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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에 헌신하는 대통령"

대통령하면 내 머리에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다. 6.25때다. 인민군의 남침이시작되었다는 보도와 함께 의정부 방면에서 대포소리가 들려왔지만 서울 시민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정부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서울을 사수할 것이라는 대통령의 담화를 믿었기 때문이다. 미아리 고개를 넘어오는 인민군의 탱크들을 직접 보고서야 시민들은 부랴부랴 피란길에 나섰지만 이미 한강다리는 끊어진 뒤였다. 녹음해둔 이승만의 대시민 담화가 발표되는 시간에 그는 한강다리를 폭파해놓고 수원으로 도망가 있었던 것이다. 다리가 끊어진 줄 모르는 시민들이 차를 타고 달리다가 혹은 떠밀려서 수없이 강에 빠져 죽는 참사가 이래서 일어났다. 뒤에 여론이 극도로 악화되자 이승만은 한강교의 폭파 책임을 물어 한 공병대장을 처형했지만 이 일로 그는 우리나라 대통령이란 권력을 추구하고 영화만 누리면 됐지 결코 국민을 위해서 헌신하지 않아도 된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었다.

◈이승만과 후지모리 대통령

또 하나 머리에 떠오르는 대통령상은 페루의 대통령 후지모리이다. 게릴라들이 구속돼 있는 동료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일본 대사관을 점령해 인질극을 벌이자 그는 전투복 차림으로 특공대를 진두 지휘, 한 사람의 희생도 없이 잡힌 사람들을 구출하고 게릴라들을 체포했다. 편안하고 멋진 자리에 근사한 옷차림으로 나타나는 대통령에만 익숙해 있던 내게 텔레비전을 통해 본 그의 모습은감동적이었다. 국민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바친다는 생각으로 일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거기서보았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대통령선거가 석달 앞으로 다가왔다. 국민과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만큼 막강한 권력을가진 대통령을 뽑는 일인만큼 우리가 크게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이미 다섯분이 정식으로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서 왜 자기가 대통령이 돼야하는가에 대하여 국민을 설득하기에 온힘을기울이자 방송과 신문은 국민이 옳은 판단을 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느라 여념이 없고, 둘만만난자리에서도 대통령선거가 화제로 오른다. 비슷비슷한 분들이 너무 여럿이 나와 누구를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엇조의 소리도 없지않지만 다섯분이 다 대통령이 될만한 자질과 경륜을 가지고 있어 판단에 더욱 어려움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대통령을 뽑아야 할까. 같은 고장출신이니까 또는 같은 학교를 다녔으니까 따위가 선택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케케묵은 얘기는 할 필요도 없으리라. 청렴 강직, 해박한 지식, 지도력과 추진력, 위기관리능력,경제를 살릴 수 있는 힘, 물론 이런 것들이 다 선택의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것들보다 더 높은 기준은 국민을 위하여 얼마나 헌신할 수 있는가가 돼야한다고 생각한다.

◈부정적 이미지 추방했으면

우리가 대통령으로 뽑아야 할 사람은 위기에 처하면 국민에게는 안심하라고 해놓고 혼자 비행기타고 안전한데로 도망가는 이승만 같은 대통령이 아니라 전투복 입고 국민앞에 서서 그 위기를극복하는 후지모리 같은 대통령이다. 아무리 청렴강직하다 해도 국민을 위해서 스스로 진흙탕속에 들어가기를 꺼리는 것이라면 그 청렴강직은 대통령일을 훌륭하게 해내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오직 대통령이 되기위해서 아름다운 말의 잔치를 함부로 벌이는 사람이나 과거의 우리 정치를 그릇되게 만드는데 한몫을 한 사람도 국민을 위해 헌신할 대통령은 못되리라. 따지고 보면 우리는한번도 제대로 된 대통령을 가져보지 못했다. 군사독재로부터 대통령을 뽑을 권한을 되찾은 것도겨우 지난번 선거부터였지만, 그 선거도 돈으로 얼룩져 우리가 제대로 대통령을 뽑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번만은 정말로 우리를 위해 헌신할 우리의 대통령을 뽑아 우리의 머리속에서 영 떠나지 않고 있는 대통령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추방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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