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러 비밀과학도시 41개 존재

지도에 표시되어 있지도 않고, 이름도 없이 번호로만 불려지면서 냉전기간 중 핵이나 생화학무기개발 등의 비밀 프로젝트를 수행했던 러시아 '비밀과학도시'의 실체가 최근 언론을 통해 상세히드러나고 있다.

러시아의 유력 주간 신문인 베크(Bek) 최신호는 개방후에도 여전히 '닫힌 지역'으로 남아있는 첼랴빈스크, 오제르스크, 스네진스크, 노보우랄스크, 트료흐고르니 등의 지역에 있는 비밀도시들을최초로 공개했다.

한때 87개나 되었던 비밀도시는 현재 모두 41개가 남아있는데 이 중 10개는 원자력부 산하에서핵관련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스탈린 시대인 40년대말부터 시베리아 등에 건설되기 시작한 이들비밀도시에 거주하는 주민은 모두 2백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르자마스16, 첼랴빈스크65 같은 암호로 불려지는 이들 과학도시에는 대량살상무기 및 핵기술의연구개발시설과 종사자 가족의 주택이 있는데 연구원과 가족들이 도시 안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모든 시설을 완비해 놓았다. 초현대적인 연구시설과 생활 기반을 마련해준 대신 주민들이 외부와접촉하는 것을 철저히 제한했다.

도시는 철책으로 둘러싸고 곳곳에서 감시탑과 중무장한 병사들이 삼엄한 경비를 했다. 보안을 위해서 크라스노야르스크26과 같이 아예 지하에 도시를 건설하기도 했다. 연구원에게 시집온 여성이 친정식구들과 연락하는 것조차 허락을 받아야 했다.

이들 과학도시에는 핵시설이나 생화학무기 개발단지 등이 많아 방사능 누출 같은 사고가 끊이지않았다. 93년에도 인구 11만의 톰스크7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해 심각한 방사능 오염이 있었지만피해상황조차 공개되지 않았다.

소련 시절에만 해도 특별대우를 받던 연구원들의 형편은 최근들어 말이 아니다. 심한 재정난을겪고 있는 러시아 정부가 국방예산을 감축하면서 비밀도시에 대한 지원을 줄이는 바람에 연구소들이 받고 있는 경제적 압박이 대단하다.

지난해 11월에는 첼랴빈스크70의 원자력센터 소장이며 저명한 핵물리학자인 블라디미르 네차이박사가 연구소 직원들에게 월급을 제때에 주지못하는 현실을 비관해 자살한 사건이 있었을 정도이다.

대우도 예전같지 않고, 언제 있을지 모를 대형 사고의 위험 속에서 살아야하는 데다가 국가안보를 빌미로 기본권까지 제한받는 고통에 시달리는 시민들의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지난 92년 비밀도시 거주자들은 스스로 권익을 지키기 위해 전국적인 연합체를 결성해 94년부터는 아예 합법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주민들은 "먼저 러시아 정부가 국 내외에 비밀도시의 실체를인정하고 거주민들의 기본적 인권이 더 이상 제한되지 않도록 '비밀도시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민들의 요구 중 가장 눈에 띄는것은 정부가 더이상 과거와 같은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지 못할바에야 민간자본의 유치를 허가해 과학단지의 첨단기술을 상용화할 수 있는 길을 열어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실질적으로 비밀도시의 완전 개방을 뜻하기 때문에 러시아 정부로서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어쨌든 최근들어 비밀도시의 실상이 외부에 알려지는 가장 큰 이유는 다름아닌 러시아 정부의 재정난인 것이다. 이제는 과거처럼 '국가안보'라는 명목을 들이댈 수도 없어 러시아 정부로서도 속수무책이다.

〈모스크바.金起顯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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