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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를 벗어나 외곽 지방도로로 접어들면 흔히 눈에 띄는 것이 '교통사고 많은 곳'이라는 팻말이다. 구비 도는 곳은 말할 나위없고 직선도로에도 횡단보도가 있다 싶으면 예외없이 그런 팻말이 서 있다. 하기야 세계 1,2위를 다투는 교통사고 다발국이니 '교통사고 많은 곳'이 그렇게 많다해서 이상할 것은 없으리라.

그러나 모든게 그렇듯 너무 흔하다 보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운전자들도 그따위 팻말에는 눈도 꿈쩍않고 오히려 교통사고라는 말에 대한 불감증만 키운다. 안전운행에 대한 주의를 환기한다는 팻말 본래의 목적은 실종되고 예산만 낭비하는 꼴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차라리 '교통순경 많이 출몰하는 곳'쯤으로 팻말을 바꾼다면 좀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건축공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혼을 담은 시공'이라는 팻말도 허황되기로는 더 윗길이다.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의 경우에서 보건대 우리나라에서는 사람들을 '혼내는' 혹은 '혼을 앗아가는'시공은 있어도 '혼을 담은' 시공이 많다고 보기는 어렵다. 실상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도로공사나 아파트공사가 무슨 예술품을 만드는 것도 아닐진대 매번 혼을 담아 일해 달라고 요구하는것은 무리이다.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모두가 그의 동료시민들이 사용할 시설들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만드는데 기여함으로써 자기 밥벌이를 한다는 정도의 직업윤리를 갖고 일한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성실한 시공' 정도를 다짐해야 할 자리에 영혼까지 들먹이는 팻말이 들어선다면 그것은 공허한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말장난은 더욱 자극적인 말장난을 부르게 되고, 말은 그것이 가리키는현실의 내용과는 점점 더 동떨어진 것으로 된다. 고객은 왕이라는 장사꾼의 말에서,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정치가의 말에서 우리는 그러한 괴리를 본다.

말은 사회구성원끼리의 귀중한 약속이다. 말장난이 범람하고 말과 그 내용이 달라지면 결과적으로 사회구성원들간의 불신만 남는다. 도로가에서 남발되는 교통사고의 팻말이, 그리고 엉뚱하게도영혼을 팔아먹는 공사장의 팻말이 우리사회의 진정한 말의 값어치를 떨어뜨리고 말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데 한몫하는데 지나지 않는다면, 우리사회의 신뢰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도 한번쯤 걱정해야 할일이 아니겠는가.

〈경북대교수·문화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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