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왕주의 철학에세이-고장난 세상

이곳저곳을 돌아다닐때 곧잘 메모하는 습관이 있는 나는 볼펜 잉크가 다 되어 낭패 당하는 경우를 더러 만난다. 물론 주위에 가게가 있어 곧 새것을 살수 있다면야 그런 일쯤은 없던 일처럼 곧잊혀진다. 그때 기막힌 영감이 마구 솟구쳐 오르는 순간이었다면 놓쳐버린 언어에 대한 회한만은쓰린 기억으로 남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메모하던 곳이 마침 깊은 산속이거나 인적 없는 해안가 같은 곳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나는 조바심에 벌써 입술이 타들어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아 여기서 멈추어서는 안되지. 오 제발. 이 단락만 아니 이 문장만이라도 끝마치게 해다오. 행여 잘못 쓴 글자로 잉크를 낭비하지 않도록 내 정신은 아주 높은 집중상태에 이른다. 그때 볼펜은 더이상 동전 몇개만 주면 어느 문방구에서 살수 있으며 평소 상의 윗주머니 한쪽에 아무렇게나 쑤셔넣고 다니던 그 수많은 볼펜 중의하나가 아니다. 내 간절한 기도도 보람없이 이윽고 어느 지점에서 그것은 속절없이 멈추어서고 만다. 하지만 나는 선뜻 그 빈 플라스틱 막대기를 내팽개치지 못한다. 허탈한 심정을 가누며 내 손의 따스함으로 한동안 붙잡고 그것을 바라본다.

고장난 망치의 교훈

나는 안다. 잉크가 떨어질 조짐을 느끼면서 써내려간 마지막 몇줄에는 아마도 내가 그 볼펜을 사용한 이래 그것의 존재를 가장 절실하게 느끼고 그것의 효용을 한없이 고맙게 여기는 모든 마음들이 함께 스며있다는 것을.

하이데거는 고장난 망치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못을 치거나 단단한 것을 깨트리거나 울퉁불퉁한것을 펼 때 우리는 그 도구를 사용한다. 그때 망치는 단순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충실한 도구로 기능할 때 망치는 사실 잊혀져있다. 완벽하게 잊혀질수록 완벽하게 편리한 망치다. 그러나 어쩌다 쇠뭉치가 자루에서 뽑히거나 자루가 깨어져서 손에서 걸리적거리거나할 때 망치는 자명성의세계에서 빠져나와 비로소 그것자체로서 주목된다. 역설적으로, 고장난 망치는 망치의 본질을 비로소 투명하게 드러내주며 그것의 존재와 절실하게 만날 수 있게해 준다는 말이다. 이렇게 나의망각에서 깨어난 망치는 내게 아주 낯선 것일 수 있고 한없이 원망스러워하는 것일 수 있으며 심지어 아름답거나 슬픈 것일 수도 있는 것이라고 하이데거는 말했다.

갑작스런 정전으로 어찌어찌 찾아 켜놓은 몽당촛불이 마지막 밑동까지 타들어갈 때에도 역시 우리는 그 초의 존재를 그런 절박한 심정으로 만나지 않겠는가.

손등에 난 작은 상처의 아픔이 인간은 먼저 영혼의 존재가 아니라 육신의 존재임을 일깨워주듯,잉크 떨어진 볼펜, 고장난 망치, 마지막 밑동까지 타들어가는 촛불등도 '세계의 상처'처럼 우리곁에 있던 자명한 세계, 길들여진 편안함 속에 망각되어있던 모든 것들을 새롭게 각성케 해준다.조급한 헛손질은 그만

요즈음 우리 삶의 형편이 고장난 세상같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서야 비로소 숨겨져온 삶의 다른모습, 더 안타까우면서도 진실한 모습들과 만나고 있는가. 하지만 강호에서 들려오는 우울한 소식들은 전혀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왜 우리는 이토록 약해지고 이 지경으로까지 비겁해지고 말았는가. 섣불리 느끼는 자살충동, 페시미즘의 술잔으로 보내는 세월, 아아 이 모두가 당치않은 일이다.우리는 최소한 이 유예, 불편, 어둠, 슬픔, 그리하여 모든 아픔들을 버티어낼만큼 다시 강해져야한다. 이 고장난 세상이 보여주는 삶의 투명한 진실과 용기있게 만나야 한다. 그럴수만 있다면 이시련은 저주가 아니라 차라리 축복이다.

풍요했던 시절의 향수에서 깨어나자. 허공에서 바람 잡듯 고장없는 도구를 움켜쥐려는 조급한 헛손질은 여기서 멈추자. 우리가 지금 해야할 일은 먼저 풍요했던 시절에는 잊혀졌던 삶의 다른 모습들과 만나는 것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