도였다. 야당 도지사로는 지역 현안을 풀기 어렵다 는 논리는 더 많은 야당쪽 자치단체장들이 나름대로 열심히 잘 지역발전을 풀어 나가고 있는 현 실을 감안한다면 단체장으로서의 능력과 자질이 없다는 얘기밖에 안된다. 그렇다면 당적이 아닌 지사자리를 내던져야 옳았다. 야당후보 단일화를 목표로한 DJP공조가 정치 노선의 혼돈을 가져와서라는 탈당변명은 마치 이나라의 야당은 영원히 분할 구도로 존재해야 하 며 군사정권과 그 정권의 뿌리에서 돋아난 문민 여당정권만이 영속적인 집권연장을 해야만 정치 노선이 혼돈스럽지 않다는 황당한 논리가 된다.

변절에는 차라리 변명이 뒤따르지 않으면 깨끗한 맛이라도 있는 법인데 그런 배짱도 보이지 않는 세상이 돼 간다.

권모 무소속 의원의 영입 또한 변절의 시대임을 보여준다. 현 집권층이 신군부의 희생자 였으면 서도 언론 통폐합과 국회 해산에 간여한 것으로 알려진 신군부 세력을 단지 대 야당 공세를 위한 의석 채우기를 위해 동지 로 영입한 것은 집권전 야당 태생집단내에 5.18범죄자로 합의됐던 정 의의 변화로 볼때 하나의 변절 인 것이다.

신군부시절 핵심 참모였던 옛 부하가 법정에서 변함없는 진술로 인해 실형을 선고 받은 다른 부 하들과 달리 검찰로 부터 기소조차 되지 않을 증언을 한뒤 끝내 여당으로 입당해 들어가는 모습 은 전직 대통령의 가슴과 눈에는 분명 변절 로 비쳤을 것이다. 그리고 감옥에서 두 대통령은 그 가 날치기에도 동조하리라는 멸시어린 평가를 했을 것이다. 사족이지만 그러한 변절시대의 어둡 고 우울한 분위기는 비단 정치세계에만 있는게 아니다. 페루 인질사건에서도 변절시대의 아쉬운 사례를 돌아 볼수 있었다.

만약 복귀조건으로 일시 석방됐던 우리 대사(大使)가 약속된 시각에 다시 사지(死地)로 되돌아 갔 더라면, 그래서 비록 인질범들이라고는 하지만 약속 과 신의 를 우직하게 지켰더라면 세계속에 코리아의 이미지가 어떻게 비쳐 졌을까 하는 부분이다.

페루 정부가 들어가지 말라고 말렸을때 한국은 유교적인 신의와 충절이 강한 나라다. 목숨이 걸 린 일이라도 약속은 지키는게 한국인의 기본적 인간성이고 정서다 는 말 한마디 던지고 다시 걸 어 들어갔더라면 전세계 매스컴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는 시점과 상황에서 그보다 더 멋지고 극적 으로 한국과 한국인의 이미지가 PR되는 기회가 또 어디 있겠는가. 외교관 100명이 10년을 두고 쌓아 나가도 못만들 외교적 효과를 얻을수 있었을 것이란 공상을 해보게 된다. 새해에는 좀더 눅눅하고 끈끈하게 살아보자. 서로 좀 손해봐도 이해에 따라 이쪽저쪽 팔딱팔딱 변절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면 결국엔 모두가 다 행복해 질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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