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시장후보 인물탐험-국민신당 유성환후보

국민신당 유성환(兪成煥)대구시장 후보가 시민들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두차례다.첫 번 째는 85년 2.12총선 돌풍의 주역으로 거물급인 민정당 한병채, 국민당 이만섭후보를더블 스코어로 물리치고 '스타'로 부상한 것이다. 당시 지지자들의 무동을 타고 기세를 올리던 그를 시민들은 기억한다.

두 번 째는 중앙 정치무대에 데뷔한 지 1년 만인 86년 국회에서 "통일이 국시가 돼야 한다"고 한 유명한 통일국시 파동이었다. 이 과정에서 우익.어용단체들이 집으로 찾아와 데모를하고 협박전화를 해대는 통에 부인 남영자(南永慈)씨는 심장병을 얻어 지금도 치료중에 있다.

유후보는 남씨와의 슬하에 영만(38), 현주(35) 남매를 둔 4식구다. 그러나 그의 가족은 원래5명이 돼야한다. 갓 돌을 지날 무렵 변변히 치료도 못해보고 맏아들'링컨'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아들에게 링컨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파격적인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런데단지 돈이 없어 떠나보낸 맏아들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다고한다.

그만큼 유후보는 마음이 여린 사람이다. 눈물도 많다. 유신시절 신민당 경북도당 대변인이던그는 당료들과 반대시위를 마치고 반월당 당사로 돌아와 저녁을 먹다가 북받치는 분노와 무력감에 갑자기 밖으로 뛰쳐나와 골목에서 목놓아 울었다. 이를 본 이대우전의원은 그를 '문학소년 유성환'이라고 별명을 붙인 적도 있다.

유후보는 자신을 돌보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하는 면모도 유별나다. 그래서인지 결혼초 남씨로부터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이런 일면은 학창시절부터 싹을 보였다. 영남대학교법대 4년 총학생회장으로 있던 그는 등록금을 연체하는 학생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데 반발, 항의투쟁을 벌이다 자퇴해 결국 졸업장은 학교를 떠난지 41년 만인 93년에야 받을 수있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유후보는 민주화투쟁을 함께 하다 타계한 곽천순, 최종호동지 등 11명의 미망인과 가족들에게 매년 추석과 설에 쌀 한 가마니 씩을 8년째 도와주는의리도 갖추고 있다.

그렇다고 유후보는 결코 나약한 사람은 아니다. 눈 앞의 이해에 좌우되지 않고 옳다고 생각하면 고초를 마다하지 않는다. 성주중고 도덕교사직을 떠나 29세되던 60년 최연소 도의원에당선돼 정계에 입문한 이후 30년 넘게 민주화라는 형극의 길을 걸었다. 결국 대법원으로 부터 무죄판결을 받아내긴 했지만 당시로는 엄두를 내기 어려웠던 통일국시 발언으로 인한 정치적 불운은 그가 아니면 겪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그는 15대총선 직후 4백여표차라는 견디기 힘든 낙선의 상처를 이기기 위해 일본어사전을한장 씩 암기하고 찢어버리기를 반복, 1년2개월 만에야 사전 한 권을 다 찢어버리는 '독한'면모도 갖고 있다.

유후보는 "이인제 때문에 이회창이 떨어졌다"는 시민들의 국민신당에 대한 시각에 대해 정면으로 항변한다. 정치는 역사가 명령하는 것이며 좁더라도 묵묵히 가야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마음이 맞지 않아 나온 이상 수양산의 고사리를 먹다 죽은 백이.숙제가 될지언정 당장의 이해를 좇아 한나라당과 다시 손잡지는 않겠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李東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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