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난치병 아들을 정상아로…

"억척엄마 변성옥씨"

변성옥씨(34·포항시 흥해읍 마산2리 한미장관아파트 라동 111호). 순박함이 묻어나는 얼굴, 평범한 소도시 주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알고보면 결코 평범하지만은 않은 사람이다. 병원에서도 고개를 흔든, 난치병 아들을 끈질긴 훈련끝에 정상아로 되돌려놓은 억척엄마이다.

그의 집을 찾아간 날, 우당탕 계단을 뛰어올라오는 소리에 뒤이어 왈칵 현관문이 열리고 한 개구쟁이 녀석이 뛰어들어왔다. 물웅덩이를 걷어차며 왔는지 양말이 흠뻑 젖어있다. 이 집의 1녀1남중둘째인 신호(8). 3년전만 해도 희귀병으로 한발짝도 못걸었던 아이다.

신호가 다섯살되던 설날. 아파트 계단에서 넘어져 턱을 약간 다쳤다. 별것 아닌 것 같아 그냥 두었는데 저녁때부터 조금 이상해졌다. 평소 지나칠 정도로 설치는 아이였는데 그날 저녁엔 거의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식사땐 뒤로 벌렁 넘어졌다. 몇번을 그렇게 넘어졌다. 아이는"엄마, 이상해. 나는 앉고싶은데 자꾸 넘어지려고해"라면서 계속 누워있으려고만 했다. 포항 선린병원에서 진찰한 결과 이미 발끝에 마비가 왔다며 마비증세가 위로 올라갈것 같다고 했다. 당장입원시켰다.

사고 이틀만이었는데 이미 걷지도 못하고 손만 약간 움직일 정도였다. 의사는 희귀병인 것 같다고 했다.

대구 동산병원으로 옮겼다. "하늘이 무너지는것 같았어요. 애아빠도 몸이 성치 못한데 애마저 잘못되나 싶어 눈앞이 캄캄했지요"뇌성마비 장애인인 남편과 아들을 오버랩시키며 가슴이 미어지는듯했다. 마취도 않고 심장에 호스를 꽂을 때는 차라리 하늘이 아이를 데려가 주기를 원했다.병명은 몸전체가 마비되는 길리안 바레. 수천명에 한명쯤 걸리는 희귀병이다. 의사는 장기입원을해야하며 그래도 낫는다는 보장은 없다고 했다.

경주 동국대 부속병원 재활의학과로 갔다. 그곳에서도 나을 가망은 거의 없다고 했다. "평생 그렇게 산다고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어떻게든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변씨는 굵은 매 2개를 준비해 물리치료실에 하나, 병실에 하나씩 두고 아이가 치료를 거부할 때마다 인정사정없이때렸다. 치료받으러 갈때는 자전거핸들에 아이의 양손을 고무줄로 묶어두고 두발은 페달과 함께묶고는 자전거에 끈을 달아 변씨가 앞에서 끌어당겼다. 균형을 못잡은 아이는 연신 넘어지고 울고 난리가 났지만 막무가내로 자전거를 끌었다. "다른 환자가족들은 날 계모로 알더군요"집에서 통원치료를 하게되면서부터는 근육에 힘을 올리는 방법을 궁리했다. 양쪽 소파사이에 아이를 끼워두고 만화영화를 보게 했다. 첫 1주는 아침 점심 저녁때 1분씩 세워두었다. 종이짝이 바람에 흔들리듯 다리가 달달달 떨리고 소파로 받쳐두었는데도 나무인형처럼 넘어졌다.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모질게 일으켜 세웠다. 2주째는 하루 세번 2분씩, 3주째는 3분씩, 그렇게조금씩 강도를 늘렸다. 한달쯤후엔 일으켜 세워두면 다리를 떨면서 벽에 간신히 기대서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밥먹을 때는 손에 숟가락을 쥐여 고무줄로 묶어 팔꿈치 부분만 살짝 받쳐주었다. 아무리 배 고파해도 밥을 먹여주지 않았다. 아이는 안간힘을 쓰며 숟가락질을 하려 애썼고 밥을 양사방 흘리기는 했지만 몇달이 지나면서 조금씩 손에 힘이 생겨 힘든대로 제손으로 밥을 떠넣을 수 있게 됐다.

가장 어려운 것이 손가락운동. 소변볼때 옷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벗겨주지 않았더니 제손으로벗으려 애를 썼고 한 7개월이 지나면서부터는 혼자서 용변을 볼 수 있게 됐다.산에 데리고 가 오르막, 내리막걷기, 바닷가 모래사장 걷기연습도 시켰다. 지독한 훈련으로 아이의 인대가 늘어나기도 했다. 매도 몇개나 부러졌다.덕분에 그해 여름쯤엔 온몸을 이리저리 흔들거리면서라도 걸을 수 있게 됐고 가을에는 눈에띄게 회복됐다.

물리치료차 병원에 갔을때 의사들은 "그렇게 빨리 나을 수 있는 병이 아닌데, 기적이다"고 말했다.

"주변사람들 모두가 내가 너무 모질다고 했어요. 난 내가 지독해지지 않으면 저애가 평생 장애인으로 살게된다는 그 생각만 했거던요"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지금 신호는 걷기, 뜀박질 등에서 정상아와 다를바없고 학교에서도 유명한장난꾸러기가 돼있다. 비록 장애인이지만 너무도 착하고 가족들을 열심히 보살피는 남편을 만난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는 그는 신호덕분에 일상의 스쳐가는 작은 행복들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임을깨달았다고 말했다. "누구라도 살다보면 뜻하지 않은 어려움에 부딪힐 수 있잖아요. 중요한 것은어떠한 상황에서도 용기와 자신감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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