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상사회' 만들자 (6)-나라망치는 사교육

"엄청난 과외로 위험수위 넘었다"

'1993년 도시가구 교육비 부담요인(단위%%) 학교납입금 38, 각종 과외비 55, 교재비 3, 기타3''사교육비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의 글을 쓴다는 가정하에 제시된 이 자료는 다름아닌 97대입 수능 언어영역문제에 실린 것이다. 단순한 자료예시에 불과한 이 글은 그러나 국가고시에서처음 사교육비 문제를 언급했다는 점에서 세간의 화제가 됐다.

그만큼 사교육이 판치고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에 이르는 돈을 내고 학원이나 유명강사를 쫓아다닌다. 시내에서 논술시험 전문강사로 소문난 김모씨에게 과외를 받으려면한달 평균 3백만원을 내야 한다. 일부 중고교사는 이러한 과외열풍에 편승, 편법으로 돈벌이에 나선다. 대구지역 일부 중학 교사들은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인근 학원에 소개한 대가로 매달 일정액을 상납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쟁이 심한 곳에선 학생 1명당 소개비가 30만원에 이른다.과외비 비싸기로 소문난 수성구 황금동·지산동 일대에선 입시철만되면 소위 족집게 과외가 선풍적 인기를 끈다. '단기완성'을 내세우는 족집게 과외강사들은 일주일에 두번 직접 지도하는 대가로 한달 1백50만~2백만원을 요구한다. 일부 부유층에선 중고생 자녀 둘에 대한 과외비로 한달 3백만~4백만원씩 퍼붓는 경우도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실제로 우리 국민이 지출하는 사교육비는 예측조차 어렵다. 일부 전문가들이20조원으로 추산하는 정도다. 다만 우리나라의 공교육비 규모를 웃돌고 있다는 데 대해서는 이설이 없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교육예산, 즉 공교육비는 17조 7천억원. 교육개혁 추진차원에서 확보된 GNP 5%%를 웃도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사교육비 규모는 해마다 증가일로다. GNP대비 사교육비 비중은 77년 2.19%%, 82년 3.98%%, 90년 5.50%%, 94년 6.03%%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한 교육공무원은 "우리나라의 사교육이 위험수위를 넘어섰다는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학부모들의 교육열도 지나치고 이를 공교육으로 흡수하려는 노력도 부족했다. 학부모와 교육기관모두가 이제부터라도 사교육을 공교육으로 흡수하기 위해 발벗고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사교육은 유아들의 발목부터 붙잡고 있다. 지난달 서울 중앙교육진흥연구소가 실시한 설문조사결과, 우리나라 부모의 절반(49.9%%)가량은 유아교육에 월 평균 20만원이 넘게 지출하는 것으로나타났다. 3세에서 6세에 이르는 어린이중 유아원 유치원 학원등을 한곳만 다니는 어린이는 절반에도 못미친다. 대개는 2곳, 많게는 3곳 4곳을 전전하는 어린이가 절반을 넘어선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이같은 과외열기는 어린이들의 과외우울증이란 신종 용어를 낳을 정도로 도를 더해가고있다.

사교육비 지출은 가계에도 짙은 어둠을 드리우고 있다. 지난해 4월 야구선수인 중1 아들과 초등학교 5년생인 딸의 과외비를 감당하지 못해 자살한 서울 방학동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다. 과도한과외비 지출은 이 나라에 사는 대다수 가장들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과외비'를 어떻게마련할 것인가가 문제다. 학부모 나모씨(40)는 "우리나라는 과외비 지출이 전체 지출의 절반을 넘는 가정이 많다. 이는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기형적 가계구조를 낳는다. 결국 초과지출부분은 빚을 내든지 음성소득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며 "개혁은 비록 오랜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나 그릇된 교육풍토를 바로잡는데서부터 시작돼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맹목적 사교육 열기는 해외에서도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미국의 새너제이 머큐리지는 지난달 27일 서울발 기사를 통해 '교육열이 지배하는 한국''한국의 교육, 비싼만큼 좋은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한국은 전국민이 교육열에 불타는 광신자들의 나라"라고 꼬집었다. 이 기사는 또 "많은 부모들이 수입의 절반이상을 교육비로 지출하고 있고 학생당 대학수도 많지만 교육의 질이 양에 상응하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이라고 지적했다.지난해 10월 OECD는 서울에서 가진 한국교육정책 검토회의에서 사교육비 절감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OECD는 또 한국의 고등교육 전반에 걸친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그렇다고 좀처럼 탈출구가 보이지도 않는다. 대구 ㅇ여고는 올해 신입생중 전교석차 1등부터 50등까지를 합숙교육을 시킬 예정이다. 50등안에 끼지 못한 학생은 열등감을 느낀다. 알아서 공부도하고 취미활동을 통해 자기발전을 이루려는 50등이하 학생들은 50등안에 들기위해 취미를 포기하고 학원과 과외를 찾는다. 최상위만 올바른 대접을 받는 공교육 풍토에서 비대한 사교육은 개선될 수가 없다.

대구 ㅇ중 정모교사(28)는 "일부 공부에 취미가 있는 학생들의 뒤꽁무니에 대다수 학생이 끌려다니는 우스꽝스런 교육현실이 지속되는한 사교육 문제는 영원히 풀수 없는 숙제로 남을 것"이라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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